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기관 폴스미스 이근성 대표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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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09   |  발행일 2015-10-09 제37면   |  수정 2015-10-09
“여론 조작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훼손…부정선거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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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기관 폴 스미스의 이근성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책장에 정리된 파일은 그가 지금까지 해 온 여론조사집이다.


여론(輿論)과 여론(與論)은 다르다. 전자는 세론(世論)과 비슷하고 후자는 중론(衆論)에 가깝다. ‘輿論’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수레 안에서 세상을 돌아다니며 바닥으로부터 듣는 다양한 의견’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여론조사의 ‘여’는 ‘輿’를 쓴다. 여론을 영어로 ‘Public opinion’이라 하는데, 이는 ‘공공의 의견이나 견해’라는 뜻이다.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뜻함이다. 정부, 기업, 학자, 언론 등에선 종종 여론조사(Public opinion poll)를 실시한다. 여론조사가 민심을 읽는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론조사는 미완의 사회과학이기에 조사결과를 맹신해선 안 되며, 그렇다고 무시해서도 안 된다.

2010년 제5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남일보는 여론조사기관 ‘폴 스미스’와 함께 대구·경북 기초단체 31군데에 출마한 후보자의 당선 가능성에 대한 선거조사를 했다. 당시 폴 스미스는 한나라당 후보에 맞선 무소속 후보자 7명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해 세간에 화제가 됐다.

이근성 폴 스미스 대표(50)는 대구에서 초·중·고를 나와 경북대 무역학과(85학번)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부정한 세상과 부조리에 저항했다. 그 전력 때문에 대기업 취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아니, 안 했다. 대신 노동 현장을 찾았다. 식품기계 제조공장 직원으로, 오징어잡이배 선원으로, 택시기사 등으로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30대 초반, 대구지역에 있는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2년 가까이 일을 하다 그만두고 여론조사기관을 창업했지만 나이와 경륜, 사회경험이 부족한 데다 숫기가 없는 탓에 정책결정자와 상의하는 일이 힘에 부쳐 회사를 접었다. 스스로도 훈련이 되지 않았다.

그는 40대에 접어든 2005년,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아이너스 리서치’란 여론조사기관을 다시 열었다. 2년 뒤 회사명을 ‘폴 스미스’로 바꾸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폴 스미스가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가운데 지난 2일, 이 대표를 만났다. 여전히 숫기가 없고 말투도 어눌했으나 그게 오히려 신뢰가 갔다.


여론조사에서 중요한 것은
통계수치 자체가 아니라
본질을 볼줄 아는 통찰력

표본 많이 잡는다고
통계가 정확한 것 아니다

무선전화 여론조사는
전국단위 조사외에는
안 이루어져
무작위로 전화했을 때
특정지역 사람일 확률 낮아

여유없는 요즘 20∼30대
정치무관심·탈정치화
투표 성향은
부모세대 영향 많이 받는 듯

▲전국적으로 여론조사기관 수가 얼마나 되나.

“서울 지역에만 200개 정도 있을 것이다. 대구에는 리서치코리아, 에이스리서치 등이 있고, 부산에는 정음(바른 소리) 리서치 등이 있다. 수도권 지역을 제외하고 광주, 대전 등 광역시에 1~2군데 있다고 알고 있다. 조사기관이 언론에 알려지면 아는데,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 같은 곳에서 따로 조사하는 데도 있어 정확히 잘 모르겠다.”

▲여론조사에서 중요한 건 무엇인가.

“어떤 사안에 대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알아내는 일이다. 어떻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사회과학적, 인문학적 태도에 달려 있다. 통계프로그램은 컴퓨터에서 알아서 한다. 윈도 버전이 높을수록 사용자의 편의성도 높아진다. 그건 통계학자의 몫이다. 기초과학으로서 보다 선진화된 기법을 만들어내면 우리는 실전에 응용하고 상용화한다. 자료를 수집하거나 하는 것은 수단이며, 익숙해지면 된다. 가장 중요한 건 통계수치가 아니라 본질을 바라볼 줄 아는 통찰력이다. 날카로운 분석력과 판단력도 중요하다.”

