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혁의 남자의 취미] 김광석, 따라 부르기, 그리고 기타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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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13   |  발행일 2016-05-13 제40면   |  수정 2016-06-17
다루는 악기라곤 노래방 탬버린뿐이던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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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앞두고 써내려간 버킷리스트
김광석 노래 3곡 기타 치며 부르기
30대 두 번의 실패 후 40대 재도전

서너시간 연습 한달 만에 한곡 성공
대학 합격만큼 뿌듯…모든 일 자신감
5개월 지나 이젠 광석이형 5곡 가능
명치끝 저린 노래에 인생 배우는 중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들, 혹은 해야 할 것들을 적은 목록을 말한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 가난한 정비공인 카터(모건 프리먼 분)의 버킷리스트는 낯선 사람 도와주기,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보기와 같은 그저 소박한 것들이었다. 우연히 한 병실에서 만나게 된 백만장자 에드워드(잭 니콜슨 분)의 도움으로 꿈에서나 그리던 버킷리스트에 도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워낙 유명한 영화다 보니 구구절절 내용을 적을 생각은 없다. 다만 그 영화가 개봉한(2008년 4월) 직후 버킷리스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높았고, 유행에 민감한 나 역시 그 대열에 합류했기에 기억의 일부로 들춰낸 것일 뿐이다. 시기적으로 결혼 전후였던 것 같은데, 그것이 영화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모험을 앞두고 일어난 심경의 변화였는지는 지금도 확신할 수 없으나, 보석을 다듬듯 버킷리스트를 써내려갔다.

마추픽추 정상에서 가족 인증샷 찍기, 다락방이 있는 3층집 짓기 등 꿈에 가까운 내용을 많이 적어 놓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광석 노래 세 곡을 기타 치며 부르기’였다. 물론 쉬운 일이 될 거라고 예상하지는 않았으나 두 번의 실패 후에는 차라리 지울 생각도 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왜 김광석인가’에 대해서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의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고, 그의 노래를 통해 20대의 상처와 방황을 치유했으며, 그의 노래 한 곡으로 30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의 노래를 곱씹으며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 이가 어디 대한민국에 나 혼자뿐이랴. 그렇게 김광석의 노래는 ‘나’라는 무형의 자아를 관통하고 지나가는 하나의 바람이었고,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는 하나의 향기였다.

하지만 그 흔한 피아노 레슨 한번 받아보지 못한 30대 후반의 아저씨가 기타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광석에 대한 절대적 숭배 의지와는 상반되게 기타 배우기에 대한 첫 도전은 열흘도 안 되어 막을 내렸다. 손톱 밑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긁는 듯한 통증과, 저것이 과연 인간의 손가락으로 가능한 위치인가 싶은 코드들 앞에 무릎 꿇고 만 것이다. 내게는 선천적으로 음악적 유전자가 결여되어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그 후로도 가끔씩 술 취한 밤이면 기타를 꺼내어 튕겨 보았지만, 취객의 주사 그 이상을 넘어선 선율은 아니었다. 기타는 조금씩 내 시야에서 사라져 후미진 창고 어딘가까지 흘러들어갔다. 그렇게 마흔을 넘어선 어느 날, 지난 삶을 돌아보다 보니 잘한 일보다 잘 못한 일과 쉽게 포기해버린 일들이 눈에 밟혔다. 남은 인생, 시작한 일은 끝을 보리라 굳게 마음먹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먼지 앉은 기타를 꺼낸 것이었다.

처음 1주일간은 서너 시간 이상을 기타에 매달렸다. 손가락 끝은 물집이 잡혔다가 굳은살로 변했다. 일반적인 기타 강습이 아닌 한 곡을 찍어 끝장을 보리라 생각하고 시작한 연습이었기에 옆에서 듣는 사람들은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을 연습해서 완성한 곡이 바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본 사람은 그 어려움을 잘 안다. 나 같은 생초보가 왼손으로 코드를 잡고 오른손으로 스트로크를 하며 노래까지 부른다는 것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것과 난이도면에서 흡사하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오로지 ‘1만 시간의 법칙’만을 생각하며 시간과의 지루한 전쟁을 벌였다.

