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창업 성공학 개론 .2] 제니퍼소프트와 이원영 대표

  • 구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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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10-15   |  발행일 2015-10-15 제5면   |  수정 2015-10-15
“삶의 여백 회사가 뺏어선 안돼…카페·수영장서 놀면서 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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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소프트 직원들은 업무공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일을 한다. 사옥 1층에는 카페와 언제든지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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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소프트 본사 지하의 수영장. 수영시간도 근무시간에 포함된다.

직원 100%가 정규직이다. 퇴근 시간이 자유롭고 하루 7시간 근무가 철칙이다. 연봉도 적지 않다. 초봉이 3천만원을 넘는다. 여기에 20일 휴가는 기본이다. 아이를 낳으면 1천만원을 지급하고, 입사 5년이 지나면 가족해외여행까지 보내준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복지 혜택이 많다. 외국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구글’로 불리며 꿈의 직장이라 일컬어지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제니퍼소프트’란 국내 IT기업 얘기다. 2005년에 설립된 제니퍼소프트는 애플리케이션 성능 관리 솔루션(APM) 판매가 주된 비즈니스다. 쉽게 말해 인터넷뱅킹 등 웹 기반 서비스를 모니터링해 시스템이 다운되거나 지연되는 걸 예방하는 프로그램을 판다.

제니퍼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CEO는 봉화 출신의 이원영 대표다. 그는 지난달 취업포털 사람인의 ‘함께 일하고 싶은 CEO’ 조사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에 이어 4위에 올랐다.

영남일보는 이 대표와 접촉해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자신이나 회사의 복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는 걸 경계하는 듯했다. 그는 대신 그 밑에 깔린 철학에 더 주목해 달라고 당부했다. 사람들이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비쳤다.


앱 성능관리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
직원 26명에 매출 140억 ‘업계 1위’

“좋은 아이디어 행복한 삶에서 나와”
자유롭게 사고하며 하루 7시간 근무
입사 5년 후엔 가족해외여행 보내줘
이원영 대표 ‘일하고픈 CEO’ 4위


◆ 건강한 노동과 근사한 삶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인 제니퍼소프트는 2012년 4월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정착했다.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구성원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장소로 헤이리예술마을이 적합하다고 이 대표는 판단했다.

제니퍼소프트는 ‘건강한 노동과 근사한 삶’을 중시한다. 자율적 환경 속에서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고, 이를 통해 형성된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한다. 창의성과 열정은 이 같은 건강한 기업문화에서 스며나온다고 믿고 있다. 건강한 글로벌 기업을 목표로 한 제니퍼소프트는 자율, 열정, 창의, 연대, 나눔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행동준칙은 ‘변화를 추동하라, 경쟁보다 협력하라, 취지를 되물어라’이다. 모토는 ‘사유하라(THINK DEEP)’이다.

지난 1일 기자가 방문했을 때 회사가 아닌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찾은 느낌이 들었다. 사옥 1층에는 카페가 있고, 상추 등 채소를 키울 수 있는 텃밭도 보였다. 홍보실 김윤희 차장이 기자를 맞이했다.

◆ 자본의 중심에서 상생을 꿈꾸다

기자가 찾았을 때 사무실에 앉아 있는 사원들은 많지 않았다. 몇몇은 정원을 거닐기도 하고, 일부는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기도 했다. 직원들이 어디 있냐고 묻자 김 차장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잘 모르겠다. 아마 수영장에 있거나 도서관에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지만 회사 실적은 좋다. AMP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 연 매출은 140억원 이상이다. 현재 일본과 오스트리아 등에 법인과 지사를 운영하고 있고, 16개국에 협력사를 두고 있다. 직원 26명의 작지만 강한 기업이다.

김 차장은 “얼핏보면 여기 구성원들이 놀기만 하고 일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라며 “하지만 자세히 보면 최대한 집중해서 일한 뒤 놀고 있는 것이다. 우리 회사 구성원들은 언제 어디에서든 일을 시작하고 몰입해서 빨리 끝낸다. 자리에 오래 앉아 있으면 오히려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1990년 대구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협상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3개월간 복역했다. 그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주변부가 아닌 기업이란 자본의 한복판에서 이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또 프로그램 개발자로 8년간 일하면서 잦은 야근과 격무로 힘들어 하는 동료들을 보며 직원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싶어 2005년 제니퍼소프트를 창업했다.

◆ 복지는 기업의 의무

이 대표는 당시 ‘만약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면, 그 외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봤다고 한다. 결론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 문화 속에서 일하며 사람이 수단이 되고 비용으로 평가받는 현실을 경험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 대표가 생각하는 기업의 역할은 근로자가 건강한 노동으로 근사한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을 충족하고 채워주는 것이다. 따라서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면서 그에 따른 대가를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것.

복지에 너무 많은 투자를 하면 비효율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직원들은 “결국 제품 개발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좋은 아이디어가 나와야 하고, 좋은 아이디어는 행복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또 뛰어난 기술도 중요하지만 기술이 인간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먼저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선 자신이 추구하는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기 위해선 삶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의 여백을 회사가 뺏어선 안된다는 게 이 대표의 확고한 신념이다.

◆ 기업은 리더 혼자 이끌 수 없다

기자가 만난 직원들은 대화 도중 ‘직원’이란 말을 쓰지 않고 ‘구성원’이란 말을 썼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구성원이란 말을 사용하게 된 것은 수직적 상하관계로 이뤄진 숨막히는 기업의 틀을 깨려는 노력에서 나오게 된 것”이라고 귀띔했다.

구성원이란 말의 의미엔 “기업은 리더 혼자만의 생각으로 이끌어 갈 수 없다. 구성원들의 자발적 협조와 헌신이 없다면 회사는 성과를 낼 수 없다”는 이 대표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보울레(Boule)’라는 사내 조직이다. 고대 그리스어로 평의회를 뜻하는 보울레에서 구성원들이 모여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여기서 결정된 사항은 대표도 바꿀 수 없다. 주로 복지 혜택과 규칙을 결정한다. 일은 적게 하고 더 많이 노는 식으로 의견이 모아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구성원들이 지금의 자율성과 복지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회사가 잘 돼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니퍼소프트가 제시한 궁극적 가치는 바로 ‘함께 행복해지자’이다.

사무실 한 쪽 벽에 ‘꿈의 직장을 위한 33가지 금지 항목’이 걸려 있었다. 이 가운데 마지막 항목이 눈에 띄었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마세요. 당신의 삶이 먼저예요’

글·사진= 구경모기자 chosim34@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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