▲최근엔 빅데이터를 여론조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데.

“여론조사기관이 조사 결과와 실제 투표 결과의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SNS 여론 분석을 시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SNS 이용자의 대다수가 수도권 20~30대라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여론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상당히 유용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여론조사의 역사가 오래됐나.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토지의 질이나 농사의 풍작 여부에 관계없이 똑같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새로운 세법인 ‘공법(貢法)’ 실시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고 나와 있다. 지금처럼 과학적인 표본추출에 의한 여론조사는 아니었겠지만, 민심을 중시한 세종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광복 후에는 미 군정이 서울 시민 1만명을 대상으로 ‘앞으로 세워질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 중 어느 것이 좋겠는가’라는 여론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선거와 관련해선 19세기 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처음 시작됐다.”

▲여론조사에선 대표성이 중요한데.

“그렇다. 대표성을 잘 확보해야 한다. 예컨대 전국에서 1천명의 표본을 추출해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한다고 하자. 먼저 그 1천명은 국민을 대표해야 한다. 계층, 연령, 직업, 지역, 교육 정도에 따라 표본의 속성이 다르다. 영호남이 다르고, 세대 간에 차이가 있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그게 대표성이다. 임금피크제나 노동개혁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면 당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특정 지역이나 연령대에 편중되면 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다. 무작정 표본을 많이 잡는다고 정확한 통계가 나오는 건 아니다.”

▲대표성이 떨어지면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예전보다 여론조사 환경이 나빠졌다고 한다.

“조사환경이 나빠진 건 사실이다. 가구마다 유선전화가 거의 다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땐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지금은 유선전화가 없는 집이 많고 예전보다 1인 가구가 늘어났다. 그런 가구가 조사에서 배제되다 보니 대표성이 떨어진다.”

▲선거와 관련한 여론조사의 경우 젊은 층과 노년층 사이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나.

“젊은 세대 사이에 탈정치화, 정치무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지지하는 후보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특히 부모세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예전의 20~30대 젊은 층은 정치적으로 기성세대와 달리 개혁적이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나.

“진학과 취업경쟁이 예전보다 심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의 20대는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 후보가 없어 선거가 성립이 안 된 경우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아리활동도 많이 위축됐다. 개인화·고립화되는 흐름이 보인다.”

▲60대 이상 노년층은 어떠한가.

“20대가 탈정치화하는 데 비해 노년층은 과정치화됐다고 볼 수 있다. 거리의 정치평론가가 예전보다 많이 늘어났다. 이는 정보채널이 풍부해진 결과이다. 예전엔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매체에서 정보를 걸러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슈퍼, 이발소, 목욕탕, 식당 등에선 요즘 하루 종일 종편을 틀어놓고 있다. 예전엔 달성공원이나 탑골공원에 가면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전화여론조사 방법 이외 다른 방법은 없나.

“직접 대면조사, 우편조사, 앙케이트조사 등이 있다. 방문한 고객이나 특정 민원인을 상대로 하는 고객만족도 조사도 같은 게 있다. 인터넷 여론조사도 하는데 노년층의 참여율이 적어 정확성이 떨어진다.”

▲여론조사의 대표성 이외에 여론조사기관에 대한 신뢰성도 중요하지 않나.

“여론조사기관이 신뢰받지 못한다면 그 여론조사기관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훼손이자 주민과 국민이 생각하는 것을 왜곡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이는 부정선거와 마찬가지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작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때론 조사가 안 맞을 수 있다. 조사가 맞지 않는 건 양심의 문제가 아니고 기술적 문제다. 여론조사에 불순한 의도나 목적을 가져선 결코 안 된다.”

