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대결] 나를 찾아줘: 보이후드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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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24   |  발행일 2014-10-24 제42면   |  수정 2014-10-24
★ 나를 찾아줘 (장르:스릴러 등급:청소년 관람불가)
결혼 기념일 아침, 내 아내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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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가 사라졌다. 결혼 5주년 기념일 아침, 연례행사처럼 빠지지 않고 준비한 ‘보물찾기’ 쪽지만을 남겨둔 채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에이미는 어린이 인기동화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녀의 남편은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성 잡지 기자 닉(벤 애플렉).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에 반한 에이미는 모두의 축복 속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그녀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나를 찾아줘’는 아내의 실종과 함께 전 국민이 의심하는 용의자로 몰리게 된 남편 닉의 행적과 심리를 스릴러적 긴장감으로 촘촘히 채워간다. 닉은 아내가 사라지자 바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하지만 에이미가 숨겨뒀던 편지와 함께 곳곳에서 드러나는 단서들은 그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급기야 ‘그가 날 죽일지도 모른다’는 에이미의 마지막 일기까지 발견되자 닉은 이제 아내를 죽인 파렴치범으로 몰린다.

‘과연 닉은 아내를 죽였을까?’ 사실 이 영화에서 그다지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 궁금증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이미 그가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여기거나, 설령 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닉의 이후 행보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것이 대중과 미디어의 행태다.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 경찰은 물론이고, 화제에 목말라하는 미디어는 앞다퉈 이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한다. 마치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닉은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게임 속 캐릭터이자 편견과 부조리의 희생양이 된다.

닉은 경기 침체로 인해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후, 고향인 미주리의 시골로 내려와 동생 마고와 함께 작은 바를 운영 중이다. 마지못해 따라왔지만 에이미의 처지도 별반 나을 건 없다. 책 주문량이 줄어들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그녀의 부모는 딸에게 맡겨두었던 신탁 기금을 되찾아갔다.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해 보였던 두 사람이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결부된 권태와 무심함은 보이지 않는 균열을 만들어냈다.

영화가 활기를 띠는 것은 여기서부터다. 부부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되고, 두 사람의 결혼 생활 역시 만인 앞에 적나라하게 까발려진다. 사실 이 영화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긴장감은 부부라는 친밀감에서 기인했다. 거기서 아름다움이 나왔고, 기만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사랑과 살의가 공존할 수 있는 부부관계의 극단을 보여준 이 영화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종 흥미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이 과정에서 기존 스릴러 장르와 차별되는 매력적인 장치들을 심어놓았다. 닉의 시간과 에이미의 시간을 병렬 구조로 위치시켜 놓은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조가 그렇고, 과거 연애시절부터 써내려 간 에이미의 내레이션 형식의 일기와 닉의 독백은 인물에 대한 심리를 보다 심도 있게 관찰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됐다. 영화는 그렇게 사랑으로 충만했던 행복한 연애시절부터 그 후까지, 현대사회에서 대두되는 부부문제를 장르적으로 해석하고 확대해 나간다.

‘나를 찾아줘’는 스릴러 장르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여류소설가 길리언 플린이 2012년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길리언 플린은 직접 이 영화의 각본까지 담당했다. 연출은 감각적이고 섬세한 연출력의 데이빗 핀처가 맡았다. 잠시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는 이야기 장악력은 역시나 빛난다. 여기에 힘을 보탠 건 닉을 연기한 벤 애플렉이다. 데이빗 핀처의 말처럼 “대중에 휘둘리면서도 어느 순간 미디어에 노출된 자신을 즐기기 시작하는 이중적이면서도 밉지 않은 미묘함”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탄탄한 연출과 이야기의 완벽함이 제대로 어우러진 명품 스릴러의 탄생이 가능할 수 있었던 이유다. 특히 마지막 반전은 두고두고 회자될 만한 이 영화의 방점이다.


