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레스토랑 ‘안티카빌라’ 서주형 사장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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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1-23   |  발행일 2015-01-23 제41면   |  수정 2015-01-23
“세계 3대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대구 공연 때 제가 음식 담당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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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형 셰프의 최고의 미덕은 단연 서글서글한 웃음이다. 요리가 천직임을 자각했기에 가능하다.


‘옥탑방’ 같은 레스토랑이었다. ‘안티카빌라’(이탈리아어로 오래 된 마을). 앞산 고산골 등산로와 계곡 사이 삼각주 같은 언저리에 아늑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등산객에겐 노출이 잘 안 된다. 신부나 수녀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식도락가가 단골집으로 점찍어 두기도 한다. 이 집의 최고 메뉴는 살갑고 친절하고 다소곳한 오너 셰프 서주형씨의 품성. 2층 화장실로 올라가는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 마당 구석에 놓인 백철 가마솥. 내부로 들어오면 별다른 인테리어가 없다. 수수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수도원 별채 식당에 온 것 같다.

대구 출신인 그는 수성대(옛 산업정보대) 조리학과를 졸업했다.

원래 강북고 태권도 선수였다. 고1 때는 협회장기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릎과 허리 부상으로 주저앉고 만다. 방황하기 시작한다. 고모부가 그의 진로를 잡아준다. 고모부는 대구지방법원 맞은편에서 ‘녹천’이라는 한정식집을 꾸려갔다. 체력이 좋은 서 셰프를 법원 구내식당 주방보조로 일하게 한다. 법원 구내식당 일이 끝나면 즉시 고모부 식당에서 또 일을 했다. 운동의 힘듦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식재료를 장만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처음 배운 볶음밥을 가족과 친구에게 해주니 모두 행복해 했다. 요리의 매력포인트를 단번에 습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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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마산치즈로 만든 작은 바구니가 인상적인 샐러드인 ‘채스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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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쭉한 소스가 압권인 홍합을 베이스로 한 ‘스꾸 디 꼬제 알 뽀모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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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새우와 베이컨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스뻬짜디노 디 감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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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 스테이크.


수수한 레스토랑…이탈리아 가정식 요리
맛있는 음식보다 건강과 위생이 더 중요
설익은 퓨전요리는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빵도 소시지도·생면도 모두 수제
가장 인상적인 맛은 안심 스테이크
30일 이상 1℃에서 숙성시킨 것만 사용


감이 좋은 덕분에 일찌감치 그랜드호텔 요리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수성대에서 요리공부를 했다. 굵직한 학교 행사가 있으면 그가 나서 요리해 주었다. 지도교수의 눈에 든다. 운명의 한 사내를 소개 받는다. 바로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 요리에 능한 조르지오였다. 그는 지역에 레스토랑을 연 첫 이탈리아 현지 셰프였다. 초창기에는 앞산순환도로 입구에서 나폴리를 오픈한다. 조르지오는 이탈리아 문화원을 열고 파스타 등을 알려준다. 당시 문희갑 대구시장 등이 거기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요리에 더 궁금증이 생겼다. 서울로 가서 요리 전반에 대해 익히고 싶었다.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레스토랑 ‘아란치오’의 오너셰프 이충석 문하에 들어간다. 일단 정직과 성실만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남보다 한두 시간 일찍 출근했다. 다시 강남구에 있는 레스토랑 ‘뻬뻬비올라’의 이상승 셰프에게 간다. 여기서 팔기 위한 음식과 하고 싶은 음식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절감한다. 다시 청담동에 있는 프렌치 스타일의 이탈리아 레스토랑 ‘마르케시’로 가 이판조 셰프에게 또 한 수 배운다. 자기만의 요리를 하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의 나이 28세 무렵이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현지를 보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관광비자로 들어가서 시칠리아부터 나폴리, 북부지역까지 3개월간 이탈리아 전역의 유명 식당을 유람했다. 일단 식당에 취직을 하기 위해 50여곳에 응시했다. 다들 회피했다. 움브리아 지역의 아시시에 있는 레스토랑 ‘에르바’에 들어간다. 주인 스테파노는 동양에서 온 섬세한 손길과 성실한 청년에게 엄청난 호의를 베푼다. 재료만 다를 뿐 요리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워낙 기본기가 탄탄해 처음부터 불판을 잡는다. 거기서 국내에선 보기 힘든 각종 디저트와 에피타이저류를 익힐 수 있었다. 또한 살라미 계열의 말린 말의 엉덩이살의 일종인 브레사울라, 과일류 디저트인 아미코케 등도 그의 레시피 목록에 수록된다. 역시 재료가 서울보다 몇 배 더 신선했다. 서울서 먹던 모차렐라 치즈와 현지의 것은 그 맛이 엄청나게 차이 났다. 현지 맛이란 결국 ‘신선한 맛’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월급을 받으면 훗날 더 내공을 쌓을 수 있도록 요리책을 주로 구입했다. 120여권을 샀다. 바질, 세이지, 타임, 안티초크 등 주요 허브의 씨앗을 책갈피에 넣어 국내에 들여왔다. 요즘 그걸 심어서 사용하고 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이탈리아 시절을 뒤로 하고 귀국했다.

