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케냐 나이로비 거주…아프리카 야생동물 전문사진가 김병태씨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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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27   |  발행일 2015-02-27 제36면   |  수정 2015-02-27
표범 1.5m 앞에서 카메라 들이대는 강심장…“코끼리떼 덮쳐 아찔한 순간도”
20150227
아프리카 야생동물 전문사진가 김병태씨가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야생의 감성’ 사진전시장에서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전시회는 다음달 14일까지 열리며 관람은 무료다.

생태·습성·기후 모르고 가면 허탕
운전수·동물탐지가이드 대동
한 번 출사하면 1주일정도 머물러

내달 14일까지
대구문화예술회관서 전시회 열려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아프리카행
무역업 현지 통관실수로 빈털터리
사업 안정되며 다시 본격 사진작업

교민 1500여명
10여년간 한인회장 맡아 민간외교


몇 해 전 제주도 아프리카박물관에서 김중만이 찍은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사진을 보고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동물의 왕국’ TV다큐멘터리를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지, 날아다니는 새를 찍느라 20년 이상 골몰했던 기자의 성에 차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의 ‘스틸컷’은 동물도감을 보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한국인 최초로 ‘아프리카동물사진집’(2001년)을 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광고사진가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주부터 대구문화예술회관(1~4관)에서 열리고 있는 ‘야생의 감성(Wild Emotion)’ 사진전시회는 이러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3월14일까지 열리는 이 사진전은 ‘동물의 왕국’ 마니아가 놓쳐서는 안 될 전시회다. 게다가 공짜다.

바람에 갈기를 휘날리며 눈을 감고 있는 수사자, 싸움에 져 힘 없이 돌아서는 수사자의 슬픔, 입을 벌린 채 싸움을 하는 두 마리의 하마, 낮잠을 자는 새끼 표범, 초롱초롱한 임팔라의 눈망울, 폭우를 맞으며 홀로 서 있는 톰슨가젤 등 개개의 사진작품이 대자연과 호흡하고 있다.

때론 동물이 점과 음영으로 나타나고 그 여백은 대부분 자연과 풍경으로 채운 것도 사진가의 내공이다. 아프리카의 강한 색감 또한 매혹적이다. 사진가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세계가 아닌 따뜻한 시선으로 자연과 동물을 바라보고 있다.

이 전시회의 주인공인 사진가 김병태씨(53)는 청구고를 졸업하고 경북대 무역학과를 나온 대구 토박이다. 그는 23년째 아프리카 케냐에 살면서 국립 마사이마라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암보셀리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을 찍어왔다. 현재 케냐한인회장이기도 한 그에게 마사이마라와 암보셀리, 세렝게티의 사바나는 놀이터나 마찬가지다.

시인 조승래는 그의 사진을 두고 ‘광활한 아프리카의 초원을 배경으로 펼친 한편의 장엄한 대서사시’라고 평했다. 김병태에 대해선 ‘마법사, 대하서사시인, 목자, 진실의 증언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17일 대구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고향에서 사진전을 여니 감개무량합니다.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됐던 친구도 만나고 해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 전엔 주로 일본의 신주쿠, 미야기, 요코하마, 나고야 등지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아프리카 야생동물사진은 주로 서양인이 많이 찍는데, 동양에선 ‘이와고 미쓰아키’의 사진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는 지난해 한-케냐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개인전을 하기도 했다. 지역전시회로선 대구가 처음이다.

“사자, 표범, 코끼리, 기린 등 대자연 속의 주인공은 사실 동물입니다. 인간이 편의대로 동물을 구분했지만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잖습니까. 야생은 본능입니다. 서로 잡아먹고 잡히고 하지만 죽고 사는 건 다 자연의 섭리이지요. 잡아먹혔다고 굳이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야생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장난치고, 사랑하고, 싸우고 하는 게 인간과 꼭 같아요. 야생동물을 찍을 땐 그들의 친구가 돼야 합니다.”

