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對 신작] 나이트폴·이탈리아 횡단밴드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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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9-21   |  발행일 2012-09-21 제40면   |  수정 2012-09-21
[신작 對 신작] 나이트폴·이탈리아 횡단밴드

◆ 나이트폴 : “홍콩영화 아직 죽지 않았다” 장가휘 연기력 인상적

‘무간도’ 시리즈(2002)는 홍콩반환(1997) 이후 침체기에 접어든 홍콩 영화계의 부활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이후 다양한 장르영화로 정면돌파를 시도한 홍콩 영화계는 영화적 완성도가 돋보인 ‘커넥트’(2008) ‘비스트 스토커’(2008) 등을 통해 비로소 그 활로를 찾았다. 주목할만한 건 과거 홍콩영화를 상징했던 비장미 넘치는 누아르에서 액션 스릴러로 그 바통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 ‘나이트폴’ 역시 하드보일드 스릴러를 표방한다. 홍콩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무간도’를 뛰어넘는 ‘홍콩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강도 높은 오프닝부터 인상적이다. 교도소 샤워실에서 한 남자가 세 남자를 상대로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목숨을 건 사투이다 보니, 칫솔과 배수구 철판 뚜껑 등 손에 잡히는 건 모두 이들에게 끔찍한 흉기가 된다. 재소자인 듯한 세 명을 때려눕힌 남자는 살인죄로 복역중인 양원양(장가휘)이다. 그가 20년 만에 가석방된다. 마침 은퇴 연주회를 앞둔 유명 피아니스트가 참혹한 사체로 발견되고 사건을 맡은 임 반장(임달화)은 21년 전 살인사건의 연관성으로 가석방 중인 왕원양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한다. 한편 죽은 피아니스트의 딸인 서설(문영산)에게 스토커의 위협이 이어지고, 왕원양이 범인이라는 증거가 하나씩 드러나면서 임 반장은 사건의 배후에 도사린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다소 강렬했던 오프닝이 지나면 영화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가는 범죄스릴러의 구도를 견지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양원양은 정체가 불분명한 위험한 인물로 묘사된다. 출소하자마자 거리의 젊은 여자들을 훔쳐보며 히죽거리고, 우연히 만난 여대생 서설의 주위를 맴도는 것은 물론, 그녀의 집근처에 거처를 마련하고 고성능 망원경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에 이른다. 강간살해범으로 복역했던 양원양의 끔찍한 제2의, 제3의 범죄가 일어날 수 있음을 의도적으로 암시한다. 결과적으로 서한림이 서설을 폭행하는 모습이 양원양에게 포착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체가 발견된다. 당연히 범인은 양원양일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나이트폴’은 이후 교도소에서 입은 목부상으로 인해 말을 못하는 양원양, 살인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임 반장, 그리고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 항상 불안한 눈빛을 보이는 서설, 이 세사람을 중심으로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두뇌 게임을 펼쳐간다. 이 구도는 퍼즐을 맞추듯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차츰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끈끈한 부성애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다. 겉모습에서부터 섬뜩함이 느껴지는 양원양이지만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딸을 더 사랑한다. 때문에 그가 서설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울먹이던 모습은 그의 진심을 알게 된 후 비로소 이해되고 뭉클한 감정마저 느껴진다.

홍콩 도심을 무대로 전방위적으로 펼쳐지는 긴박감 넘치는 추격신과 액션 또한 볼거리. 그중 압권은 홍콩 최대의 관광명소인 옹핑360 케이블카 안에서 육탄으로 맞붙은 임달화와 장가휘의 고공 격투신이다. 옹핑360은 바닥면이 투명한 크리스탈 재질로 되어있어 아찔한 높이의 지면을 직접 눈으로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있는 임달화는 구토를 할 정도의 고통을 참아내며 열흘에 걸쳐 이 장면을 촬영했다는 후문. 특히 ‘도둑들’로 새로운 친한파 스타로 거듭난 임달화는 80~90년대 홍콩영화전성시대를 이끈 대표적인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탄탄히 쌓아올린 연기력을 바탕으로 아내의 자살 이후 강박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집념에 찬 노형사의 모습을 훌륭히 소화해 자신의 가치를 또 한번 드높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주목하게 되는 건 ‘비스트 스토커’의 주연으로 단숨에 중국을 대표하는 국민배우로 떠오른 장가휘의 존재감이다. 장가휘는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예사롭지 않은 연기 내공은 물론, 폭넓은 감정변화와 아우라까지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제껏 액션배우로만 생각했다면 이후부터는 진정한 연기파 배우로 그를 기억하게 될 듯하다.

