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엄마와 같이 읽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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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08-18 07:45  |  수정 2014-08-18 07:45  |  발행일 2014-08-18 제15면
[행복한 교육] 엄마와 같이 읽는 책

방학이라 근처 도서관에 갔다. 오전이라 도서관은 쾌적하였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사람마다 도서관에서 노는 코스가 다르겠지만 나는 어린이도서실을 자주 찾는다. 그곳에 놓여있는 아기자기한 소파의 눈맛도 좋고, 얇은 두께의 동화들이 내 수준에도 제법 잘 맞기 때문이다.

나는 동화책을 옆에 쌓아두고 마치 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다 다섯 살쯤 되는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에 집중을 하게 되었다. 낮은 소리였지만 엄마는 인물에 따라 어조를 달리하면서 아주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아이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따금 아주 맑고 청랑한 소리를 내어 웃었다. 나에게는 그림이 보이지 않았지만 엄마의 소리만으로도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 그렇게 듣다 보니 책 읽어주는 엄마의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엄마 옆에 앉아 있고 책은 엄마의 손에 들려 있다. 글자 읽기에 몰두한 엄마는 아이가 그림에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도 책장을 넘겨버린다. 읽다가 질문을 하는데 주로 “재밌니? 이 그림 좀 봐, 예쁘지?”와 같은 것이라 아이는 “응, 아냐”로 짧은 대답만 한다. 가끔 “너는 이 강아지가 어떤 마음이었을 거 같아?”와 같은 아주 훌륭한 질문을 해 놓고도 아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참 슬펐겠다. 그치?” 하고 엄마가 대신 대답을 한다. 한 권을 다 읽으면 책을 덮고 “아까 여자애가 어디로 갔지?” 하고 묻는데 내용 확인 차원의 질문이 많다.

엄마와 함께 책을 읽을 때 아이는 엄마의 체온, 몸 냄새, 목소리, 마음을 함께 읽는다.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독서에 관심 있는 국어 선생(이것도 직업병이다!)의 입장에서 약간의 제안을 하고 싶다. 먼저 책 읽을 때 주도권을 아이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아이가 그림을 다 본 뒤에 스스로 책장을 넘길 수 있게 하고, 궁금한 점을 아이가 먼저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질문이 책 내용을 벗어나더라도 아이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이 좋다. 책을 읽을 때 아이의 관심 영역은 어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왜 그 부분에 관심이 가는지, 어떤 일이 생각나는지, 그때 자신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책을 매개로 아이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면 좋겠다.

예전 책 읽기가 ‘집어넣기’라면 요즘 책 읽기는 ‘끄집어내기’를 중요하게 여긴다. 저자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보다 책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 메시지를 찾아내도록 지도하는 것이다. 특히 엄마와 함께 읽는 책일수록 내용 이해보다는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속도를 늦추어주는 것이 좋다. 결국 엄마는 많이 읽어주기보다 많이 들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책 읽어 주기가 얼마나 힘든지 안다. 침대 옆에서 책을 읽어주다 보면 나는 졸고 아이는 말똥말똥해져, 결국 ‘오늘은 그만 읽자’며 아이를 다그친 기억도 많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육아에 서툴고 힘들어했던 내가 그나마 잘한 것이 아이와 같이 책을 읽고 잠자리에서 책을 읽어준 것이었다. 그건 잘한 일이었다.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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