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세계 음식을 찾아서 (11) 중국(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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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6-19   |  발행일 2015-06-19 제41면   |  수정 2015-06-19
베이징 사람들은 여름엔 800년 역사의 자장미엔(우리나라의 간짜장), 겨울엔 따루미엔(우리나라 우동 같은 스타일)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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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처럼 달달한 짜장면은 중국 현지에는 없다. 베이징·산둥 등지에서는 우리의 간짜장과 비슷한 자장미엔을 먹는다. 우리에게는 조금 짜고 텁텁한 춘장으로 볶아 만든 소스를 면 위에 알맞게 부어 먹는다. 나가사키짬뽕은 일본으로 이민 온 중국 푸젠성 출신 징헤준이 배고픈 화교 유학생을 위해 개발한 것이 한국에까지 수출되는 대박 메뉴로 발돋움한 것이다.

중식은 한식과 일식의 ‘촉매’였다. 한·중·일 ‘음식삼국지’의 본질을 찾는 건 3차방정식의 해를 찾는 것과 비슷하다. 따로 떼어놓고 분석하면 원류가 잘 보이지 않는다. 국내 김장용 결구형 배추도 중국 채소의 메카로 불리는 산둥에서 건너온 것이다. 산둥은 밀문화도 강력해 인접한 한국과 일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음식의 전파자는 한국은 주로 사신이고 일본은 승려였다.

5천년 전부터 국수를 해 먹었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수 화석까지 보유하고, 국수 요리만 무려 1만 가지 이상이다. 요즘 국내에도 진출한 ‘도삭면(刀削麵)’. ‘면 요리의 고향’으로 불리는 산시성에서 가장 유명한 국수 메뉴다. 베개만 한 밀가루 반죽의 표면을 면도칼처럼 훑어내리면 저며진 면발이 펄펄 끓는 솥 안으로 들어가 익는다. 강원도 올챙이국수 같은 모양이다. 특히 수타면(手打麵) 달인들의 손놀림은 신기에 가깝다. 용의 수염처럼 가늘게 빼낸 ‘용수면(龍鬚麵)’은 실처럼 바늘귀를 통과할 수 있다. 이래저래 세계 면요리의 메카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중국은 화교를 통해 한국에는 ‘짜장면’, 일본에선 ‘짬뽕’을 탄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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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보다 국수가 주식
며느리의 음식솜씨는
국수로 평가할 정도

중국의 짬뽕 소마미엔
우리것처럼 맵지 않아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사키짬뽕 원조 돼


옛날 중국인들은 끼니를 잇기 어려울 때 감자 전분이나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과자를 만들어 기름에 잘 튀겨 먹었다. 도넛처럼 생긴 이걸 ‘혼돈’이라고 하는데 나중엔 기름 대신 끓는 물에 삶아 먹는 형식으로 변하면서 반죽 길이도 점차 늘어난다. 이게 ‘온돈’이라 불리며 후에 일본 우동의 전신이 된다. 1천300년 전 일본의 홍법대사가 중국에 불교를 공부하러 왔다가 온돈 조리법을 배워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식 우동을 개발한다. 중국 우동은 오징어, 새우, 홍합 등 각종 해산물과 갖은 채소를 넣고 끓여내어 맑고 깔끔한 데 비해, 일본 우동은 가쓰오부시 육수 맛이 강해 훨씬 감칠맛이 있다. 이게 국내로 오면 ‘가락국수’가 되는데 육수는 일본과 달리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 만든다. 도쿄를 비롯한 간토(關東) 지방에선 소바(메밀국수)를 면류의 좌장으로 치지만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西)에서는 밀가루 국수인 우동을 최고로 친다. ‘가케루(끼얹다)’의 명사형 ‘가케’가 붙은 가케우동은 한국에선 ‘가끼우동’으로 불리고, 이게 한국인 사이에서 인기를 얻어 나중엔 홍익매점 가락국수, 북성로 돼지 불고기 우동 등으로 변형된다. 면발도 우동 사리는 한국에 비해 훨씬 오동통하고 쫄깃하다. 가끼우동에 유부를 얹어주면 ‘기쓰네(여우) 우동’, 튀김 부스러기가 올라가면 ‘다누키(너구리) 우동’, 찹쌀떡이 들어가면 ‘치카라(힘) 우동’이 된다.

