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대결] 가장 따뜻한 색, 블루·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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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1-17   |  발행일 2014-01-17 제42면   |  수정 2014-01-17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소녀 슬픈 사랑에 빠지다…상대는 파란 머리의 여대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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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은 미지의 사랑을 꿈꾸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또래 친구들처럼 이성에 호기심 많은 그녀는 어느 날 길거리에서 마주친 파란 머리의 여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있는 엠마(레아 세이두)다. 예술을 사랑하고 개방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엠마는 확고한 자기주관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우연히 레즈비언 클럽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두 여자의 강렬하면서도 슬픈 러브스토리다. 가장 차가운 색을 따뜻하다고 표현한 역설적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보편적인 사랑을 넘어선 두 사람의 관계를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은 ‘사람에 의한 이야기’로 풀어간다. 아직 불완전한 마음과 육체를 지니고 있는 아델은 엠마의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숨어있던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는 엠마는 아델과의 만남을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카메라는 그런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과 떨림의 순간을 훔쳐보듯 따라간다.

179분의 러닝타임은 온전히 두 배우의 몫이다. 케시시 감독은 이를 사실적인 화면으로 채워갔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기본이고 노메이크업으로 촬영에 임한 배우들은 잦은 클로즈업과 디테일한 모습에 상시 노출됐다. 결코 녹록지 않은 작업 과정이다. 그중 배우들이 토로한 가장 큰 고충은 무한 반복 촬영. 한 장면을 위해 일주일을 통째로 쓰기도 하고, 하루 종일 같은 장면만 촬영하기도 했다. 심지어 정사 신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10여일 넘게 촬영했다. 여러 대의 카메라가 쉬는 시간에도 두 여배우의 모든 부분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고 하니, 아델 엑사르코풀로스가 “영화의 여정이 매우 낯설었다”고 말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과정 덕에 아델을 바라보는 레아 세이두의 매혹적인 눈빛연기와 음식을 먹거나 머리를 질끈 묶는 등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준 아델 엑사르코풀로스의 모습은 더욱 사랑스럽게 빛날 수 있었다.

영화는 쥘리 마로의 그래픽 소설 ‘파란색은 따뜻하다’를 원작으로 했다. 평소 전문직에 종사하는 열정적인 여성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고, 인물 간의 사적관계가 일과 사랑 그리고 이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관찰해보고 싶었던 케시시 감독에겐 누구보다 구미를 당기는 소재였던 셈. 아델과 엠마 역시 열정적인 사랑을 갈구하지만 차츰 사회적 환경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무난하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노동자 계급인 아델과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며 즐기는 엘리트 계급의 엠마는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사회 계층을 대표한다. 불꽃같은 첫사랑을 경험하며 행복한 삶에 스며들지만, 엠마가 속한 사회와의 거리감과 거기에서 오는 외로움은 결국 헤어짐의 빌미로 작용한다. 이는 아델을 힘들고 방황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녀를 성장하게도 만든다. 궁극적으로는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메울 수 없는 사회적 차이의 공백을 실감하게 한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캐스팅이 조금만 달랐어도 지금의 영화는 없었다”고 말했을 만큼 엠마와 아델을 연기한 두 여주인공의 연기 앙상블은 일품이다. 엠마 역은 프랑스 차세대 연기자의 선두주자 레아 세이두가 분했다. 현대물과 고전물을 넘나들며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던 레아 세이두는 그녀만의 중성적이고 신비스러운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목할 건 아델을 연기한 신예 아델 엑사르코풀로스다.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다양한 감정변화와 내면연기는 물론, 강도 높은 노출과 정사 신까지 훌륭히 소화해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매력에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을 정도다. 엔딩까지도 여전히 무언가를 갈구하게 만드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우리가 쉽게 마주할 수 없는 사랑의 진실됨과 절실함을 또 다른 방식으로 풀어간 아주 흥미로운 영화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흑인청년 미래 앗아간 미국의 무자비한 공권력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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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31일, 22세의 오스카 그랜트(마이클 B. 조던)는 새로운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유치원에 다니는 딸이 있지만 아직 여자친구인 소피나(멜로니 디아즈)와는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 한때 방황하던 젊은 날을 뒤로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오스카는 오늘보단 더 나을 내일을 꿈꾸며 그해의 마지막 날을 친구들과 함께 보내려 한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도 잠시, 인생을 뒤바꿀 끔찍한 사건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2009년 1월1일 새벽,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프룻베일역에서 일어났던 실제 총격사건을 재구성했다. 신년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시내로 나간 오스카는 지하철 안에서 작은 폭력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이를 진압하기 위해 나선 경찰은 오스카와 그의 친구들을 무력으로 진압한다. 그 과정에서 울려 퍼진 단 한 발의 총성. 가해 경찰은 전기총으로 착각했다고 변명하지만 당시 현장에 있던 지하철 승객들이 휴대폰 영상으로 찍은 화면은 SNS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시민들은 분노했다. 무기도 없고 저항도 하지 않은 오스카를 향해 경찰이 인종차별적인 욕설과 폭력을 가했다는 점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오바마가 대통령에 뽑혀 주목을 받던 시기였지만 이는 미국 사회 내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반증이었다.

영화의 시작은 사건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으며, 비극은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가 다큐멘터리 방식이 아닌 극영화로 만든 이유도 관객들이 보다 가깝게 캐릭터에게 다가가길 원해서다. 감독은 그의 가족과 지인들을 직접 만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마지막 날의 하루는 어땠을지를 상상하며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그리고 지극히 평범할 수도 있는 오스카 그랜트의 하루를 매 순간 밀도 높은 긴장감과 함께 훌륭한 서스펜스로 담아낸다.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불안하고 서늘한 감정이다.

카메라는 오스카의 마지막 하루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따라다닌다. 오스카는 객관적으로 훌륭하고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마약거래로 감방에서 몇 년 간 복역한 그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다정다감한 남편이자 아빠다. 다시 말해 그 역시 평범한 보통 남자다. 감독 역시 이 점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의 삶이 사회 안에서 이토록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이는 영화가 사건 자체보다는 오스카 그랜트의 22년의 삶이 녹아있는 하루의 여정을 되살려 놓았던 의미와도 맞닿아 있다.

감독은 이 사건 외에 수많은 우연들로 점철된 ‘어떤 하루’를 채워넣는다. 만약 오스카가 마트에서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면, 여자친구가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 하지 않았다면, 아머니가 지하철을 권하지 않았더라면, 혹은 이 모든 것을 거슬러 올라가 오스카가 애초에 감옥에 가지 않았더라면, 그는 지금 번듯한 가장으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오스카가 그날 따라 유달리 더 베풀었던 호의가 오히려 자신에게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 사건은 단순하지 않다. 개인에게 일어난 운이 나빴던 사건으로도, 커다란 구조의 문제라고도 단언할 수 없는 복합적인 담론을 안고 있다. 그 안에는 도시화, 자본화, 개인화되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앞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담겨져 있다. “누군가의 삶이 사라지면 비극의 본질은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만이 기억하게 된다”는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말처럼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개인의 역사를 지키려는 노력은 결국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개인의 몫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최소한의 언어로 묵직히 말하고 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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