[신작 對 신작] 나이트폴·이탈리아 횡단밴드

◆ 이탈리아 횡단밴드 : 이탈리아 남부 풍광과 음악 어우러진 힐링 로드무비

삶에 지친 영혼을 달래거나,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싶을 때 여행은 상책이 될 수 있다. 굳이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도 없다.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려는 마음가짐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대충 준비는 마친 셈. 혹, 우정을 함께 나눌 벗의 동참까지 이끌어낸다면 이는 더없이 완벽한 여정이 될 테지만 말이다.

여기, 딱 그 조건에 부합한 네 남자가 있다. 어딘지 모르게 평균 이하의 아우라(?)를 풍기는 니콜라(로코 파팔레오) 살바토레(파올라 브리구르리아) 로코(알렉산드로 가스만) 프랑코(맥스 가제)다. 왕년에 잘나가는 동네밴드였던 이들은 어릴 적부터 오랜 친구였지만 이제는 각자의 생활에 익숙해진 중년의 아저씨들이 됐다. 한 친척의 결혼식에서 갑작스레 밴드 결성을 하게 된 이들은 이탈리아 최고의 재즈 페스티벌로 불리는 ‘스칸자노 재즈 페스티벌’에 출전하기로 의기투합한다.

영화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음악으로 자아를 찾는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네 남자의 10일간의 도보여행기다. 이들은 차로 가면 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를 9박 10일 동안 도보로 횡단할 계획을 세운다. 때마침 자신들의 야심찬 계획을 방송으로 내보내려는 지방 언론사 여기자 트로페아(조반나 브리구그리아)까지 이 여정에 합류한다. 즉흥적으로 계획된 만큼 이 여정은 부담없고 홀가분하다. 장비도 단출해서 짐을 운반해줄 당나귀 한 마리가 전부지만, 밤마다 펼쳐지는 캠프파이어와 흥겨운 음악이 늘 함께하니 마음만은 풍요롭다. 특별한 준비가 없어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그 누구의 구애도 받지 않는 삶이 ‘슬로우 라이프’라면, 이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네 남자에게 해당하며 관객들은 그런 그들의 일탈을 통해 진정한 쉼과 자유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이들과 함께하는 열흘간의 여정은 흥미롭다. 다양한 군상과 부대끼게 되는 여행길에서의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는 즐겁고,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친구들의 갈등 표출과 봉합도 재밌다. 특히 이들의 여정을 따라 수려하게 펼쳐지는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풍광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만하다. 영화 속 공간적 배경이 되는 바실리카타는 이탈리아 지역에서 최상급의 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그중 ‘싸시 디 마테라’ 마을은 1993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그 위엄을 자랑하는 곳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풍광은 상징적이고 은유적으로 사용됐다. 바실리카타는 이 영화를 연출한 로코 파팔레오 감독의 고향이며 청춘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덕분에 카메라는 주인공들의 내밀한 심리와 바실리카타의 경관을 능숙하게 넘나들며 한 공간에서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기묘한 감흥을 제공한다.

정신적 리더, 옴므 파탈, 숙맥 청년, 무명 연예인으로 특징되는 네 명의 주인공 역시 이 여정을 통해 치유의 과정을 겪는다. 풍족하지만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던 니콜라는 과거의 열정을 되찾았고, 오랫동안 섹스를 못해본 살바토레는 여행 중 만난 여자들과 뜨거운 밤을 보낸다. 또 무명 연예인 로코는 슬럼프를 극복했고, 사랑의 충격으로 말문을 잃었던 프랑코는 트로페아와의 새로운 사랑을 통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로드무비이자 음악에 방점을 찍은 영화다. 거칠지만 낭만적이고, 부드럽지만 위트 넘치는 영화 속 음악들은 재즈를 기반으로 히피적인 감성을 더했다. 완벽한 음향시설을 갖춘 공연장에서의 밀도 있는 사운드는 아니지만, 길거리 버스킹 음악들이 주가 된 ‘그루브 사운드’는 그 자체로 충분히 흥겹고 즐길 만하다. 시종 장관을 연출하는 이탈리아 남부지방의 풍광에 더해진 음악까지 ‘이탈리아 횡단밴드’는 분명 국내 관객들에겐 색다른 힐링체험이자, 신선한 볼거리로 다가올 듯하다. 이탈리아의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불리는 다비드 디 도나텔로 어워드에서 신인감독상·음악상·주제가상 3관왕을 휩쓸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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