◆ 국수에 살고 국수에 죽는 중국

중국은 고기도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선택하듯 밥도 쌀보다 국수를 더 주식으로 먹는다.

안동의 종부는 머리카락만큼 가늘게 면발을 썰어내야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 그런 솜씨를 가져야 사돈처럼 귀한 손님한테 제대로 된 건진국수를 만들 수 있다. 중국에선 며느리의 음식 솜씨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테스트하는 절차가 있다. 이때 국수 실력을 알아보는데, 이를 ‘쓰토우(試刀)’라 한다.

청일전쟁 때 맨몸으로 산둥을 떠나 청국 영사관이 있던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몰려든 최하층 이주노동자를 중국 본토에선 ‘쿨리(苦力)’라 부른다. 한국 짜장면의 역사도 그들의 손에서 흘러나온다.

1992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기 전만 해도 우린 ‘우짜짬(우동·짜장면·짬뽕)’이 중화요리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중화요리집에 가도 메뉴판의 앞줄 근처만 맴돌았다. 뒤로 갈수록 음식명이 너무 어려워 주눅 들어 시켜 먹지 못했다. 중국 본토와 판이한 짜장면. 그게 한국에서 맨 처음 태어난 곳은 인천시 중구 북성동 공화춘(共和春)이다. 현재 인천시가 이 건물을 사들여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조했다.

1882년 임오군란 때였다. 1883년 인천이 원산(1881년)에 이어 개항된다.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되찾자 민비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때 4천500여명의 청나라 군졸들이 인천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물론 그들 속에 화상(華商)들이 섞여 들어와 한국에 눌러앉는다. 1885년만 해도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서울의 상점은 300여 집. 하지만 이때만 해도 중화요리집 시대는 아니었다. 그들 대다수는 중계무역상이었다.

한국에 정착한 화교는 세 종류의 칼로 자수성가했다. 음식점에서는 채도(菜刀), 이발소에서는 전도(剪刀), 양복점에서는 체도(剃刀)로 생계를 이어갔다. 이 세 종류의 칼을 ‘삼파도(三把刀)’라 한다. 자수성가한 사람을 ‘커자런(客家人)’이라 한다.

한말에 만난 인천의 짜장면은 산둥의 ‘자장미엔(炸醬麵)’이었다. 중국에는 30여 가지 불 다루는 기능이 있다. 자(炸)는 기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데 기름에 장을 튀기듯 볶아 면 위에 올려준다.

◆ 중국엔 짜장면이 없고 자장미엔이 있다

중국엔 짜장면은 없고 간짜장만 있다.

간짜장은 중국말로 자장미엔. 이게 한국인들에겐 짜장면으로 들렸던 것이다. 자장미엔은 800년 역사를 가진 베이징의 서민요리였다. 쌀보다 밀가루가 많이 생산되는 중국 허베이 지방에선 밀가루 요리가 유난히 많았다. 짜장면이 활성화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도 베이징엔 전통 베이징 자장면으로 불리는 ‘라오베이징 자장미엔(老北京炸醬麵)’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베이징 사람들은 여름엔 자장미엔, 겨울엔 한국의 우동과 같은 스타일의 ‘따루미엔’을 즐긴다. 하지만 한국 것과 달리, 중국 짜장면엔 고기와 채소가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겐 맛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

한국으로 온 화교들이 처음부터 짜장면을 판 건 아니다. 만두와 호떡부터 팔았다. 초기엔 화교 자본이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멍가게형이 먼저 등장한 것이다. 1905년 산둥성 뭐핑(牟平)현 출신의 조리사 위시광(于希光)이 개업한 공화춘이 맨 먼저 짜장면을 팔았다고 하지만 이 대목은 아직 학설적으로 정리된 건 아니다.

