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 시인의 시골에서 .4] 옻순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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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4-24   |  발행일 2015-04-24 제39면   |  수정 2015-04-24
“가공해서 팔 수 없는 옻순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은 단 3일이다”
매년 4월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별미를 위해 산을 누빈다
옻순이 일정크기 이상 성장하면 독성 강해져 먹지 못해
고육지책 첫 옻순축제 사비로 성황 이루자 郡이 지원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축제는 이권싸움 등 부작용도 속출
채취시기 앞당기면 평소가격 5배 옻순 생산 극대화하려 전지까지
[박기영 시인의 시골에서 .4] 옻순의 경제학
충북 옥천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옻순으로 축제를 만들었다. 옻순을 이용한 다양한 식품이 개발됐는데 그중에서는 옻순이 들어간 돼지두루치기,오른쪽>가 옥천의 별미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은 어린 옻나무.

단 3일이라고 한다, 옻순을 먹을 수 있는 시기는. 매년 4월이 되면 우리 마을에서는 그 3일 동안의 별미를 위해 사람들이 산을 누빈다. 봄나물 중에서 가장 맛이 있다는 옻순을 따기 위해서다. 어떤 사람은 옻순에 대하여 ‘지독한 맛’이라고 한다. 옻 오르는 괴로움을 뻔히 알면서도, 입안에 남아 있는 그 맛의 유혹을 넘어서지 못하고, 항히스타민제를 챙기며 매년 찾게 되는 음식이라고 한다. 그 옻순이 일반인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져 상품으로 판매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초반. 대구 앞산 안지랑이 일대에 모여 있던 옻닭집들이 봄철 계절 메뉴로 옻순을 등장시킨 것이다. 그 이전까지는 옻순은 상품이 아니라, 생산지 주위에서 잠깐 즐기는 특이한 음식이었다. 옻순은 나의 아버지가 상품화를 시도한 음식이었다. 지리산 마천에 옻밭을 확보한 아버지는 현지에서 옻순을 말려 대량으로 원료를 확보한 뒤 ‘옻순비빔밥’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다양한 메뉴가 등장했다. 옻순두루치기, 옻순장아찌 등 봄이면 안지랑이에는 옻순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88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의 일이다.

[박기영 시인의 시골에서 .4] 옻순의 경제학

◆ 80년대초 앞산 안지랑이 옻닭집의 옻순

옻순의 등장은 옻닭의 색깔을 바꾸었다.

말린 옻순을 이용하다 보니 노란 옻닭 국물이 시커멓게 변한 것이다. 옻순을 삶은 물로 닭을 삶고 그 육수를 내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이런 속 내용을 모르는 옻닭집에서는 국물을 시커멓게 만들기 위해 커피를 타서 내는 일까지 생겼다. 한때 나와 문학적 동행을 했던 장정일은 옻순 채취에 나섰다가 ‘처음 뱀을 죽이다’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옻순은 봄나물 중에서 유일하게 단맛을 가진 산채다. 옻이 가진 다당류로 인하여 옻순 특유의 단맛과 고소함을 간직하여 한번 맛을 들이면 쉽사리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옻순을 먹는 이치는 단순하다. 채 성장이 완성되지 못한 식물의 싹은 그 독마저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여 부작용이 적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옻순 역시 마찬가지다. 옻나무의 독성 물질인 우루시올을 생산하는 세포가 채 성장을 못하는 시점을 이용해 섭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식품위생법상 옻순은 가공해서는 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농산물이다.

옥천에 와서 이 옻순을 다시 되살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옻순의 특징을 이용해 단 이틀간의 게릴라 축제를 시도한 것이다. 옻순을 딸 수 있는 시기가 매년 기상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착안해서 언제 시작할지 모르는 축제를 연 것이다. 음식으로 판매할 수 없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농산물로 옻순을 사게 해서 현장에서는 조리용역비를 받는 이상한 축제를 만들어 냈다. 이 신기한 축제는 이내 언론에 부각 되어 옥천을 단숨에 전국 유명 옻 주산지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시사 잡지에서는 그해 한국의 가 볼만한 축제로 옻순축제를 다룰 정도로 각광받았다.

옻순 축제를 통해서 옻을 이용한 다양한 조리법과 음식이 개발되고, 사람들에게 소개 되었다. 옻과 관련된 여러 가지 특이한 조리법도 등장했다. 생선회와 더불어 옻순을 먹는 방법이 방송에 소개되고 옻순으로 김치 담그기와 다양한 장아찌와 효소가 사람들에게 판매되기도 했다. 축제라는 형식을 통하여 자가 생산품 판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이 된 것이다. 물론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옻과 상극인 음식을 일반인에게 조리해주어 옻오름의 부작용을 경험시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세계적인 옻칠 공예가 가족이 옻과 상극인 돼지고기를 먹고 그런 일을 당한 것이다.