그의 사진경력은 1988년 IBM에 입사하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대학시절 카메라를 구입할 형편이 안돼 취직하자마자 첫 월급으로 니콘F3를 구입했다.

“경기도 부천에 살았는데 사진을 하고 싶어서 부천사진동우회에 가입했습니다. 소래포구나 서해안 염전 등지에 주로 출사를 갔어요. 사람들이 흔히 찍는 우아한 살롱사진보다 ‘내 마음의 풍경’이랄까. 소소한 일상의 풍경이나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풍경을 찍는 걸 좋아했습니다. 열심히 찍다보니 환경부에서 주최한 환경사진대상까지 받았어요. 어릴 적 금호강변과 낙동강변에서 주로 놀았는데 대상을 받은 작품은 금호강, 낙동강 두물머리에서 백로와 해오라기가 집단으로 먹이를 찾아 몰려온 사진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사진의 매력에 빠져버린다. 가정경제보다 카메라 액세서리와 장비, 필름을 구입하는 데 신경을 더 쓰고, ‘선데이 포토그라퍼(일요사진가)’가 돼버렸으니 아내가 좋아할 리 없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사진과 사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5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전공을 살려 한국의 사진재료를 케냐에 공급하는 무역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아버지의 논을 팔고, 퇴직금을 보태 케냐로 떠났습니다. 가족은 왜 하필이면 먼 아프리카냐고 말렸지만 결심을 말릴 수 없었지요.”

하지만 무역통관과정에서 통관사의 실수로 2억원이나 되는 인화지와 현상약품 등 사진재료가 세관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유효기간을 넘겨 못 쓰게 돼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납품기일까지 어겨버려 큰 손실을 봤다.

“34세 때 거의 빈털터리가 됐습니다. 하지만 가족 앞에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지인의 도움으로 사무용가구 무역을 시작했는데 기적같이 2년 만에 다시 일어서 97년에는 가족이 아프리카로 오게 됐습니다.”

그는 2000년대 들어 사업이 안정되면서부터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93년부터 틈틈이 야생동물을 찍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야생동물을 찍은 건 차를 구입하고 나서부터입니다. 집보다 차를 먼저 샀습니다. 일본산 4륜구동에다 90ℓ짜리 드럼통 2개를 달고 지붕을 뚫어 차를 개조했지요. 출사를 갈 땐 운전수와 야생동물 탐지가이드를 대동하고 갑니다. 그래야만 사진에 몰입할 수 있어요. 한번 떠나면 일주일 정도 머무는데 어떤 장면을 찍을 것인가를 구상하고 갑니다. 물론 동물에 대한 사전정보를 알고 가야겠지요. 건기와 우기, 동물의 이동, 생태와 습성을 모르고 가면 허탕을 칩니다. 보통 맹수들은 새벽이나 저녁 무렵에 움직입니다. 낮엔 덤불 속에 숨어있지요. 차 안에서 밤을 새우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좋은 사진을 건지려면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합니다. 인내 없이 걸작을 만들기는 힘들죠.”

그는 열기구를 타고 누떼의 대이동을 촬영하기도 했다. 또 1.5m 앞에서 표범의 눈망울을 렌즈에 담기도 할 만큼 강심장을 가졌다. 코끼리 떼가 차를 향해 돌진하고 차문이 열린 지도 모른 채 맹수를 찍다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아프리카에서 살고 있는 한 평생 동물을 찍을 요량이다.

“케냐엔 한국인이 1천500명 정도 살고 있습니다. 10여년간 한인회장을 맡으면서 교민의 친목과 민간외교에 힘을 썼지요. 케냐가 영국의 오랜 식민지여서 그들이 야생동물을 많이 죽였습니다. 그 와중에 코뿔소 같은 개체는 멸종되다시피 했어요. 지금도 밀렵으로 코끼리 사냥을 하곤 합니다. 동물은 물러날 때를 알고 싸움에 지면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사람보다 낫죠. 또 그 친구들은 자살하지 않습니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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