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시인은 가난해도 되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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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11-18   |  발행일 2011-11-18 제36면   |  수정 2011-12-30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詩를 뿌려라”
대구 금동식·서지월 ‘생보자 신세’
창작 올인 대가 치곤 참담한 현실
“세상에 위안 줘” 문학적 복지 절실
20111118
서지월 시인
20111118
금동식 시인

대구문협 소속 회원은 모두 920여명이다.

이 가운데 시인은 절반이 조금 넘는 500여명. 시(詩)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다들 직업을 갖는다. 이제 시인이 직업을 갖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도 목숨걸고 전업시인을 사수하는 이가 대구에 있다. 금동식(81)과 서지월 시인(57)이다.

중구 남산동 사글세 방에서 사는 금 시인은 말년이 참으로 쓸쓸하다. 종로의 산호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그는 생활보호대상자여서 몇몇 문인들이 남몰래 돕고 있다. 가족도 그 곁을 떠나고 22년째 혼자산다. 좌골신경통 때문에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 더 큰 문제는 집 수리 때문에 월세방도 빼줘야 되는데 집밖에 나앉게 돼 있다.

홀로 사는 노인으로 전락한 금 시인은 워낙 고집이 세서 문학 행사에도 안 간다. 그래서 더 지역 시인들로부터 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당 서정주로부터 추천을 받아 문단에 나온 뒤 최근까지 6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가 없다면 벌써 세상을 떠났을 어른이다.

그보다 더 절벽으로 내몰린 사람은 서 시인.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에서 빈한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가난에 굴하지 않는다. 그는 아내와 두 명의 자식을 두고 있는데 원고료·강사료·시인학교 회비 만으로 버텨야 한다. 4명이 먹고 살려면 족히 300만원은 필요한데 원고료(평균 15만원선)와 강사료(40만원 안팎) 포함 수입은 채 100만원이 안된다.

그는 시를 위해 교사직도 버렸다. 37년간 시를 써왔지만 지금은 파산지경이다. 그래도 서정시를 붙들고 있는 것에 모두 감동한다. 시인도 직업이기 때문에 다른 직업은 의미 없단다. 시 창작이 더욱 소중하단다.

하지만 그에 대한 ‘문학적 배려’는 참담하다. 몇년전 비슬산 자연휴양림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는데 주최측인 달성군으로부터 1원 한 푼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여러 경비를 그가 충당해 가계에 큰 손실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의 처지를 모르는 관계자들은 이런 흐름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얼마전 전기요금이 일년 체납돼 단전된 적도 있다.

그의 ‘떫은 감맛처럼’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이 하도 딱해선지 아빠는 왜 돈 벌러 안 나가세요? 돈 좀 벌어 오셔야지 누나하고 저하고 학비도 내고 하잖아요. 나는 듣다 못해 좀 기다려 봐 아빠는 글 써서 먹고 사니까 나간다 해서 돈 버는 게 아니야. (중략) 고3 딸이 아침에 학교 가면서 5만원 달라는 거 며칠만 있어봐라 했더니 울면서 돌아서던 일 잊혀지질 않는데…’라고 비통해 했다.

한번은 조카 결혼식 뒤풀이에 참석한 졸부가 좌중에서 자기 들으라는 말투로 “돈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 없다. 돈 안되는 것 하지 마라”라고 명령조로 내뱉길래, 그는 “친지와 지역과 나라를 위해 한 것이 뭐냐? 나는 배고프게 살아왔지만 시로써 타인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줬다”고 호통을 쳤단다.

전업시인의 가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예술가의 가난과 일반인의 가난을 동일하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많은 토론이 필요한 대목이다. 가난도 분명 시의 자양분이지만 시적 가치를 위해 올인하는 시인의 치명적인 궁핍에 대해서는 사회적 복지가 아닌 시적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는 ‘문학적 복지’가 절실하다. 이래야만 시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며, 나아가 위대한 시인이 나올 수 있다. 구석본 대구문협회장은 “지난 10월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예술인복지법이 가난한 전업시인을 위한 디딤돌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춘호기자 leek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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