[박기영 시인의 시골에서 .4] 옻순의 경제학

◆ 옻순축제의 빛과 그림자

옻의 이런 부작용을 알기에 나는 옻 오르는 음식과 안 오르는 음식을 구분하여 공간을 만들고 위험지역과 안심지역을 구분하는 공간 기획을 처음부터 시도했지만 농민들은 이것을 무시하고 행사를 치렀다. 옻이 가진 이중성이 행사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사실 옻순축제는 옥천에 잘못 심어진 옻나무를 활용하기 위하여 고육지책으로 만든 축제이다. 실적 중심의 행정기관은 옻나무 보급을 늘리기 위하여 적정 재배면적을 확보하지 못하고, 옻나무 묘목을 밀식 보급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적정 면적보다 3~4배 넘는 밀식 재배는 나무의 정상적인 성장을 방해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농민들의 입장을 생각해서, 첫 번째 옻순축제는 사비를 투입해 진행했다. 언론의 각광을 받고 전국 각지에서 옻순 마니아가 옥천으로 몰려들자 군은 지원을 결정했다.

군비가 지원되면서부터 옻순축제 탓에 농민들의 이권싸움이 시작되었다.

나는 축제에서 손을 떼고 사태를 관망했다. 부작용이 속출했다. 옻순은 그것이 먹을 수 있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 나물이다. 특정 형태 이상으로 성장을 하면 옻나무 독성이 강해져 못 먹게 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채취하여 판매하는 일이 생겼다. 봄철 나물 중에서 가장 단맛을 내고 고소함을 자랑하는 옻순의 보관방법을 무시한 저장관리는 상품의 질 저하를 초래했다.

더욱 큰 문제는 축제의 기획성 상실이었다. 처음 내가 축제를 기획하고 진행을 하자 언론쪽에 있던 친구가 했던 말이 있었다. 제대로 육성만 하면 세계적인 축제로 탄생시킬 수 있다고.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축제로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최대한 차별화된 축제를 만들면 국제적인 행사로까지 발전시킬 수 있다고 평가를 했다. 그런 축제가 농민들의 시선으로 접근하면서 단순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더욱이 옻나무가 전국적으로 보급 되면서 옥천이 가지고 있던 이점도 갈수록 상실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나는 옻순 축제의 진행 과정을 보면서 행정당국의 무사안일과 편의주의가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는지 지켜 볼 수 있었다. 민간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일은 관의 입장에서는 심각한 위기 의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관리감독이라는 지위가 상실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위상을 찾기 위해 순종하는 세력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들 중심으로 행정을 이끌고 가면서 창의성이나 진취적인 가능성이 사전에 성장하지 못하도록 해 놓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상태에 길든 농민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올해도 옥천은 옻순 축제를 진행할 것이다.

농민들이 문제를 일으키자 순응하는 산림조합을 내세워 군은 지원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실제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당장 눈앞에 닥친 것만 해결하겠다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다. 지금쯤 옥천은 기존의 옻순 보급 방법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야 하지만 상품 개발이나 포장의 개선 등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지 없이 사고 없고 무리 없는 일상의 업무로 이 축제를 이끌고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이 지속되면 국내 많은 축제가 그러하듯이 지역 예산을 낭비하고 가능성이 없는 죽은 행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옻순생산 극대화의 덫

옻순 축제로 인해 옥천의 옻나무는 타 지역 옻나무와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전통적인 칠 생산 중심에서 산채를 생산하는 나무로 변한 것이다. 이런 변화는 옥천의 옻나무 재배방식의 변화를 가져 왔다. 정상적인 나무는 수직 성장을 하는데 나무의 키가 너무 커지면 옻순 채취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일정한 높이가 되면 전지를 해 수직 성장을 막는 재배방법이 등장한 것이다.

나는 옻순 생산을 극대화 시키기 위하여 다양한 실험을 했다. 조기 수확을 위해 하우스 재배방법을 모색해보기도 했다. 옻순은 그 생산시점이 언제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지차이인 생물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옻나무 가지 끝에 페트병을 씌워 보름 정도 채취 시기를 앞당기는 실험을 성공하기도 했다. 그렇게 앞당기면 옻순은 평소보다 다섯 배 이상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200g에 2만원으로 농산물시장에서 경락을 받았으니 나무에서 쇠고기보다 더 비싼 나물을 생산한 것이다.

그렇게 높은 가격을 형성했던 옻순도 동시 출하가 진행되면 1㎏에 5천원 미만으로 경락 가격이 떨어진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나는 옻나무 재배에서 한 발 물러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특이한 작물로 특이한 방법을 동원하는 농사는 초창기 개발자에게 이익을 줄지언정 일반화시키는 순간부터 농민들에게는 피해를 안겨주는 폭탄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옻순이 돋을 것이다. 나의 집 마당에 있는 250년이 넘었다는 옻나무에는 그 나이만큼이나 오랜 새순의 순환이 진행되고 절름발이가 된 지역 축제 역시 벌어져, 사람들을 옥천으로 불러 모을 것이다. 12년차에 들어가는 나의 시골생활에서 옻순은 치명적인 기억을 가진 숱한 이야기를 공중에 피워 올리며 인간의 이기심과 상관없이 햇살을 반짝이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꽃망울을 터뜨려 자신들의 역사에 또 한 살의 나이테를 그려 넣을 것이다.

옻순을 채취할 수 있는 날은 단 3일밖에 안된다. 옻순 채취 시기를 놓치면 가격이 폭락하기 때문에 이 무렵이면 마을 주민은 ‘옻순 따는 심마니’로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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