비록 코드 서너 개로 구성된 곡이었으나, 그 한 곡을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되자 기쁨과 성취감은 내 작은 우주의 빛깔을 푸르게 바꾸었다. 마침내 해냈다는 자신감은 나머지 버킷리스트의 절반쯤 끝낸 기분이었고, 누구든 앞에 붙들어놓고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스스로 대견했고, 대학 합격 때만큼이나 뿌듯했다.

그리고 5개월쯤 흘렀다. 물론 중간에 하이코드라는 숨은 복병을 만나 진정한 벽을 느끼기도 했으나, 이제는 광석이형 노래를 다섯 곡쯤 연주하며 노래를 곁들이는 수준이 되었다. 여전히 제대로 악보 볼 줄은 모르고, 박자감도 떨어지지만, 그저 코드표만 보고 기타를 치며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행복을 느낀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를 따라 부르며 나는 마흔을 넘기고 있다. 20년도 더 전에 듣던 노래가 요즘도 절절하게 명치 끝을 파고드는 건 시대를 넘어선 그의 음악 혼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특유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음미할수록 더 맛과 향이 짙어지는 깊이 있는 가사들까지. 그렇게 그의 노래를 기타로 연습하면서 나는 인생을 배우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인생을 지나가고 있다.

누구나 칠 줄 아는 기타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마흔 넘은 나이에 다루는 악기라곤 노래방 탬버린뿐이던 누군가가, 기타를 통해 새로운 인생을 맛보았다고 말한다면 비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뭐 어떤 비난을 해도 울컥하거나 동요하지 않는다. 이제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누군가를 의식할 나이는 지났으니까.

비단 기타뿐 아니라 취미로 새로운 악기에 도전하는 모든 분들에게 희망의 촛불을 전하고 싶다. 그동안의 삶이 마른 땅 위를 힘없이 걷는 느낌이었다면, 적어도 음악과 함께할 앞으로의 삶은 촉촉한 대지 위를 걷는 기분일거라고. 악기 하나 다룬다고 세상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시선은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하나 더, 혹시 기타 배우기를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눈 딱 감고 일주일만 버텨 보라는 말도 꼭 해주고 싶다. 손가락 끝이 무뎌지는 만큼, 얼어붙은 감성이 스르르 녹는 걸 느낄 것이다. 퍽퍽한 삶에 활력을 찾아 준 기타라는 단비를 온몸으로 맞는 기분. 이 비가 그치면 저 멀리 남은 인생의 무지개를 찾아 떠나고 싶다.

칼럼니스트 junghyuk2@hanmail.net


20160513

☞ 김광석 거리를 찾는 사람들

대구의 명소 김광석 거리. 고(故)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2010년 11월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350m 길이의 방천둑길 벽화거리다. 김광석의 노래와 삶을 다양한 조형물과 벽화로 표현했으며, 현재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는 테마 거리로 거듭나고 있다. 다양한 연령대가 방문하는 김광석 거리의 매력은 무엇일까.

Q. 김광석 거리를 방문한 소감은?

-거리의 벽마다 그려져 있는 김광석의 얼굴과 노래 가사, 또 가사와 어우러지는 그림이 마치 김광석이 살아서 말을 거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친밀감을 준다. 그의 짧지만 굵었던 음악사처럼, 김광석거리 자체의 길이는 길지 않지만 그가 남긴 유산들로 인해 긴 여운을 주는, 깊이가 느껴지는 거리라는 생각이 든다.(여·27·회사원)

Q. 자주 찾는 이유가 있다면?

-사진 찍기 좋은 예쁜 배경이 많고 계절마다 색다른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 다녀가면 무언가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든다. (여·26·주부)

Q. 김광석 거리에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연령대가 어리거나 김광석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전시관 혹은 유물관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남·30·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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