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6)대구시 남구 봉덕동 ‘기단’ 의 강신학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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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02-15   |  발행일 2013-02-15 제42면   |  수정 2013-02-15
23년간 20개식당 전전하며 20개교훈 얻어
면발처럼 길게 늘어뜨린 실험적인 회 반향
자신만의 레시피북 제작해 1천 가지 메뉴 다뤄
“일식셰프엔 스토리텔러 기질 반드시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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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키’ 방식으로 만든 ‘곱돌참돔회’. 곱돌모듬회 등 실험적 일식 메뉴 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봉덕동 일식 전문 ‘기단’의 강신학 오너셰프.

사람은 천직(天職)을 닮는다. 도공은 도자기, 춤꾼은 자기 춤과 흡사해진다. 요리사도 마찬가지. 일식에 몸을 담으면 일식형 폼을 갖게 된다. 정통일식집 오너셰프와 일반 횟집의 오너셰프는 질감이 사뭇 다르다. 일식집 셰프는 친절함과 엄격한 싹싹함이 배어 있다. 일반횟집 주인은 엄격함은 무뎌지고 친절함이 수더분함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많다. 한쪽은 깔끔하다면 다른 한쪽이 질펀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주에는 남구 봉덕동 봉덕맛길 중간에 있는 횟집 같은 일식당인 ‘기단(基壇)’을 찾았다. 수성구의 번듯한 일식당에 비하면 시설이 다소 열악하다. 하지만 조그마하면서도 알곡 있는 일본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 분위기도 닮고, 구석방은 오순도순한 기운이 있다. 회 마니아들은 이 집을 주목한다. 바로 오너셰프 강신학(43)이 있기 때문. 그도 일식형 페이스다. 튼실한 몸매지만 눈매는 감도가 깊다.

설 연휴 바로 다음날 밤에 그를 찾았다. 그가 입가심을 하라면서 이색 전채용 튀김을 내민다. 베이컨말이바나나튀김과 갈치튀김이다. 23년간 스무개 가까운 숱한 식당을 전전하면서 독립한 강 셰프를 통해 대구에서 조리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운 것인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머리를 못 들겠단다. 주위에 기라성 같은 선배와 대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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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돌모듬회 등 실험적 일식 메뉴 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봉덕동 일식 전문 ‘기단’의 강신학 오너셰프.


◆ 토목학도가 조리사로

그는 공고 출신이다. 그게 최종학력. 취업 준비하던 중 경기도 안양에서 일식당 주인인 종형이 그를 불러 올렸다. 이미 토목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는 항상 호기심 가득하고 실험적이었다. 요리에 기본이 없음에도 ‘된장국에 왜 굴을 넣으면 안 되느냐’면서 과감하게 넣고 끓였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기발하다고 생각해낸 메뉴도 기존 메뉴였습니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했습니다.”

거기서 1년 있다가 서울 힐튼호텔 출신 김철기 셰프가 있는 팔공산 ‘백안산장’으로 간다. 여기서 일식욕구가 일어난다. 복어와 철판요리(데판야키) 등을 배우고 짬을 내 신라요리학원을 다닌다. 1년 있다가 구미 프린스호텔의 신명섭 셰프 밑에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자격증을 딴다. 생애 첫 튀김요리를 전수받는다.

“튀김은 일식 중 가장 마스터하기 힘든 메뉴입니다. 온도 조절은 물론, 튀김옷과 재료가 잘 붙도록 해야 되죠.”

그는 아직 쇠솥으로 수제튀김을 낸다.

다음은 장어구이 관문을 통과했다. 삼수장어 본점에 스카우트돼 간다. 장어(우나기)에 대해 심도 있게 배운다.

“장어도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복날에는 하루종일 1천마리를 잡기도 합니다. 데리야키 소스는 기본적으로 다섯 번은 발라줘야 합니다. 두 번 정도에서 그치면 색깔이 안 나죠.”

다시 중구 금호호텔로 간다. 거기서 현재 신천동에서 돌고래횟집 사장으로 있는 이성철씨를 만난다. 평생의 사부(師父)가 된다. 거기서 그는 셰프는 절대 타협을 하면 안 된다는 것과 셰프의 카리스마가 뭔지를 배운다. 제대 후 금호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양식을 배운다. 이때 서양요리와 일식 요리의 차이를 감지한 뒤 제주도 신제주에 있는 대판일식에 간다. 제주토속음식을 음미하면서 뒷주방 일을 총괄한다. 입에 맞는 음식에 대해 뭔가를 익히게 된다. 차가운 요리와 뜨거운 요리의 차이도 이때 깨친다.

대구로 와서 송광호철판요리 황금점에 들어간다. 거기서 영업의 본질과 손님과 교감하는 방법을 안다.

“중요한 순간이었죠. 그동안은 그냥 요리만 잘 만들면 끝이라고 믿었죠. 절대 저만 잘해선 안된다는 걸 깨달았죠. 손님의 중요성을 절감합니다.”

남강초밥(김경팔 셰프)에 들어가서는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걸 절감한다. 평리동 만당에선 한식도 일식도 아닌 어정쩡한 대구일식의 한계를 체감한다.

“요리에 회의가 들더군요. 다시 스승을 찾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죠.”