★ 보이후드 (장르:드라마 등급:15세 이상 관람가)
12년간 카메라에 담은 한 소년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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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2년이다. 영화 ‘보이후드’는 여섯 살 소년 메이슨이 열여덟 살이 되기까지 12년간, 그와 그의 가족이 겪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아낸다. 극 영화로는 전례가 없었던 ‘보이후드’는 “어린 시절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다소 엉뚱하지만 흥미로운 발상에서 출발한다.

메이슨 주니어(엘라 콜트레인)는 그의 누나 사만다(로렐라이 링클레이터)와 싱글맘인 올리비아(패트리샤 아케이트)와 텍사스에 살고 있다. 음악을 하는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들러 메이슨과 사만다를 데리고 친구처럼 놀아줄뿐이다. 하지만 메이슨은 대학 강사인 엄마의 일 때문에 친구들과 헤어져 계속해서 낯선 도시로 이사를 다니는 게 싫다.

‘보이후드’는 소년 메이슨의 성장 영화다. 메이슨은 부모의 이혼과 어머니의 재혼, 막연한 꿈, 첫사랑과 실연 등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을 통해 그만의 생각과 철학 그리고 감성을 키우며 홀로 세상에 발을 내디디는 힘찬 여정을 시작했다. 사실 12년 동안 한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나는 과정을 담는다는 건 모험에 가까운 시도다. 하지만 인생의 작은 순간들을 통해 시간이 일상에 끼치는 영향을 탐구해왔던 ‘비포’ 시리즈의 링클레이터 감독에게 ‘보이후드’는 충분히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 자신감을 가질 만한 프로젝트였다.

그는 이야기의 진실성과 현실감에 주목했다. 누구나 경험했을 삶의 작은 순간들이 모인 이 여정을 현실의 재현보다는 기억이 구성되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갔다. 이 때문에 소년과 소녀의 성장과 함께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된다.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자라기까지의 성장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들의 변화와 성숙의 과정이 반짝이는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기보다는 인생이 그렇듯 영화가 유동적인 하나의 흐름으로 느껴지도록 진행된다.

제작진과 배우는 12년 동안 매년 만나 약 15분씩의 분량을 촬영했다. 원래는 매해 10분씩 완성해서 총 120분짜리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영화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담아낸 결과 세 시간에 가까운 영화로 완성됐다. 특히 ‘보이후드’에서 가장 어려웠던 과제는 12년간 함께할 소년과 소녀를 찾는 것이었다. 제작진은 텍사스주 오스틴 토박이인 엘라 콜트레인을 메이슨 역으로 발탁했다. 링클레이터와 엘라는 매년 새해를 맞으면 엘라가 어떤 시점에 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그중 일부를 메이슨 캐릭터에 부여하는 식으로 촬영을 해나갔다. 사만다 역은 당시 아홉 살이었던 링클레이터 감독의 딸 로렐라이에게 맡겨졌다.

‘보이후드’는 다큐멘터리적 요소는 없지만 시간의 경과에 맞춘 인물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현실감이 부여됐다. 따라서 장면이 바뀔 때마다 관객들에게 시간의 변화에 대한 실마리를 줄 필요가 없었다. 이는 특수효과로 포장된 가상의 체험과는 다른 질감으로 관객들을 매 순간의 현재로 인도한다. 배우들은 참을성을 갖고 멀리 내다봐야 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영화가 만들어지는 기간, 배우들은 자신이 촬영한 분량을 볼 수 없었다는 것. 그들 역시 영화가 완성된 12년 후 비로소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그리고 있지만, ‘보이후드’는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모성에 대한 관점을 그린 영화이기도 하다. 이를 상징하는 올리비아 역의 패트리샤 아케이트는 고군분투하는 싱글맘으로 출발해 열정과 의지로 성공한 교수이자 두 자녀를 훌륭히 키워낸 부모의 현실적인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보이후드’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성장 영화로 완성됐다. 바로 이 영화가 지닌 힘이자 매력이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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