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성의 북한일기 .14] 어르신 한분을 차에 태워주니 “평생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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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10-31   |  발행일 2014-10-31 제34면   |  수정 2015-07-10
20141031

◆1998년 3월19일 목요일

지난해 12월 중순, 북조선 경제특구 나진선봉시에서 중국 연변과기대로 돌아왔다. 방학 동안(1~2월) 대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다가 2월 말 학교에 돌아와 북조선 나진선봉시에 세워질 ‘나진과학기술대학’에 대한 계획과 건설 중에 있는 가칭 ‘김정숙 어린이집’ 공사를 위한 준비 작업을 마쳤다. 오늘 새벽 4시에 나진으로 출발했다. 나를 포함해 손신원, 조현직, 한우섭, 김창규 등 다섯 명이다. 나를 제외한 네 사람은 모두 4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다.

뒤차로 올 최광식 교수는 원동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이중 연변과학기술대 부총장께서 새벽 일찍 나진으로 떠나는 우리들에게 격려의 말씀으로 배웅했다. 실천으로 본을 보이는 이중 부총장이다. 원동에서 최광식 교수와 합류를 했다. 새벽 일찍 길을 나섰지만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나진에 도착했다. 무지개 식당에서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박동숙 여사는 많이 야위었다. 함께 일하던 서순득씨는 독립해서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박 여사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주변 여건이 허락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오해받거나 입방아에 오르내릴 수 있는 행동을 삼가리라. 명철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서먹서먹하다. 명철이를 멀리하라는 C국장의 충고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명철이를 대하여야 할까? 인간적으로 정을 나누고 지내온 나와 명철이 사이가 아닌가. C국장은 명철이를 왜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1998년 3월23일 월요일

건설할 나진과기대(가칭) 설계는 민족성과 현대성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토의했다. 담보금은 약 500만달러로 예상됐다. 국수 공장 설립에 관한 토의도 했다.

1. 밀가루 1t(중국시장 가격): 150~170달러

2. 나진 도착 운임포함: 약 250달러(인민폐: 2천~2천100위안)

3. 국수 기계 2대: 일일 밀가루 1t 소요

4. 1인당 하루 국수 소요량: 200g

5. 밀가루 1t으로 일일생산시: 약 2천명 식량(하루에 지급할 수 있는 생산량)

6. 쌀 1㎏ 값: 60원(조선돈)

오늘 손수 차를 몰고 중국으로 나갔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땅이 좁아서인가.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당했는데 팔다리가 멀쩡하다. 김진경 총장과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 일행을 모시러 학교로 갔다. 도로를 따라 짐보따리를 이고 진 아낙네들이 수없이 걷고 있다. 나진에서 중국과 국경인 원정까지는 50㎞ 넘는 거리다. 군용 트럭이 간간이 지나다니는 모습뿐이다. 사람들이 군용차에 콩나물 시루같이 꽉 들어차 있어 더 이상 사람을 태울 수 없다. 차를 얻어 타지 못한 사람들은 무작정 걷는다. 한 초라한 아주머니와 할아버지 한 분이 걷고 있었다. 차를 세워 이들을 차에 태웠다. 고맙다는 인사가 연발이다. 이분들도 차를 얻어 타지 못해 100리 길을 무작정 걷고 있는 중이었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70이 넘었다. 조선에 와서 처음 보는 노인이다. 자기 평생 이렇게 고마울 수 없다고 말하는 노인이다. 가족이 다섯이란다. 가족이 쌀 10㎏면 한 달 생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곧 봄이 오면 산과 들에서 나물을 뜯어 죽을 쑤어 하루 두 끼를 먹을 수 있다. 생명을 연장하는 데 쌀 10㎏이 드는 것이다. 봄이 오면 지금보다 생활이 나아질 거라고 한다. 인민폐 100위안을 아주머니께 쥐여 주었다. 사양을 한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받으라고 했다. 감사의 인사를 한다. 감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동족인 이곳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인민폐 100위안이면 이들 5인 가족이 다섯 달을 살아갈 수 있다.

전 연변과학기술대 건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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