법원 앞 어전의 뒷주방 총책임자로 간다. 밖으로 나가는 모든 메뉴의 간을 책임졌다. 아리아나호텔 ‘유메’에서 대구 일식계의 풍운아 가운데 한 명인 김용규 사장을 만나 수성관광호텔 옆 ‘우에미’까지 관장한다. 비로소 대구에서 강신학이란 이름을 알린다. 갓 서른에 지역 최연소로 호텔 주방장이 된다.

“여기선 직원관리 및 접대방법에 대해 숙지합니다. 일식은 요리도 중요하지만 음식을 설명할 수 있는 스토리텔러로서의 기질이 없으면 주저앉게 됩니다. 고수가 되려면 음식은 기본으로 습득하고 있어야 하고 다양한 기질과 입맛의 단골을 사로잡지 못하면 지게 됩니다. 단골의 짓궂은 질문도 잘 받아넘겨야 해요.”

그때부터 외부강의를 나간 강 셰프는 주먹구구식에서 벗어나 강신학 레시피북을 만들기 시작한다. 현재 1천여가지 메뉴를 핸들링한다.

“당시 조리사는 그렇고 그런 사람 정도로 치부됐습니다. 호시절은 가고 술로 인해 수전증에 걸리고 혈족도 잃고 뒷방 폐인으로 전락한 선배를 저는 많이 목격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쿨하고 세련되고 지적으로 무장된 인품을 갖춘 존경받는 셰프가 되고자 노력한 겁니다.”

◆ 셰프는 주방을 베고 죽어야 된다

‘대봉초밥’으로 가서 조리상무가 된다. 2002년이었다. 당시 대구에선 최고의 초밥집이었다. 서봉기 사장은 ‘대륙’ 출신으로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했다. 2002년 생긴 뒤 모모야마로 바뀐다. 그때 새삼 요리사의 몰락이 뭔가를 직감한다.

“셰프가 돈을 벌면 주방보다 홀로 나와 단골과 어울립니다. 주방은 축축하고 답답하고 억눌려 지내야 하는데, 홀로 나오면 새로운 신천지가 눈앞에 전개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죠. 이 대목이 오너셰프로서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의 귀로입니다. 상당수 이 대목에서 걸려 넘어집니다.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겁니다. 영업상 단골과 잔을 주고받고 골프도 치는 중 자기도 모르게 주색에 젖게 되죠. 음식에 목숨을 건다면 절대 그런 일은 없죠.”

들안길 ‘단(丹)’에선 조리사가 돈 버는 수단일 수 있다는 회의를 느낀다. 봉덕동 ‘석정’으로 간다. 은성횟집에 있다가 나온 정성모 사장이 있었다. TBC 뒷골목 ‘수강’에 간다. ‘해도 안 되는 게 있구나’ 하는 걸 배운다. 이즈음 독립할 시점을 찾는다.

우연히 테이블 4개 있는 상동의 한 횟집을 9년 전 인수한다. 현재 동일하이빌 정문 자리에 있던 ‘상동횟집’이다. 노모와 둘이서 꾸려갔다. 열심히 했다. 잠도 거기서 잤다. 횟집 같은 일식점이었다. 손님들이 밀려들었다. 문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먹는 손님도 부지기수였다. 헝그리 정신을 발휘했지만 얼마 안돼 주인한테 쫓겨난다. 8년 전 현재 자리로 온다.

그는 오지랖이 좀 넓다. 2003년 조리사축구단까지 만든다. 외국 손님을 위해 판소리도 배웠다. 피아노, 기타, 드럼도 만질 줄 안다.

◆ 기단의 특별 메뉴

그의 회는 독창·실험적이고 특히 칼맛이 푸짐하다. 생각나면 즉시 손님상에 올린다. 회 틈에 곶감을 썰어 올릴 정도다.

“강신학표 간장이 있느냐”고 물었다.

“제가 간장 장인이 될 필요는 없다고 봐요. 간장 하나에만 목숨을 거는 장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저는 시중에 유통되는 최상의 간장을 선별해 사용합니다. 회용으로는 ‘움트리’라는 저염간장이 좋은 것 같아요. 제 입에는 일본 기코만 간장보다 더 풍미가 있는 것 같아요.”

기반의 명물은 ‘곱돌모둠회’. 그는 화려한 그릇도 식감을 떨어뜨린다고 본다. 비위생적이다 싶어 무채도 방석처럼 깔지 않는다. 그래서 택한 게 곱돌이다.

그는 생선 중 참돔(아카다이)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불이나 뜨거운 물을 끼얹어 생선 껍질을 육각형으로 갈라진 소나무 껍질처럼 변용시키는 ‘유비키’방식을 즐긴다. 온도차로 주름이 생기면 즉시 찬물에 넣어 주름을 고정시키는 게 기술이라고 했다. 이밖에 제주광어, 봄에는 자연산 도다리를 즐겨 낸다. 2년 전 지역에선 처음으로 새로운 회를 론칭했다. 포를 뜨는 것이 아니라 국숫발처럼 살을 길게 늘어뜨린 이색 도다리회로 반향을 일으켰다.

“일반 식당주 같았으면 절대 허락을 안 했겠죠. 제가 오너셰프니깐 가능한 시도라고 봐요.”

그는 ‘억대연봉을 받는 조리사 시대’를 갈구한다. 그럼 철새셰프 시대도 끝날 것이며, 상당수 청년백수가 조리사 면접 보려고 벌떼처럼 달려올 것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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