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창원 주남저수지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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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17   |  발행일 2015-04-17 제38면   |  수정 201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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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 동쪽에는 광활한 들판이 있고, 서쪽에는 구룡산, 백월산 등이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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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두루미 쉼터 앞 주남 새드리길의 유채꽃밭. 약 1.3㎞에 이르는 꽃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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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 새드리길의 초입. 철새 탐조대 부근은 목재 데크, 나머지는 대부분 흙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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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남저수지 북쪽 끝 용산마을의 둘레길. 물 가까이 나무 데크를 내어 달았다.


새드리길 만발한 유채꽃 일렁이는 물을 뒤로하고 겨울 새들은 모두 떠났다
서걱거리는 갈대들 사이 슬며시 내민 버들의 새싹 이따금 멧비둘기가 운다

☞ 여행정보

구마고속도로 마산방면으로 간다. 북창원 IC를 지나 14번 국도를 타고 창원 쪽으로 가다 동읍 용잠삼거리에서 우회전해 30번 지방도로 직진해 들어가면 주남저수지다.

새들은 모두 떠났다. 이 계절의 새들이 어딘가 숨어 있지는 않을까, 물 가운데 어른대는 숲을 오래 찬찬히 바라보기도 했다. 오늘의 새들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나. 봄바람이 호수 위에 윤슬을 새길 뿐, 모든 것이 고요하기만 하다. 호수를 감싸 안은 흙길을 멀리 걸어 모퉁이를 돌자, 조잘대는 노란 꽃들! 새들보다 먼저 당도했구나, 너희 꽃 떼들이.

◆ 주남 새드리길의 유채꽃밭

광활한 물이다. 그리 깊지 않은 늪이라 하지만 그저 보기에는 그 깊이가 까마득하다. 창원의 주남저수지는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 최대의 겨울철새 도래지였다. 지금은 그 개체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매년 10월부터 찾아드는 새들의 수는 람사르 협약의 기준치를 상회한다.

봄이면 물안개가 피어난다. 겨울의 새들은 물안개 속에 몸을 감추고 떠나간다. 물안개가 걷히면 왕버들과 수양버들이 슬며시 새싹을 내밀고, 이따금 멧비둘기가 날아와 소리 내어 운다. 봄의 주남저수지에서 들리는 소리는 그뿐이다.

아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갈대들의 서걱거림이 들린다. 물을 둘러싼 흙길을 걷는 온화한 걸음 소리도 들린다. 어린아이가 달리며 지축을 흔드는 소리도 들리고, 노인의 뺨을 스치는 봄바람 소리도 들린다. 더 이상 움츠리지 않아도 된다는 평온한 심장의 박동 소리도 들린다. 그렇게 나아가 모퉁이를 돌면 깜짝 놀란다. 현란한 것들의 소란스러운 재잘거림이 한꺼번에 덮쳐 온다. 활짝 핀 유채꽃이다.

주남저수지를 둘러싼 생태탐방로의 이름은 새드리길. 2011년도에 조성된 2.1㎞의 새드리길은 주남저수지의 둘레 길을 일컫는 등록상표다. 새드리길 동남쪽 모서리에 있는 낙조대에서부터 용산마을 앞까지 약 1.3㎞가 유채꽃 밭이다. 지난달 말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지금은 만개다. 이 소란스러움은 이달 말까지라 한다.

◆ 황제의 못에 비치던 백월산

꽃으로 뒤덮인 제방 길의 동쪽에는 광활한 들판이 텅 빈 채로 펼쳐져 있다. 지난겨울 주남저수지에는 300여 마리의 재두루미가 찾아왔었다고 한다. 천연기념물인 그들을 위해 저 들판에 볍씨를 뿌려 주었다고 한다. 꽃길 가운데 ‘재두루미 쉼터’라 이름 걸린 원두막은 그들이 머물다 간 자리를 짐작게 해 준다.

재두루미 쉼터에서 보는 주남저수지는 매우 장쾌하다. 저수지 너머 서 있는 산으로 인해 거대한 산중 호수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쪽으로는 아홉 마리 용이 산다는 구룡산이 뻗어 있고 정면으로는 백월산이 솟아 있다. 백월산은 세 개의 큰 봉우리가 있어 ‘삼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동쪽 끝 봉우리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사자바위라 한다.

삼국유사에 저 백월산의 이야기가 있다. 옛 노인들이 서로 전해 말하길, 옛날 중국 당나라의 황제가 못을 하나 팠는데 매월 보름 전 달빛이 밝으면 연못 가운데 사자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산 하나가 은은하게 그림자를 나타냈다고 한다. 황제는 화공에게 그 모습을 그리게 하고 사자(使者)를 시켜 찾게 했다. 천하를 돌던 사자는 해동에 이르러 그림과 같은 산을 찾아냈고, 사자바위 꼭대기에 신발 한 짝을 걸어두고 돌아와 황제에게 고하였다. 신발의 그림자 또한 못 속에 비치니, 바로 그 산이었다. 황제는 보름 전 백월의 그림자가 못에 나타난다고 하여 이 산을 백월산이라 칭했다. 그러나 그 후로 못에 나타나던 산 그림자가 없어졌다고 한다. 주남저수지에 백월산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보름 전 달빛 밝은 어느 날 아무도 모르는 사이, 백월산은 저수지에 잠길지도 모를 일이다.

◆ 용산마을 둘레길에서

유채꽃길의 북쪽 끝에 다다르면 밀피마을을 지나 곧 용산마을이다. 밀피는 밋삐라고도 하는데 용산마을 안쪽의 조그마한 동네로 새드리길의 조망지 중 한곳이다. 용산은 주남저수지의 북쪽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1970년대 중반 즈음까지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었던 주남저수지를 용산늪이라 불렀으니 용산은 주남의 중심 마을이다. 오리 모양의 화장실이 있고 다리쉼을 할 쉼터도 있다. 마을의 가장자리에는 물 가까이 나무 데크 길이 나있다. 사람의 살림살이와 딱 붙어 있는 물 앞에 서서야 이 저수지가 현실감 있게 느껴진다. 내내 따라온 현란한 꽃들도, 전설의 그림자도, 이 현실감이 주는 황홀에 미치지 못한다. 이제 들판이 채워질 것이고 물은 들을 적실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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