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장영희 수필 ‘킹콩의 눈’을 통해 생각해보는 편견과 차별의 말투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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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3 08:59  |  수정 2015-04-13 09:00  |  발행일 2015-04-13 제18면
나와 다르다고 남을 함부로 판단한 적은 없나요
20150413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이웃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언어생활을 하기 위해 장영희의 ‘킹콩의 눈’이라는 수필 한 편을 펼쳐 볼까요.

영화에 문외한인 글쓴이는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하고 ‘킹콩’이란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석사 졸업반이었지만 직업을 얻을 처지가 못되어 박사 과정 시험을 본 날이었습니다. 면접실에 들어갔더니 글쓴이의 목발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면접관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학부에서도 장애인은 받지 않아요. 박사 과정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장애인·외국인·결손가정 친구에
무심고 뱉은 말이 큰 상처 줄수도
‘다름’은 차별받아야 하는 것 아냐


한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에 그렇게 단도직입적이고 명료하게 말하는 면접관 앞에서 완벽한 좌절은 슬프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날 집에서 기다리는 부모님께 낙방 소식을 조금이라도 늦추어 전하기 위해 본 것이 ‘킹콩’이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거대한 고릴라가 사냥꾼들에게 잡혀 뉴욕으로 옮겨지는 도중에 우리를 탈출하여 도시 전체가 공포에 휩싸입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 앉아 있는 킹콩은 건물만큼 크고 거대합니다. 킹콩이 한 여자를 손에 잡고 있고, 그녀는 두려움에 온몸을 떨고 있습니다. 사실 킹콩은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킹콩과 그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킹콩은 마지막으로 그녀를 자신의 눈높이로 들어 올려 자세히 쳐다봅니다. 그때 킹콩의 슬픈 눈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인간이 아닌 흉측한 고릴라였기 때문에 사랑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글쓴이는 킹콩의 슬픈 눈을 보면서 자신을 장애인이라고 차별하는 이 세상에서 바로 자신이 킹콩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박사과정에서 낙방한 그에게 면접관의 말은 사형선고와 다름 없었습니다. 킹콩이 마지막 숨을 몰아쉴 때쯤 주인공은 편견과 차별이 없는 곳으로 가기 위해 토플 책을 사고 다음해 뉴욕의 모 대학으로 유학길에 오릅니다. 몇년 후 박사과정을 다 마치고 귀국해 당당하게 외칩니다.

“면접조차 거부하고 운명적인 선언으로 내 삶의 방향을 재조정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위원회에게 진정으로 감사한다.”

짧은 수필을 다 읽고 나서 아이들은 면접관의 말이 너무 가혹하고 냉정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도 그 면접관처럼 수많은 편견과 차별의 안경을 쓰고 쏟아낸 말이 숱하게 많습니다. 아이들은 여린 자책감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못 숙연해집니다.

사실 우리는 편견의 잣대로 남을 얼마나 쉽게 판단하고 정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상처준 것보다 상처받은 것을 더 오래 기억하고 그 말에 생채기가 아물지 않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받은 말에 대한 상처가 많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상처 받은 것을 토로할 때 아직도 그 상처를 생생하게 기억하며 울먹거린다는 것입니다. 종이 한 장에도 살갗이 베이면 잠깐 나오는 붉은 피보다 아픔이 더 오래 가는 법인데, 사람이 무심코 뱉은 말이 생채기가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을지요. 참 놀라운 것은 내가 상처를 준 것은 곧잘 잊어버리고, 받은 상처를 더 오래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주고받는 것이기에 각자가 쓴 독이 있는 말을 삼가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글쓴이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편견을 가지는 세상을 향해 ‘다름’은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지, ‘차별’ 받아야 할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주위에서 다르기 때문에 배려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 찾아보았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배려해야 할 대상은 가까운 곳에 참 많았습니다.

“외국에서 온 근로자는 외모가 우리와 달라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도 외국에 가면 똑같은 차별을 받기 때문에 그들에게 곁눈질하는 것은 조심해야 해요.”

“혼자 외롭게 사는 홀몸 어르신들도 예전에 다 젊어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였고 존경을 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늙었다고 함부로 대했던 것도 용서받아야 할 일이네요.”

“노약자, 임산부 등도 배려해야 할 대상인 것 같아요.”

“결손가정의 친구들도 다르다는 이유로 은근히 배척했는데 상처 받을 것 같아요. 함께 보듬고 위로하며 지내야 할 소중한 친구들이네요.”

아이들은 순수하고 고운 것이 봄버들 같습니다. 짧은 수필을 통해서도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고 우리 자녀들의 마음의 거울에 얼룩진 것을 닦아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 어른들이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눈에 편견과 차별의 두꺼운 안경을 끼워주는 일은 없었는지요. 편견과 차별의 먼지와 얼룩을 말끔하게 닦아내고, 원래의 모습 그대로 세상을 보는 화사한 봄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원미옥 <대구 포산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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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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