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졸업식이 열린 대구 강동중 앞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학부모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를 하고 있다. |
같은 시간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강동중 강당 입구에서 명함과 함께 인사말을 건네고 있다. |
‘헌법 1조 vs 진박’
20대 총선 ‘대구 동구을’의 새누리당 경선은 TK(대구·경북) 정치권력의 미래를 결정지을 가늠자로 불린다.
원조 친박(親 박근혜)이었다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배신자’로 공격받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번 경선에서 승리할 경우, 대구정치 리더이자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입지를 다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홀로 ‘친박’의 파상공세를 이겨낸 것이기 때문이다.
유 의원은 지난 1일 예비후보 등록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거리에서 시장에서 주민들의 손을 잡으면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무거움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대표주자로 하는 친박의 입장에서도 ‘동구을’은 사활이 걸린 지역이다. 유승민 의원의 원내진입을 막아내야 TK에서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해나갈 수 있고, 박근혜 정권의 정권 말 레임덕도 늦출 수 있다. 친박을 등에 업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 역시 유승민이라는 거물을 잡아낼 경우 다음 목표인 대구시장에 한발 더 다가서게 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친박의 집권연장이냐, 새로운 리더의 등장이냐를 두고 TK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정치지형에 영향을 미칠 ‘동구을’의 현장은 벌써부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 같은 현장, 두 후보
지난 3일 오전 10시30분쯤 대구시 동구에 위치한 강동중학교. 졸업식이 열리는 2층 대강당 앞에서 새누리당 빨간 점퍼를 입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전(前) 동구청장 이재만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며 학부모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었다. 8년여 동안 구청장을 한 때문에 그가 악수를 건네자 알아보는 주민들이 많았다. 40대 중년여성은 “아이고, 구청장님, 고생 많네요. 파이팅입니다”라고 말했고, 이 전 구청장도 “잘 지내셨어요”라며 화답했다. 민심을 묻는 질문에 이 전 구청장은 “다들 반가워해 주셔서 힘이 나고 자신 있다”고 웃어보였다.
친박 공세 홀로 막는 유승민
승리 땐 차기 대권주자 우뚝
친박 전폭 지지 받는 이재만
거물 꺾으면 ‘새 리더’ 부상
안갯속 바닥민심 ‘승패 변수’
10여 분 후 졸업식이 시작되자, 이 전 구청장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강동중 교문 밖으로 나왔다. 교문 앞에서는 유승민 의원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지난 1일 예비후보로 등록한 유 의원도 새누리당의 빨간 점퍼를 입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본 두 예비후보는 “고생 많습니다”라며 악수는 했지만, 각자 거리를 두고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에서는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이 전 구청장이 떠나고 홀로 남은 유 의원은 “열심히 하겠습니더. 도와주이소”라며 연신 허리를 굽히며 주민들에게 인사했다. 주민들도 유승민 의원을 알아보고는 반가워했다. 한 70대 할머니는 “아이고, 길 건너편 지나가다 유 의원 보고 (횡단보도) 넘어 돌아왔다”며 그를 격려했고, 유 의원도 “어이구,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지인의 졸업식을 찾았다는 20대 청년은 “힘내세요. 응원하고 있습니다”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학교 내부 졸업식 현장이 아니라 교문 밖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유 의원은 “선거법 여부를 떠나서 빨간 점퍼를 입고 졸업식에 들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교문 밖에서 인사드리고 있다”고 답했다.
두 예비후보는 이날 오후 ‘동촌농협 주부대학 총회’에서도 조우했다.
◆ 박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변수’
바닥민심은 쉽게 점치기 어려웠다. 단, 전통적인 지역정서와 최근 ‘진박(眞朴)’ 논란 등으로 인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역민심이 이번 승부의 변수다.
먼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높지 않은 20~30대 등 비교적 젊은 층은 유승민 의원에 대한 지지성향이 뚜렷했다. 지하철 1호선 용계역에서 만난 직장인 정모씨(34·대구 동구 해안동)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비롯해 진박이라는 사람들이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유승민 의원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 한숨밖에 안 나온다”면서 “대한민국 헌법을 위해서라도 유승민 의원이 당선돼야 하고, 꼭 투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반면,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60대 이상에서는 이재만 전 구청장에 대한 호감도가 비교적 높은 분위기였다.
이 전 구청장의 선거사무소가 있는 방촌시장에서 만난 상인 최모씨(68)는 “예전에는 유 의원을 좋아했는데, 대통령 뒤에서 총질하면 안된다”며 “이재만 전 구청장이 인상도 푸근하고 지역정서도 잘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최우석기자 cws092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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