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찌라시’ 정진영 “뭘 해도 큰 화제 안돼…진짜 찌라시에 이름 실린 적 없어”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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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2-24 07:50  |  수정 2014-02-24 08:15  |  발행일 2014-02-24 제22면
역할 위해 체중 8㎏ 늘려
배우 계속 한다는 게 감사
2년간 우울증…세월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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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최선은 다하되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정진영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대신 그는 ‘믿고 보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배우의 내적 갈등과 관객의 호기심이 일치할 때 비로소 배우의 진정한 가치가 매겨진다고 보면, 정진영은 그러한 진정성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이뤄왔다. 그래서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의 냉정하고 지적인 진행자의 이미지는 물론, ‘왕의 남자’의 고독한 연산부터 ‘브레인’의 까탈스러운 신경외과 교수 김상철까지 대중은 그를 온전히 가슴에 품고 아낌없이 사랑했다.

‘찌라시: 위험한 소문’(이하 찌라시)은 그런 그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정진영은 짐짓 과장되거나 연기적인 몸짓보다는 배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정확한 판단기준을 이 영화를 통해 제시한다. ‘찌라시’는 증권가 찌라시의 제작과 유통 과정, 비하인드 스토리를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담아낸 작품이다. 정진영은 전직 기자 출신의 찌라시 유통업자 박사장으로 분했다. 평소엔 허술해 보이지만 중요한 순간, 전직 기자다운 날카로움을 발휘하는 박사장은 정진영 특유의 지적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이 편안하면서 유머러스한 극 중 캐릭터의 성격과 어우러지며 제대로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정진영 역시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을 만큼 재미있는 시나리오였다”며 “이전 영화들과는 다른 독특하고 귀여운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적인 카리스마를 잠시 벗고 편안하고 위트 있는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찌라시’는 ‘이태원 살인사건’ ‘특수본’을 제작한 영화사 수박의 작품이다. 대표와의 친분관계가 각별한 것 같다.

“그런 편이다. 첫 작품이 ‘이태원 살인사건’(2009)이었는데 저예산으로 힘들게 찍었다. 그러다보니 제작사 대표와 친분이 쌓였다. ‘특수본’(2011)도 그런 인연으로 출연한 거다. 이 작품은 시나리오 기획때부터 봤다. 초고를 보면서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중에 감독님 버전으로 많이 바뀌긴 했지만, 내가 맡을 배역이 기존처럼 무겁고 힘을 주는 역할이 아니어서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기존 이미지가 진중한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편안하게 보였다.

“그동안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이미지가 각인돼 있었다. 게다가 내 인상이 강한 편이라서 그런 역할이 주로 들어왔다. 반면, 이번에는 배역도 그렇고 편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도 찌우고 ‘각’을 많이 줄였다. 8㎏을 늘렸는데 이제 차기작을 위해 살을 빼는 중이다. 문제는 살찌우는 건 쉬운데 빼는 게 어렵다는 거다. 나이 오십을 넘어서니 더욱 쉽지가 않더라.”

-예전 인터뷰 때 당시의 상태를 바둑으로 치면 프로 1~2단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글쎄. 별 차이는 없을 것같다. 다만 8단이 되면 ‘좌조’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한다. ‘조용히 앉아서 조감할 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그 경지까지 오르고 싶다. 물론 ‘입신’이라 부르는 9단도 있지만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서.”(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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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가.

“배우는 그렇다. 스포츠 경기처럼 1·2·3등을 가려서 그것으로 실력을 평가하는 기록경기가 아니다. 이를테면 감정노동자에 가깝다. 자기의 감정을 표현해 그것을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배우가 연기를 끝내주게 잘했다는 말을 듣는 것도, 아주 못했다는 말을 듣는 것도 어렵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감정은 전달했을 거 아닌가. 그래서 늘 어렵고 완벽한 연기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내 연기인생에서 전성기도 슬럼프도 없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건 배우로서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는 말일 수 있는데.

