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安心’에 가면, 장애·비장애인의 경계가 없다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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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5-02   |  발행일 2014-05-02 제36면   |  수정 2014-05-02
대구시 동구 안심은 고려 태조 왕건이 동수대전에 패해 견훤의 군사에게 쫓기다 ‘안심해도 될 만한 지역’이라고 해서 안심(安心)이란 명칭이 붙었다. 이 안심지역이 한 장애인활동가와 지역주민의 노력으로 장애인이 안심하게 살 수 있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 안심에서 장애인 인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윤문주씨와 미래지향적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인 그룹홈,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협동조합 마을애(愛)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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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와 자폐장애를 가진 장애인청년 4명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그룹홈.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 과일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 장애인 공동생활가정 ‘그룹홈’

장애인 청년 넷 5년째 한지붕…순번 정해 직접 식사준비·설거지
각자 일터서 비장애인과 다양한 인간관계 맺으며 ‘주체적인 삶’

대구시 동구 신기동에 있는 D빌라 000호. 34평(112㎡) 규모의 이곳 빌라에는 한호철(30)·한원호(27)·김동규(28)·이상묵씨(27) 등 장애인청년 4명이 5년째 함께 거주하고 있다. ‘그룹홈’이라고 불리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의 주인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거실 벽에는 턱시도를 입은 4명의 가족이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걸려있다. 이들은 매일 각각 순번을 정해 식사준비를 하고 설거지와 빨래 등을 한다. 이들 가운데 호철씨와 원호씨는 형제다. 둘 다 발달장애인이지만 티 없이 맑고 밝은 심성을 지녔다. 형 호철씨는 안심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마을카페 ‘사람이야기’에서 서빙 일을 하고 있으며 원호씨 역시 조합이 운영하는 웰도락(도시락업체)에서 주방보조 일을 하고 있다. 자폐장애를 가진 동규씨는 ‘사람이야기’에서 요리를 맡고 있다. 이들과 함께 사는 대모격인 윤미진씨는 사회재활교사다. 장애청년들이 출근한 뒤 오후1시쯤 빌라에 출근해 행정업무 등을 보고, 밤 9시까지 함께 생활한다. 9시 이후 윤 교사가 퇴근하면 각자의 방이나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거나 인터넷서핑을 한다. 가끔 집에 손님이 오면 술자리도 같이 한다.

윤 교사는 “때론 엄마가 되기도 하고, 누나, 친구 역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1년차까지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든 일을 도와주었으나 점차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임무입니다. 이젠 마트도 스스로 가고 계산도 서로 도와가며 잘 합니다.”

이들은 월~목요일까지 함께 생활하고 금요일 오후~일요일에는 각자 본가에서 생활한다. 장애인가족의 부모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자녀에 대한 정보를 나눈다. 부모들은 처음에는 자식과 떨어져 사는 게 안쓰러워 걱정을 하지만 차츰 자립해가는 장애인 자녀를 보면서 안심을 하고 있다.

윤 교사는 “장애인이 취업을 해 돈을 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일터에서 비장애인과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아간다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격도 밝아지고 능력이 향상됨으로써 부모나 형제도 부담 없이 자기생활을 할 수 있지요. 시설에 입주해 통제된 삶을 사는 것보다 장애인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게 장점입니다.”

그룹홈은 장애인이 시설에 수용돼 비장애인과 격리돼 사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더불어 생활하는 주거형태로, 선진국에선 1960년대부터 일반화됐으나 우리나라에선 90년대 중반에 도입됐다. 현재 국토해양부가 주거복지사업의 하나로 영구임대아파트나 빌라를 빌려 한 가구당 4~5명의 장애인이 함께 살도록 집세 및 인건비, 관리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지역에는 장애인 그룹홈이 약 20군데 있다.

윤 교사는 “그룹홈이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시설에 비해 후원과 자원봉사가 적다”면서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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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동구 안심지역에서 장애인인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윤문주 한사랑어린이집 대표.

● 열정의 장애인 인권 운동가 윤문주씨

 

학업 시기 놓친 장애인 위해 야학 열어주고
장애·비장애인 함께하는 어린이집 만들어

윤문주씨는 대구시 동구 안심지역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한사랑 대표이사 겸 한사랑어린이집 원장을 맡고 있다. 그가 장애인의 인권과 삶을 개선시켜 ‘장애·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마을 만들기’를 시작한 건 대학시절(대구대 특수교육학과)부터다.

