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후손 오상균 광복회 대구지부 사무국장

  • 명민준 황인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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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2-28   |  발행일 2015-02-28 제3면   |  수정 2015-02-28
"독립운동이 스포츠라니…학생들 역사인식 바로 세워야"
20150228
독립운동가 오기수 선생의 후손인 오상균 광복회 사무국장이 27일 대구시 동구 조양회관 내의 독립운동 관련 전시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최근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공적 찾을 길 열리고 있지만
정부 유공자 발굴 노력 부족
25년간 훈격조정도 한 번 안해”

3·1운동 이후 독립에 대한 갈망은 그 어느 때보다 컸다. 끓어오르는 열망은 20대 청년 남파(湳波) 오기수 선생(1892년 7월15일~1959년 2월20일)에게도 전이됐다. 오 선생은 의성에서 뜻있는 동지를 모아 만주조선독립군에 합류했다. 훗날 대구지역 친일 한인관리들을 처단하기 위해 폭탄을 밀반입하는 시도를 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독립투사 아버지를 우르러보던 아들(오상균 광복회 대구지부 사무국장)은 어느덧 머리 희끗한 60대 노신사가 됐고, 지역 독립유공자와 그 가족을 뒷바라지하는 제2의 인생을 걷고 있다.

27일 3·1절을 앞두고 만난 오상균 사무국장(62)은 세상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오 사무국장은 “3·1절을 ‘삼점일절’이라고 읽고, 지역 독립투사를 단 한 명도 모르는 젊은 세대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 훈격재심을 통해 세월 속에 묻힌 독립유공자의 공적도 되찾아 주어야 한다”며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우리 사회에 바라는 점을 하나씩 펼쳐놨다.

오 국장은 우선 요즘 학생들의 역사인식 수준부터 꼬집었다. 광복회 대구지부가 사용중인 ‘조양회관(대구시 동구 효목동·1922년 완공 등록문화재)’은 역사공부 견학장소로도 활용되고 있어, 자연히 오 국장은 학생들과의 만남이 잦은 편이다. 오 국장은 독립투사에 관해 먼저 질문해 오는 학생들이 기특할 법도 하지만, 실상은 한숨부터 나온단다. 오 국장은 “실제로 어떤 학생은 안중근 의사가 소아과 의사냐며 장난스럽게 묻기도 한다. 독립운동이 스포츠냐는 질문을 듣고 귀를 의심하기도 했다”며 “상식교육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광복을 이끌어낸 독립투사에 대한 존경심 고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인정한 독립유공자들의 훈격조정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독립유공자들은 사적자료가 입증되면 정부로부터 일정 수준의 훈격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당시 독립운동은 첩보영화 수준으로 비밀리에 진행돼, 사적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은 편이다. 최근에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독립유공자들의 공적을 찾을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지만, 이를 조정해 줄 정부의 문은 굳게 닫긴 상태다. 2건의 공적을 이미 인정받았으면, 나머지 8건의 공적이 뒤늦게 발굴돼도 정부가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 사무국장은 “1990년 이후 단 한 번도 훈격조정이 없었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서훈은 있으되 보훈은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는 이유”라고 말했다.

정부의 독립유공자 발굴활동도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 광복회= 일제강점기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펼친 독립투사와 그 후손들이 1965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공법인단체다. 매년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임시정부수립기념일(4월13일)과 순국선열의 날(11월17일) 등 국가기념일 행사를 주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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