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범의 시선] 추경호의 이유 있는 도전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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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5-05 18:44  |  수정 2024-05-06 07:16  |  발행일 2024-05-06 제18면
추경호, 與 원내대표 출마
야권 총알받이 신세 각오
영남 책임론 정면돌파도
철학 없이 권력만 탐한 與
생각을 높이는 계기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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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이 5일 국회에서 원내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 부국장
추경호 의원이 국민의힘 원내대표 후보로 나섰다. "국민의힘이 유능한 민생 정당, 정책 정당, 국민 공감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사실 분위기가 좋은 게 아니다.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는 영광의 자리지만, 22대 국회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여당의 의석 수가 고작 108석이다. 범야권은 200석에 육박한다.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싸움인데, 맨 앞에 서야 한다. 무수히 쏟아지는 야권발(發) '포탄'을 가장 먼저 맞아야 한다. 총알받이 신세다. 내부적으로도 편할 리 없다. 야권과의 싸움에 밀리면 '병력' 규모와 상관없이 욕을 먹게 된다. 전략이 부족하다느니, 전투력이 약하다느니 해서 시비를 걸어올 게 뻔하다. 12척의 배로 왜군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 같은 역할을 요구할 것이다. 자칫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영남 책임론'도 부담이다. 영남당 이미지 고착화로 총선에서 참패했다는 게 영남 책임론이다. 패배의 책임을 영남에 떠넘기는 논리인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적반하장이다.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준 영남지역 유권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영남을 기반으로 세(勢)를 확장하려던 게 국민의힘이다. 세 확장에 실패했다고, 기반을 흔드는 것은 몰염치다. 스스로 보수의 철학이나 정체성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영남지역 유권자들은 야권의 '입법 폭주'를 막고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라고 국민의힘에 표를 줬다. 대한민국의 새 비전을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국민의힘은 그 명령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높이 이상을 살 수 없다"고 했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철학과 생각의 수준을 높이지 않으면 권력만 탐하는 정당에 머물게 된다. 지금 국민의힘이 그렇다. 

 

'영남 책임론'은 철학과 생각이 낮은 정당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은 다르다.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호남 책임론'이 불거진 적이 없다. 국민의힘은 오히려 미안해 해야 한다. '열심히 밀어줬는데 제대로 못해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여야 한다.


TK(대구경북)이 다 잘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TK 총선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오죽하면 홍준표 대구시장이 "죽은 도시"라고 표현했을까. 국민의힘 TK 후보들은 전쟁에서 한발 비켜섰다.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선거운동도 활력을 잃었다. 유권자들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호남과 TK의 선거는 다르다. 호남에선 '빨간 색만 아니면 돼'라고 한다. 빨간 색은 국민의힘 상징 색깔이다. 빨간 색을 제쳐놓고 공천 때부터 파란 색(민주당 상징 색깔) 가운데 '괜찮은 후보'를 선택한다. 선택한 다음에는 전적으로 밀어준다. 민주당 후보들도 사력을 다한다. '몰표'가 나오는 배경이다. TK에선 '그래도 빨간 색을 밀어줘야지'라는 분위기다. 인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다 그렇고 그런 x이지'라고 여긴다. 인물론이 먹혀들지 않다 보니 다선 의원들이 상대적으로 많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이 '영남 책임론'을 둘러싼 부정적 기류를 걷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철학을 갖추고, 생각의 높이를 끌어올리기를 기대한다. 추 의원은 총선 기간 선거운동원에게 '금주령'을 내렸다고 한다. '단수 추천'을 받아 느긋한 입장인데도 전력으로 달성군민에게 다가간 셈이다. 추 의원은 원내대표에 도전할 자격이나 명분을 충분히 갖췄다.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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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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