이제부터 요리보다 레스토랑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축적할 때라고 판단한다. 이태원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 ‘봉에보’에 들어간다, 6개월간 와인, 서빙, 전화 예약과 손님 접대 방법 등을 익혔다. 그로선 문무를 겸비하는 시간이었다.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서도 경영에 대해서도 일정한 안목이 생겼다. 자신이 생겼다. 2009년 7월, 현재 자리에서 서주흥의 이름을 단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고급 식당은 아니다. 그냥 이탈리아 가정식이다. 그는 퓨전음식엔 별로 관심이 없다. 정통의 맛, 기본의 맛에 충실하면 그게 내공으로 이어지고 그 내공에 의해 새 메뉴가 탄생한다. 설익은 퓨전요리는 오만이라고 믿는다.

그의 실력을 인정받는 날이 왔다. 2009년 영남대 개교 60주년 기념 세계 3대 성악가 호세 카레라스 초빙 공연 때 대구에 머무는 동안 담당 요리사로 음식을 만들었다.



◆ 서주형의 ‘나의 레시피’

일단 ‘수제’에 올인한다. 이탈리아 수제 소시지의 하나인 살사차도 5일 만에 만들어낸다. 식전용 수제빵은 세 종류, 이탈리아 통밀인 세몰리나와 강력분, 그리고 계란을 섞어 수제 생면도 만든다.

그는 맛보다 먹고 난 후 사람의 몸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맛있는 음식보다 건강하고 위생적인 음식이 더 중요하단다. 가능한 한 소금을 많이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쉽게 감칠맛을 내는 치킨파우더, 향신료, 화학조미료 등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파괴하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

텃밭에는 200여포기의 바질, 100포기의 루콜라, 이 밖에도 토마토, 로즈마리, 민트 등 15종의 허브류가 심겨 있다. 가끔 단골에게 모종도 선물한다.

풀 코스를 주문했다. 전채는 치즈를 누룽지 바구니처럼 변형해 샐러드를 담아낸 것이다. 절인 생 연어(그라브락스)도 그가 즐겨내는 전채다. 왕새우 요리도 다르다. 마늘, 레몬, 양파, 보드카, 와인 등을 넣고 살짝 데친 다음 그 소스가 새우에 스며들게 잘 졸여 낸다. 베이컨으로 새우를 감싸놓아 색다른 맛이다. 모차렐라와 리코타 치즈도 직접 만든다.

그는 요즘 홍합 응용 요리에 푹 빠져있다.

홍합에 밥을 넣고 리조토처럼 변주해 낸다. 대표적인게 ‘스쿠 디 코제 알 포모도로’. 토마토 소스를 이용한 홍합파스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양파, 샐러리, 당근, 토마토, 통후추 등을 섞어 기본 소스를 만든다.

스테이크가 가장 인상적인 맛이다. 사용하는 안심은 30일 이상 1℃에서 숙성해 낸다. 온도가 높으면 자칫 변색될 수 있다. 얼어도 안 된다. 그럼 핏물이 형성된다. 적당한 온도에서는 칼을 대도 핏물이 과도하게 생기지 않는다. 과도하면 다 냉동육이라 보면 된다. 소금도 미리 뿌리면 삼투압 원리에 의해 육즙이 쉽게 소진된다. 접시에 담기 30초 전에 위에 조금 뿌린다. 참고로 웰던은 얇게 빨리 구워야 하고 미디엄 레어는 두껍게 해서 빨리 구워야 한다. 고기 위에 빻은 마늘이 조금 놓여 있다. 마늘향이 고기 냄새를 잡아준다. 조금 썰어 먹자 마늘향이 풍긴다. 구울 때 마늘, 올리브 오일, 레몬 소스를 사용한다. 식감이 장난이 아니다. 꼭 고기로 만든 바게트 같다.

디저트 라인도 풍성하다. 수제 초콜릿, 20여종의 셔벗, 티라미수, 수플레, 무스, 젤라토 아이스크림 등 형태가 여럿이다.

휴일도 없고 종일 요리 생각만 하고 산다.

대구시 남구 봉덕2동 1222-16, (053)471-3523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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