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구미 선산읍 죽장리 죽장사

  • 류혜숙 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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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7-03   |  발행일 2015-07-03 제38면   |  수정 2015-07-03
시간 쌓인 돌탑…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탑에선 전설도 사실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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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사 5층석탑.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국보 제13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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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사 대웅전. 근래에 조성된 것으로 본래의 법당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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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사 경내 곳곳에 옛 절집의 초석과 석재들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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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장리 마을. 구미시의 색채 시범마을로 대나무를 주제로 한 벽화길이 조성되어 있다.


웅대하고 당당하다. 대지에 거대한 뿌리를 내린 것처럼 굳건하다. 오랜 시간이 쓰다듬은 모서리들은 명징함을 잃은 대신 온화함을 얻었고, 희게 빛났을 돌은 그윽한 어둠의 아름다움을 입었다. 천 년 전, 누구의 재주가 이 탑을 세웠는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지금 눈 앞에 서 있는 탑의 장인은 역사다. 넘어지고 흩어져 사라지지 않은 시간이다.

100여개의 석재로 쌓은
높이 10m의 석탑에는
힘 대결 오누이의 전설
통일신라 때 조성 추정
지금 것은 1972년 복원

탑 외엔 없는 텅 빈 마당
절은 단정하고 질서정연

◆힘이 센 여인의 탑

신라 시대, 아무도 당할 사람이 없을 만큼 힘이 센 남매가 살았다 한다. 어느 날, 누가 더 힘이 셀까 내기를 한다. 오빠는 50리 떨어진 금오산 중턱에 있는 큰 돌을 갖고 오기로 하고, 누이는 돌을 열두 자 높이로 쌓아 올리기로 했다. 이튿날 아침, 누이는 탑 꼭대기에 돌을 얹었다. 늦게야 돌아오고 있던 오빠는 동네 어귀에서 멀리 동생의 탑을 보고는 깜짝 놀라 바위를 던지고 멀리 도망갔다 한다. 이 전설에는 아름답지 못한 여러 이야기들이 있는데, 성질이 사나운 어머니가 딸이 이기기를 바라 일부러 아들을 훼방 놓았다고도 하고, 이기는 쪽이 지는 쪽을 죽이기로 했다는 내용도 있다. 어쨌든 힘이 아주 센 누이가 세워 이겼다는 탑이 죽장사(竹杖寺) 5층석탑이다.

5층의 탑. 높이가 10m 정도인 이 탑은 5층탑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바닥 돌에서 머리 장식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의 석재로 짜여 있다고 추산된다. 18매의 잘 다듬은 돌을 지면 위에 쌓고, 그 위에 2단의 기단을 올리고, 그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웠다. 1층 몸돌의 남쪽 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이 있고, 감실 안에는 문을 달았던 작고 둥근 구멍이 있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계단처럼 층단을 이룬다. 이는 벽돌탑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일반 석탑에서 나타나는 것은 드문 예라 한다. 꼭대기의 머리 장식은 모두 없어지고 받침돌인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죽장사 5층석탑은 통일신라 전성기 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때는 이 탑을 무너뜨리려 했던 많은 왜군들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전설도 있다. 현재의 것은 1972년 6월에 복원된 것이라 한다. 감실 안에는 최근의 것으로 보이는 불상이 모셔져 있다. 굳건한 넓은 기단, 장중하면서도 무겁지 않게 솟은 몸체다.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성이 느껴지는 건 힘이 센 누이의 전설 때문일까. 혹은 여왕이 존재했던 그 시대 역사의 아우라일까.

◆죽장사

경내는 넓다. 들어서 있는 건물이 적어서 그리 느껴질 수도 있고,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서 있는 탑 외에는 마당이 비워져 있어서 일 수도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종무소가 있는 원각당, 삼성각, 요사채, 해우소가 전부다. 현재의 대웅전 자리가 원래의 법당지로 추정된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석축이 절집의 가장자리를 두르고, 그 아래에 석재 조각들이 일렬로 놓여 있다. 단정하고 질서 정연한 절집이다. 탑만 있던 터에 6·25전쟁 이후 법당을 지었다고 하고, 법륜사라고도 했고, 서황사라고도 했다. 종무소 현판이 죽장사이니, 지금은 죽장사가 맞겠다.

“보리수 나무지요. 염주 만드는. 보리는 깨달음을 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으셨지요. 인도 보리수는 훨씬 잎이 크고 넓어요. 그래서 비와 햇빛을 막아 줍니다.” 입구에 서 있는 커다란 나무, 보리수 나무라 한다. 아직 익지 않은 연둣빛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바람이 불면 종소리가 날 것 같다. 나무 앞에 서면 석탑과 대웅전이 고개 내민 듯 보인다. 뒤돌아서면 남쪽이 환히 열려 있다. 멀리에 금오산의 정상이 희미하게 보이고, 비단실 같은 감천이 들을 가로지르는 모습도 보인다. 그 외에는 모두 하늘이다.

◆죽장리 마을

선산의 진산은 비봉산(飛鳳山)이다. 천사들이 산봉우리를 메고 오다가 내려놓았다는 산으로 그 모양이 봉이 나는 형국이라 한다. 두 봉우리가 나란히 형제처럼 서 있어서 형제봉(兄弟峯)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군이 비봉산을 보고 인재가 많이 날 것을 염려해 산허리를 끊고 장작으로 불을 피우고 쇠못을 박았다 한다.

사람들은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또는 봉황이 대나무에 깃든다는 의미로, 봉황의 먹이인 대나무 죽(竹)자를 넣어 죽장·죽림 등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 죽장리는 구미시가 깨끗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색채 가이드라인’을 수립한 후 처음으로 적용한 ‘색채 시범마을’이다. 죽장사는 죽장리 마을 가장 안쪽 높은 곳에 자리한다. 마을에 들어서면 벽면에 그려진 마을 지도가 있고 죽장사 가는 길 담벼락마다 다양한 대나무 그림들이 채도 낮게 그려져 있다. 죽장사 가는 길은 대숲을 지나는 길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로 나와 죽장교차로에서 우회전해 68번 도로를 타고 조금 가면 왼쪽에 죽장1리가 보인다. 마을 입구 도로변에 죽장사 5층석탑 입간판이 있고 마을 안 벽면에 지도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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