“‘브레인’은 그래도 캐릭터가 강한 편이다. ‘특수본’도 그렇고 ,‘7번방의 선물’에서도 묵직하고 멋있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렇게 보면 약하고 쉬운 캐릭터를 연기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있는 것같다. 관객들한테 충격으로 다가가는 배우가 아니라는 점이다. 내가 뭘 해도 큰 화제가 되지 않는다. ‘왕의 남자’의 연산군도 나름 개성있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상을 받은 것도 없고, CF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내 인생이 그런 것같다. 그럼에도 배우를 계속하고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찌라시를 처음 접했다고 들었다.

“영화를 찍는다고 하자 후배가 보내줘서 처음 보았다. 현대사회는 그야말로 정보사회이자 정보싸움이긴 한데, 정보를 그렇게 자기들끼리 독점하려고 작전을 짜는 게 괘씸하더라. 물론 내 이름이 찌라시에 실린 적은 없다. 그만큼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나 언론이 주목하는 배우가 아니었던 거지. 진짜 그런가?”(웃음)

-지금까지는 지극히 정진영다운 연기를 보여줬다. 혹, 대중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나.

“내가 원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배우는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관객들은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예전부터 그랬다. 좋은 거다.”

-캐릭터를 면밀하게 준비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을 위해선 어떤 준비를 했나.

“찌라시 만드는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 분들 자체가 만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연기한 박사장도 실존 인물이 아닌, 이야기에 필요한 캐릭터다. 난 그저 이야기 전체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역할에 충실했다. 물론 감독과 의논은 많이 했다.”

-‘찌라시’라는 제목이 다소 직설적인데.

“나는 그 제목이 처음부터 좋았다. 관객에게도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라서 큰 거부감은 없는 것 같더라. 호기심은 충분히 가질 것같다. 애초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들 때도 예술영화나 사회고발영화를 만들겠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찌라시’는 격조 있고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라 말하고 싶다.”

-어떤 장르를 좋아하나.

“휴먼 드라마다. 개인적으로 ‘날아라 허동구’(2007)를 많이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아서 아쉽다.”

-하지만 최근 대박영화 대부분이 가족영화다.

“그건 분명한 것 같다. 과거에는 주로 젊은 사람만 영화를 봤다. 하지만 지금은 내 또래나 은퇴하신 분이 극장에 많이 오시더라. 그만큼 관객층이 다양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평소 취미는 뭔가.

“특별한 취미는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주로 혼자 책을 읽거나 가벼운 운동을 한다. 최근 2년 동안은 달라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산 것 같다. 갱년기 우울증도 약간 겪었다. 2년 동안 우울증을 겪으면서 담배도 끊었다. 그런데 세월이 약이더라. 결국엔 다 겪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십대에 접어들었다. 어떻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나.

“배우로서의 포부는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그냥 자연인 정진영으로 남아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을 제대로 보면서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관대해지고 넓어져야 하는데 반대가 될까봐 걱정이다. 그런 우려 때문에 아마 갱년기 우울증을 겪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남자들은 나이를 먹으면 좁아지기 쉽다. 은퇴하고 나면 생활반경이 달라지니까. 그래서 오십을 넘으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준비를 해야 한다. 나에게도 그런 준비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배우라는 직업은 좋은 것 같다.

“맞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거듭나기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후반부 인생을 잘 담아낼 수 없다. 내가 앞으로 맡게 될 역할은 당연히 나이먹은 누구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다. 그러려면 남들이 경험하는 것 이상으로 나도 느끼고 경험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나이에 맞게 넓어져야 한다. 안그러면 이상한 거다. 난 나이먹는 배우가 되는 게 그래서 좋다. 머리도 더 하얗게 됐으면 좋겠다.”(웃음)

-아직 소속사가 없다. 불편하진 않나.

“일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리고 오래전부터 혼자 일을 해서인지 크게 불편하거나 힘든 건 없다. 물리적으로 힘이 든다고 생각하면 그땐 도움을 받아야 되지않겠나.”

-차기작은 드라마라고 들었다.

“4월에 방송하는 ‘엔젤 아이즈’라는 작품이다. 아픈 가족사 때문에 첫 사랑을 떠나보낸 남녀 주인공이 12년 후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난 사연이 있는 아버지 역할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런 캐릭터를 좋아한다.”

글·사진=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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