[하재근의 시대공감] 중국몽, 이런 식으로 가능할까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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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3 06:54  |  수정 2024-05-03 08:50  |  발행일 2024-05-03 제26면
중국은 한국과 같은 문화권
전통문화 비슷해 보이지만
중국것 아닌데 비난 도 넘어
韓고유문화 탈취하려 들면
中문화도 존중받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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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평론가

최근 걸그룹 아이브의 신곡 '해야' 뮤직비디오에 대해 논란이 터졌다. 중국의 일부 누리꾼들이 비난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해야'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면서 멤버 안유진은 "저희가 한국풍으로 뮤비도 찍고 의상도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영상 속 그림을 그린 박지은 작가는 "'해야'의 공식 콘셉트는 한국의 아름다움과 해를 사랑한 호랑이"라며 "한지 위에 전통재료로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뮤직비디오 속에선 곰방대, 저고리, 부채, 노리개 매듭, 동양화 이미지 등이 전통적인 동양 느낌을 전달한다. 이에 대해 중국의 일부 누리꾼들은 그 이미지들이 중국의 문화라며 아이브 SNS에 "뮤직비디오 전체가 중국 문화로 가득 차 있다" "중국의 의존국가가 되고 싶나" "동양화가 아니라 중국화" "문화를 도둑질했다" 등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에 그림을 제공한 작가 SNS에도 "부끄러운 줄 알아라" 등 악성댓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한국 측에서 중국 전통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표현을 했을 때 중국 누리꾼들이 공분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2022년엔 아이브의 장원영이 파리 패션위크에 봉황 비녀를 꽂고 참석했는데, 그때도 중국 일부 누리꾼이 봉황 비녀가 중국 양식이라며 '한국의 문화 도둑질'을 비난했었다.

이런 식이면 한국 전통문화의 상당 부분이 그들에게 문화 도둑질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중국 문화는 단순히 한 나라의 고립된 문화가 아니라 전통시대의 동아시아 국제문화였다. 그래서 중국을 제국이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중국과 매우 밀접했다. 당연히 한국 전통문화 중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고, 같은 문화권이다 보니 비슷해 보이는 것도 많다. 이 모든 전통문화가 다 중국만의 것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았거나 비슷하다는 이유로 중국만의 것이라고 규정하는 건 억지다. 그 나라의 역사에 실제로 있었던 문화는 모두 그 나라의 전통문화라고 할 수 있다. 전통문화인데 형성과정에서 어느 나라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전통문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의 일부 누리꾼들이 김치나 조선식 한복을 중국 것이라고 하는 게 잘못된 주장인 건, 김치나 조선식 한복이 중국 역사에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양화, 부채, 곰방대 등은 한국 역사에 엄연히 존재했던 우리네 문화였다.

로마, 피렌체 르네상스 문화를 차용했다고 해서 이탈리아인들이 타국인을 문화 도둑이라고 하지 않는다. 한국 가수가 록, R&B, 힙합, 포크송을 부른다고 미국인들이 한국인을 문화 도둑이라고 하지 않는다. 미국 문화 중에 유럽에서 기원한 것들이 있는데, 그렇다고 유럽 각국인들이 미국을 문화 도둑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반면에 일부 중국 누리꾼은 문화적으로 놀라울 만큼 편협하고 우악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중국은 중화제국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중국몽'을 염원한다. 제국이 되려면 물리적 힘과 함께 문화적 매력과 관용, 개방성도 중요하다. 지금과 같은 자국 중심주의 편협한 태도로 중국몽이 가능할까?

중국은 여론을 국가가 통제하는 나라다. 설사 인터넷 여론을 완전히 바꾸진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언론을 통해 시정하려는 노력이라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빗나간 애국주의 누리꾼들의 목소리를 그냥 방치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속에서 일부 중국 누리꾼들의 '한국은 문화 도둑' 주장이 커져 가고, 심지어 김치 같은 한국 고유문화까지 중국 문화로 탈취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중국이 문화적으로 존중받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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