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임정사, 유년때 부처님의 가피 체험 후 출가

  •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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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2 08:04  |  수정 2016-05-12 08:04  |  발행일 2016-05-12 제17면
법일스님 종무원서 7년째 강의
세계불교유산 ‘영산재’도 이수
성주 임정사, 유년때 부처님의 가피 체험 후 출가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있는 임정사 극락전. <임정사 제공>
성주 임정사, 유년때 부처님의 가피 체험 후 출가
주지 법일 스님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에 소재한 한국불교태고종 소속의 전통사찰 임정사. 주택들이 밀집한 골목길을 따라 올라간 임정사의 풍광은 여느 사찰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대문 입구의 ‘임정사’라는 문패가 아니라면 어느 문중 고택쯤으로 착각할 정도다. 경내에는 푸른 잔디밭과 돌다리, 정자가 편안함을 더해주고 있으며 푸른 잎을 자랑하는 고목과 잔디는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임정사 앞 뜰에서 바라본 풍광은 과히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느낌이다. 임정사를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성주군청이 자리 잡고 있고 바로 아래에는 100년 전통의 성주초등학교가 있으며, 왼쪽으로는 성주경찰서와 성주일반산업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도심 전체를 품을 수 있는 위치다.

임정사의 창건은 조선시대 고종 27년인 1890년 감응사 주지 우산당(牛山堂) 상진(相珍) 스님이 포교당으로 창건해 초대 주지로 그 기초를 놓았다. 그 뒤 1936년 무렵에야 지금처럼 ‘임정사’라는 이름으로 등록했다.

경내 건물은 1970년대 2대 주지인 경우당(鏡牛堂) 영근(榮根) 스님이 극락전을 지었고, 90년부터는 3대 주지인 견성당(見性堂) 대암(大岩) 스님이 주지로 주석하며 삼성각과 종각, 요사를 중수했다. 2009년부터 제4대 주지로 성우당(惺牛堂) 법일(法日) 스님이 지장대불을 봉안하는 등 임정사의 새로운 시대를 이끌고 있다.

삼성각 앞에는 ‘봉성산임정사극락보전창건동참비’가 세워져 있는데, 근대 임정사의 연혁을 간단히 기록하고 있어 임정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4대 주지를 맡고 있는 법일 스님은 부처님의 가피를 유난히도 많이 체험했다. 유년기 때는 두 다리를 모두 잃을 상황이었지만 부모님의 깊은 신앙심으로 다리를 절단하지 않고 꼬박 4년간을 누워서 병치레를 해야만 했다. 부모님의 천일 기도가 끝나갈 즈음 처음으로 부처님의 가피를 체험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러번 부처님의 가피를 체험한다.

이후 병상에서 단번에 일어난 스님은 “부처님께 기도하며 사는 삶이 제일 좋은 것”이라는 깨우침으로 1993년 출가하게 된다. 이후 법일 스님은 세계불교문화유산으로 대한민국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에 등록된 불교의식 ‘영산재’의 지정도량인 신촌 봉원사에서 영산재 이수자가 된다. 2009년 임정사 제4대 주지스님으로 부임 후에는 태고종 대구경북종무원에서 7년째 스님들의 기본소양, 예법, 사찰규범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성주경찰서 경승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매년 잊지 않고 외롭고 소외된 조손가정을 볼보고, 지역 내 마을회관 등을 찾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등 사랑의 실천도 아끼지 않고 있다.

성주=석현철기자 shc@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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