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 혁신妓生을 아시나요?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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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1-18   |  발행일 2013-01-18 제33면   |  수정 2013-01-18
20130118
대구시 수성구 범물동 복명초등 교정 화단에 있는 김울산 여사의 흉상. 이 흉상은 1999년 대구시 중구 남산동에서 이곳으로 옮겨졌다.

남존여비, 여필종부, 칠거지악.

조선시대 여성은 억압과 차별의 존재였다. 그중에서도 기생은 팔천(八賤)으로 노비, 광대, 백정 등과 함께 가장 멸시받던 직업이었다. 여성으로서 기생은 주체적인 삶이 아닌 늘 타자화(他者化)된 대상이었다.

대구는 400여년간 감영이 있던 경상도의 중심지로 평양·개성·진주·경주와 함께 ‘기생의 도시’로 유명했다.


사재 털어 학교 설립
국채보상운동 앞장
항일·여성운동 불구
편견 탓 평가 못받아

향촌동∼샘밖골목
기생거리 조성하고
유적지 정비 목소리


특히 황진이·논개·매창·계월향처럼 주체적 자아로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기생은 아니지만 구한말~일제강점기 극적인 삶을 살다간 ‘혁신기생’이 많았다. 그들은 서구의 신문물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개화·계몽·독립운동에 앞장선 선각자였다.

전 재산을 털어 대구 최초의 여자학교를 세운 교육계몽 기생, 국채보상운동과 구휼에 앞장섰던 사회복지운동 기생, 의열단에 가입한 독립투사 기생,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선 사상기생 등 그들의 행적은 ‘진흙’ 속에서도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 같다.

대구의 기생에 대한 연구는 음악과 관련된 20여권의 단행본을 낸 향토음악사가 손태룡씨(60)가 처음 시도했다. 저서 ‘한국전통음악가연구’를 통해 대구출신의 전통음악가 및 기생, 전통음악 단체를 심도 있게 소개했다.

김석배 금오공대 교수도 경상도 출신 기생의 판소리에 대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김중순 계명대 한국문화정보학과 교수 등이 기생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김중순 교수는 “기생이라고 하면 작부, 창녀, 팜므파탈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일제강점기 기생은 남녀평등이나 사회참여 같은 계몽, 개혁 가치와 예능적 성취를 통한 자아실현 가치를 지닌 ‘근대적 담지자(擔持者·뚜렷한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기생에 대한 연구와 재조명이 다양하게 이루어졌지만 지역적 특성과 배경이 변질됐다”며 “대구의 혁신기생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구시민이 이들을 선양하고 대구권번과 달성권번이 있었던 향촌동과 옛 만경관 뒤편 샘밖골목을 잇는 기생거리를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번 호 위클리포유 대구지오(GEO)는 논개에 버금가는 대구출신 혁신기생 김울산과 앵무 염농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현계옥과 정칠성을 다뤘다.

4명의 혁신기생은 사후 재조명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구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다. 더구나 김울산과 염농산의 업적을 기린 송덕비와 비각은 파괴되거나 훼손·방치돼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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