화교들은 한국인이 김치와 고추·된장을 좋아하는 것만큼 춘장에 국수 비벼 먹는 걸 좋아했다. 공화춘이 생기기 전 인천항 부두의 화교 인부들은 점심때면 삼삼오오 모여앉아 춘장을 볶아 국수에 얹어 한 끼를 해결했다. 그게 훗날 식당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봐야 될 것 같다.

화교들은 한국으로 건너올 때 우리의 고추·된장 같은 춘장을 갖고 왔다. 입맛이 없을 땐 춘장만 찍어 먹어도 속이 편했다. 우린 춘장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선 ‘충장’이라고 한다. 충은 ‘파 총(蔥)’의 중국식 발음. 원래 춘장에 어울리는 건 대파였다. 파와 춘장이 합쳐져서 충장이 된 것이다. 우린 춘장, 짜장, 면장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짜장은 기름에 볶은 장이고 면장은 파를 찍어 먹는 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화요리집 주인한테 춘장을 달라고 해선 안되고 ‘면장을 달라’고 해야 맞다.

산둥에서는 달고 축축하지만 깊은 맛은 없는 텐멘장, 베이징에서는 맛은 깊은 반면 짜고 퍽퍽한 느낌의 ‘황장(黃醬)’을 즐긴다. 이 둘을 보통 춘장으로 칭한다.

중국 춘장은 현재 한국에서 개발된 것보다 더 짜다. 원래 춘장은 좀 불그스름한데, 장 속 밀가루가 산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검게 변한다. 대파와 양파, 어느 쪽을 사용해도 짜장면 맛에는 별로 영향을 안 주지만 어느 한쪽 가격이 오르면 싼 걸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다쿠앙 선사가 개발해 낸 반찬인 단무지도 60년대 짜장면 옆에 붙게 된다.

전통 춘장과 반씩 섞거나 전분을 많이 넣어 갈색을 띠었다. 바로 옛날짜장이다. 그러다가 70년대 들어 색깔이 진해지더니 80년대에는 지금처럼 까만색의 춘장이 일반화되었다. 중국인이 한국 짜장면을 먹으면 기름지다고 말한다. 일본인에겐 달달하다.

◆ 짬뽕 이야기

중국인들은 짬뽕을 ‘소마미엔(炒碼麵)’이라고 부른다. 소마미엔 육수는 돼지뼈로 빚으며, 네댓 가지 채소도 함께 넣는데 우리처럼 맵지 않다. 한국의 우동과 비슷한 게 따루미엔이다. 이는 중국식 국물면으로 ‘칭탕미엔(淸湯麵)’으로도 불리는데 환자용으로 널리 사용된다. 요즘엔 면을 기계로 뽑지만 예전엔 면발에 더 탄력을 주기 위해 손수 밀가루를 반죽해 수타면을 뽑았다. 짬뽕의 주민등록지는 일본이지만 본적은 중국이다. 1571년 일본 최초로 개항한 나가사키에서 일본식 짬뽕이 태어났다. 나가사키는 짬뽕과 함께 카스텔라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나가사키 짬뽕은 우리와 달리 색깔도 희며 맵지도 않다.

일본 짬뽕의 최초 개발자는 중국 푸젠(福建)성 출신의 징헤준(陳平順). 그는 일본 내 중국 유학생들을 배려해 1899년 나가사키에 오픈한 중국 음식점 시카이로(四海樓)에서 싸고 맛있는 음식을 개발한다. 해물, 양파 등 쓰고 남은 재료를 넣고 볶은 뒤 국수에 얹고 쓸모없는 돼지뼈, 닭뼈 등을 고아 만든 육수를 부었다. 그 음식 이름은 ‘밥 먹었느냐’는 의미의 중국말 ‘츠판(吃飯)’. 그걸 일본인들이 따라 불렀는데 그게 한국인에게는 ‘짬뽕’으로 들린다. 현재 시카이로는 5층짜리 식당으로 성장했고, 1층은 짬뽕 박물관으로 꾸몄다.

요즘 한국은 짬뽕 특수를 누리고 있다. 별별 짬뽕이 다 탄생한다. 통영에는 우동과 짜장면을 동시에 먹을 수 있게 ‘우짜’를 개발했다.

글=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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