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캠페인 ‘책읽는 도시 행복한 시민’ 책 읽어주는 남자] 당신 인생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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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23   |  발행일 2015-05-23 제1면   |  수정 201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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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고양이가 생선을 먹는다’는 문장을 예로 들면 ‘고양이’라는 낱말은 ‘강아지, 동생, 엄마’ 등으로 대체될 수 있다. 주어의 자리에 올 수 있는 여러 단어 중 ‘고양이’가 선택되면 나머지는 문장에서 드러나지 않게 된다. 이렇게 유사성을 기초로 한 낱말의 관계가 은유이다.

이와 달리 ‘고양이’ ‘생선’ ‘먹는다’라는 단어들은 인접성을 매개로 결합돼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례 차례 문장에 드러나는 관계다. 이를 환유라고 한다. 언어학자 야콥슨은 우리의 언어가 은유와 환유라는 두 축의 조합으로 이뤄져 있음을 밝혔다.

여기서 환유의 축도 은유의 축처럼 동시적으로 작동하는 언어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보자. 발성기관의 진동을 통해 발생한 음파가 전달돼야만 하는 음성 언어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소리라는 제약에서 벗어난 문자 언어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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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는 이런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구를 찾아온 외계 종족과 의사소통을 시도하는 언어학자가 주인공이다. 이 외계인이 사용하는 문자 언어는 복잡한 사건을 순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즉, 원인과 결과를 한꺼번에 표현해낼 수 있다.

소설은 이들의 언어를 습득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딸에 대한 기억을 정교하게 교직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결정론과 자유의지, 페르마의 최단시간의 원리, 그리고 언어가 사용자의 사고방식이나 정신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 등 흥미로운 생각이 전개된다. 그 사이 사이에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녹아들어 소설의 균형을 잡고 있다.

 

첫 부분에서 시간적 배경이 다소 혼란스러웠던 독자도 읽어가면서 차츰 정리가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면 왜 제목이 ‘네 인생의 이야기’인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너’가 오늘밤 잉태될 딸이라는 것도…. 이 소설은 ‘그을린 사랑’의 드니 빌뇌브 연출, 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주연으로 영화화돼 2016년 개봉될 예정이다.

 

테드 창 걸작선 ‘당신 인생의 이야기’(행복한책읽기)에는 이 소설을 포함해 ‘바빌론의 탑’ ‘지옥은 신의 부재’ 등 모두 8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테드 창은 1967년 뉴욕에서 태어난 중국계 이민 2세로, 브라운대에서 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다.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등을 수상한 그는 21세기를 대표하는 과학소설 작가로 손꼽힌다.

 

아직도 과학소설(SF)은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이 나오는 황당무계한 이야기, 심심풀이로 읽는 일회용 소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도 일곱 개의 가지가 맞닿은 곳에 통을 올려놓은 것 같은 모습의 외계인이 나온다. 그렇지만 테드 창의 작품을 비롯해 좋은 과학소설은 인간의 현실과 존재론적 문제에 대한 사색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의미 있는 것은 장르소설이냐, 순수소설이냐의 구분이 아니라 잘 쓴 소설과 잘 못쓴 소설의 구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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