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시리즈 통·나·무] 김병석 <주>유니온텍 대표

  • 명민준 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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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5-30   |  발행일 2015-05-30 제5면   |  수정 2015-05-30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른 채 돈만 툭 내는 기부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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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사업장에서는 ‘신의 직장’의 수장으로, 지인들에게는 ‘기부 전도사’로 살아가고 있는 김병석 대표.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연매출 180억원에 직원수는 270여명. 최신기종 인기 휴대폰의 뼈대 대부분이 만들어지고 있는 회사. 여기까지는 구미의 평범한 제조업체와 같아 보이지만, 이 회사는 정문에 이색적 사훈을 내걸고 남다른 사풍을 드러내고 있다.

‘日職集愛 可高拾多(일직집애 가고십다)’. 소리대로 읽으면 모든 직장인의 소망이 담겨있는 문장이고, 한자의 뜻대로 풀이하면 나름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하루 업무에 애정을 모아야 능률도 오르고 얻는 것이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머스러움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이 회사만의 특별한 사훈은 이 업체 대표의 철학에서 비롯됐다. 불과 수년 전 자신이 겪었던 직장생활의 서러움을 알기에, 한 회사의 대표가 되어서는 직원 복지에 각별히 신경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직원 복지를 마련해 이미 구미에서는 나름의 ‘신의 직장’을 구축한 그는, 주변의 어려운 이웃에게도 따뜻한 온정을 베풀며 지역민들로부터 귀감을 사고 있다.

어릴적 청주서 알아주는 골목대장
軍 전역 후 중고차 판매로 대박
구미 와선 휴대폰 부품업체 취직
수개월만에 회사매출 3배로 올려

회사 나와 창업 후 부도 위기도
힘들때 도움의 중요성 깨달아
요즘 어떤 모임이든 나가게 되면
기부 얘기 해 기부 전도사로 통해

이번 주 ‘나눔시리즈 통나무’에서는 경북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9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1억원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김병석 <주>유니온텍 대표(40)를 소개한다.

지난 27일 유니온텍 사옥으로 초대한 김 대표는 자신의 성장과정과 1억원을 쾌척하게 된 사연, 나눔철학 등이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조심스레 풀어놨다.

김 대표는 1975년 서울의 한 평범한 집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부모님의 사업문제로 이사 가는 바람에, 그의 유년기 대부분이 충북 청주에서 이뤄졌다. 지금은 청주가 교육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김 대표가 어렸을 때만 해도 그곳은 ‘학원무림(학생들 간의 주먹다툼으로 서열을 매기는 상황)’에 가까웠다.

영화 ‘짝패’(2006년)에서도 당시 청주의 상황이 잘 반영돼 있는데, 청주 시내 거리가 세력다툼에 나선 중·고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묘사된 장면은 수많은 관객으로부터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했다. 영화 속 중고생 무리의 우두머리처럼, 김 대표도 당시에는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었다. 체구가 왜소하기는 했지만, 영민한 두뇌와 민첩한 몸놀림으로 김 대표는 또래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골목대장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부모님 속을 한번도 썩인 적이 없다고 했다. 주먹은 쓸 때만 쓰고, 약한 친구들은 잘 보살펴주는 나름 의리 있는 소년이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청소년 시절부터 어른 흉내를 내며 나름대로 어엿이 굴어서 어느 순간부터는 빨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군 전역 뒤 곧바로 중고차판매 업계에 뛰어들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사업자금을 빌려 시작한 세상과의 첫 승부였다.

당시 청주 바닥에서 ‘의리’라는 단 두 글자만 대면 김 대표부터 떠오르는 분위기였다. 신뢰를 바탕으로 장사를 시작하다 보니, 첫 사업은 순탄한 편이었다. 사업 수완도 남달랐다. 그는 새것에 가까운 중고차를 매입하기보다 최대한 싼 차를 구입해 사회 초년생이나 대학생들에게 되파는 방법을 택했다.

김 대표는 “첫 사업은 정말로 대박이었고, 20대 중반에 웬만한 사람이 평생 모을 돈을 다 번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런 그는 선배와 함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돌연 구미로 내려왔다. 하지만 그즈음부터 남들에게 말 못할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돈은 잘 버는 상황이었지만 ‘첫딸이 어른이 됐을 때 더욱 멋진 아빠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길로 김 대표는 사업을 그만뒀고, 졸지에 백수신세가 됐다. 벌어둔 돈으로도 몇 년은 거뜬히 살 수 있었지만, 남자이자 가장이기에 직업이 필요했단다. 그래서 그는 고민 끝에 구인광고지에 실린 구미의 한 휴대폰 부품 생산업체를 찾아갔다.

한때 잘나가던 사업가의 첫 직장생활은, 그의 첫사업과는 달리 결코 순탄치 않았다. 영업사원을 뽑는다고 해서 들어간 회사에서는 김 대표에게 완성된 휴대폰 부품을 트럭으로 배달하는 일밖에 주지 않았다. 참다못한 김 대표는 사장에게 찾아갔고 “내가 진짜 영업을 뛰어서 돈을 벌어다 줄 테니 맡겨달라”고 말했다.

영업일선에 나선 김 대표는 그가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구미 휴대폰 부품업계에서 과히 날아다녔다고 했다. 입사한 지 불과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사원 한 명이 회사 매출을 2~3배씩 올려놓은 것이다.

김 대표는 “일을 하다보니 이게 돈이 될 것 같다는 육감이 왔고, 회사에서 나와 창업한 것이 지금의 유니온텍”이라고 말했다.

물론 부침도 있었다. 수년 전에는 실제로 부도위기가 있었다고 했다. 바로 그때 김 대표를 일깨워 준 것은 주위의 도움이었다. 그동안 그가 구미에서 쌓아온 신뢰 덕에 주변 사업체에서 크고 작은 돈을 빌려다준 것이다.

김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도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당장 조금씩이라도 이웃을 돕기 위해, 눈앞에 모금함이 보일 때마다 지나치지 않고 한 푼이라도 기부를 했단다. 그런 그가 1천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을 기탁한 것은 세월호사고 당시다. 세 딸을 키우고 있었기에 도저히 희생자 부모들의 아픔을 간과할 수 없었다고한다.

지난해 말에는 경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원을 기탁한다는 큰 결심을 하게 됐고, 경북에서 29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그가 돌연 사회복지모금회측에 1억원이라는 거금을 기탁한 이유는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란다. 김 대표는 “사실 돈을 기탁해도,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잘 몰라 의문점이 많았다. 그래서 한번에 큰 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 맡기게 됐다”며 “기부를 한 순간은 정말로 마음이 편안했다. 요즘에는 어떤 모임에 나가도 기부이야기를 꺼내서 지인들에게 ‘기부 전도사’로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대표의 바람처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투명성 보장을 위해 기부자들에게 기부금이 쓰이는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명민준기자 minj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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