▲총선을 앞두고 출마자의 여론조사 요청이 많이 들어오나.

“전화는 많이 오는 편이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 더 바빠질 것이다.”

▲선거 관련 여론조사의 경우 질문의 어감과 방법에 따라 응답이 달라질 수 있지 않나.

“선거의 시기에 따라 질문의 방법을 다르게 한다. 내년 4월이 총선인데, 벌써 단정적으로 누구를 찍겠느냐고 하면 응답자가 대답을 주저하거나 거부할 것이다. 지금은 누가 나은가, 누가 적합한가, 누구를 지지하겠느냐, 누구를 선호하느냐,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정도로 한다. 선거일이 가까워올수록 직접적 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경험상 지지도와 적합도 선호도의 결과는 대개 비슷하게 나온다.”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통 ‘방금 지지하신 후보와 상관없이 누가 당선 가능성이 높겠느냐’고 묻는데 지지도와 당선 가능성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내가 지지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똑같이 지지한다고 할 순 없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경북지역구 가운데 가장 뜨거운 지역을 예상한다면.

“대구지역에선 수성구갑과 동구을이 가장 치열할 것이다. 전국적으로 관심을 갖는 지역구이기도 하다. 경북의 경우 구미갑이 뜨거울 것 같다. 사실 내가 더 궁금하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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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여론조사 때 유·무선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 않은가.

“알아 둘 게 있는데 휴대전화조사, 즉 무선전화는 현재 전국단위조사 외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컨대 ‘010-0000-0000’의 번호로 무작위로 전화를 걸었을 때 서울·부산·광주 사람 가운데 대구 사람만 골라낼 확률이 얼마나 되나. 게다가 대구 사람 가운데 한 지역구에 사는 사람이 받을 확률은 300분의 1도 안 된다. 총선과 지방선거 여론조사는 유선전화밖에 되지 않는다. 전국단위 조사의 경우 무선으로만, 혹은 유·무선을 섞어 하는 경우가 있다.”

▲유선전화로 할 때 집안엔 대체로 노년과 여성층이 많이 있지 않나.

“유선전화로 조사를 할 때 대표성을 찾는 데 어려움은 있지만 당선자 예측과 경향 파악엔 여전히 유효하다.”

▲2010년 지방선거 때 폴 스미스가 당선자 모두를 정확히 맞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우연일 수 있었는데 정말 마음이 놓였다. 당시 달성군에서 무소속 김문오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2% 정도 이기는 걸로 나왔는데 실제 이와 비슷한 결과로 이겨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시 김 후보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 언론사는 영남일보가 유일했다. 첫 여론조사에서 김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와 15% 이상 차이가 났으나 박근혜 대표가 약 보름간 집중지원을 해 선거결과가 오리무중이었다. 지금까지 영남일보와 함께 해서 틀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언론사와 조사기관의 신뢰관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여론조사를 맡기는 의뢰인이 잘 봐달라고 하는 경우는 없나(웃음).

“있다.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조사기관이 반드시 지켜야 할 룰이 있다. 그건 생명과도 같다.”

▲최근 회자되는 안심전화번호는 어떤 것인가.

“휴대폰 번호의 경우 개인정보 보호법상 그 번호가 어느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의 것인지 알 수 없다. 안심번호란 가상 전화번호를 이용해 여론조사에 참여할 수신자의 실제 번호 노출을 차단시켜 공천에 참여하게 하는 방식이다. 여론조사를 하는 각 정당은 실제 전화번호가 아니라 이동통신사가 무작위로 만든 11자리 가상 번호만 제공받게 된다. 예컨대 대구 동구을에 사는 A씨의 휴대폰 번호를 이동통신사에서 제공하는데 개인정보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번호를 입혀 주는 제도다. A씨에게 전화가 가지만 실제 전화번호는 모른다. 가상번호는 시효가 있어 폐기해야 한다.”

글·사진=박진관기자 pajik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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