“당시만 해도 우리 학과를 졸업하면 다들 특수학교 교사로 갔습니다. 하지만 전 교생실습을 갔다가 안정된 교사의 삶을 포기하고 진정 장애인을 위한 길이 무엇인가 고민했습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만드는 한편 장애인이 차별받는 세상을 바꾸는 데 밀알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윤 대표가 이런 생각을 가진 계기는 대학 4학년 때 ‘한사랑’이라는 봉사단체에 가입하고 나서부터다. 1992년에 설립된 한사랑은 비영리법인으로 저소득가정 장애아동을 저렴한 교육비로 교육시키는 학원이었다. 당시 조기교육열풍이 부는 가운데 장애아동이 학원을 다니는 것은 꿈에나 가능할 때였다. 하지만 이 학원의 교사는 5만~10만원의 박봉을 받아가면서도 장애아동을 가르쳤다. 그가 이들 교사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 당연한 일.

그는 94년부터 학업시기를 놓친 장애인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기 위해 야학을 개설하는 한편 96년에는 ‘한사랑어린이집’을 열어 대표를 맡게 된다. 이후 지금까지 어린이집 원장과 야학을 지속하고 있다. 그가 야학을 열게 된 건 장애인을 깨우쳐 주체적으로 세상에 나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99년 저소득층장애인을 위한 무상보육과 교육이 이뤄지면서 그는 장애아동교육에 대한 방향을 전환하게 됐다.

2003년 윤 대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한사랑어린이집을 장애아동과 비장애아동을 함께 보육하는 어린이집으로 만들었다. 그해 한사랑어린이집이 주최하는 어린이날 행사를 통해 동네주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후 마을음악회, 공부방서비스 등을 통해 주민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박인규 전 참여연대 사무총장도 그의 든든한 후원인이 됐으며, 장애아동·비장애아동이 함께 하는 아띠도서관 등도 큰 도움이 됐다.

현재 한사랑어린이집에는 22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장애아동(30명)과 비장애아동(20명)이 더불어 교육을 받고 있다. 지난해 설립한 초등학교 방과후학교인 협동조합 ‘둥지’도 올해부터 장애아동을 받고 있다. 한사랑어린이집과 아띠도서관, 그리고 안심협동조합을 만들기까지 묵묵히 도움을 준 이들은 바로 장애아동의 부모들이다. 이들이 앞장서 출자해 마을카페 ‘사람이야기’와 로컬푸드 직매장인 ‘땅이야기’를 설립했다.

윤 대표는 “시설이 아닌 주택협동조합을 통해 마을주민과 장애인이 네트워크하고,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실험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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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마을애 조합원과 아동들이 야유회를 가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장애·비장애인 교육공동체 ‘마을애’

지하철 타고 은행 같이 가기 등 생활 밀착형 교육으로 장애 어린이 자립 도와

마을애는 ‘마을아이’란 뜻과 ‘마을을 사랑한다(愛)’는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마을애의 조합원은 약 30명. 이사장을 비롯해 13명의 이사로 구성된 마을애는 장애아동부모와 장애아동 후원자 등이 만든 협동조합이다. 부모들은 자발적으로 가족캠프나 텃밭 가꾸기, 마을축제, 나눔사업, 워크숍 등을 통해 장애·비장애인이 더불어 사는 교육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조합원은 시설 안에서 물리치료, 직업치료, 미술치료 등 천편일률적이고 단편적인 교육프로그램에 의지하기보다 생활밀착형교육으로 장애아동의 자립을 돕는다. 예를 들어 물건을 사고파는 데 같이 가기, 지하철을 타고 은행에 같이 가기 등 생활과 관련한 실질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또한 안심협동조합 조합원이기도 하다.

차기영 마을애 이사장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 특별한 장소가 아니라 삶의 터전인 마을에서 인정을 나누고 소통하며 장애·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마을공동체를 가꿔가는 게 마을애의 설립목적”이라고 했다.

조합원인 성영주씨는 “장애아동부모가 교육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비장애아동 부모보다 쉽지 않다”며 “마을애 후원 조합원이 늘어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었으면 싶다”고 했다.

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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