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 천우희 “善과 惡 사이 미스터리한 여자…나도 처음엔 ‘멘붕’”

  • 윤용섭
  • |
  • 입력 2016-05-16 08:03  |  수정 2016-05-16 09:55  |  발행일 2016-05-16 제24면
20160516
배우 천우희는 영화 ‘곡성’에서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짧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천우희는 “녹록지 않은 캐릭터였지만 연기 갈증도 마음껏 풀었다”며 “곡성은 경이로운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프리랜서 dada2450@hanmail.net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질까
생각하게 만드는 대혼돈의 영화
집요한 나홍진 감독 존경스러워”

“네 딸을 살리고 싶으면 닭이 세 번 울기 전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마!” 딸을 찾아 마을을 헤매던 종구(곽도원)에게 정체불명의 여자 무명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로 그를 더욱 혼란에 빠뜨린다.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나타난 후로 살인, 화재, 자살 등 기이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곡성의 한 시골 마을. 무명은 이미 한 차례 자신이 사건의 목격자이며 외지인이 범인이라고 그에게 귀띔한 바 있다.

‘곡성’은 오컬트와 스릴러의 장르적 만남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의 공포와 긴장감을 형성한 나홍진 감독의 6년 만의 신작이다. 천우희는 그 중심에서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미스터리한 인물 무명을 연기했다. 러닝타임이 156분에 달하지만 그녀는 극의 초·중·후반부를 스치듯 등장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뿜는 에너지와 존재감이 대단하다. 나홍진 감독이 “캐릭터를 가지고 놀 줄 아는, 두려움을 모르는 배우”라고 평가했던 건 그런 이유일 게다. 역할의 비중보다 작품을 우선시하는 천우희에게도 ‘곡성’은 “읽는 것만으로도 흥분을 일으키는 경이로운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런 두 사람의 만남이니 궁금을 자아내게 한다. 영화 ‘한공주’를 시작으로 ‘카트’ ‘손님’ ‘해어화’ 등 매 작품 섬세한 감정연기로 대중을 사로잡은 천우희는 그렇게 나홍진 감독이 선택한 첫 여배우가 됐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욱 기대되는 그녀의 야심찬 행보를 지켜보는 건 그래서 늘 흥미롭다.

▶출연 분량이 생각보다 적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을 듯하다.

“원래부터 출연 분량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너무 욕심나던 시나리오였기 때문에 ‘아, 이제 진짜 해보는 건가’라는 기대감이 더 컸다. 선배님들과의 호흡도 그렇고. 물론 편집된 부분이 있지만 그건 영화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한 감독님의 톤앤매너라고 생각한다.”

▶무명은 선과 악의 경계에 있는 모호한 인물이다.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쉽지는 않았을 듯한데.

“그렇다. 나도 시나리오를 읽고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독님에게 ‘멘붕’이라고 말했을 만큼 혼란과 혼동 그 자체였다. 그런데 감독님이 느끼는 대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까짓것 해보자 싶었다. 언급한 것처럼 무명은 선과 악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인물이다. 내 분량이 적다 보니 캐릭터 접근에 있어서 그 느낌을 시종 동일하게 가져가야 할지, 아니면 일종의 페이크를 써서 변화를 줘야 할지를 놓고 고심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너무 의도적으로 비치지 않도록 표현했는데 감독님도 두 다리를 땅에 딛고 있는 느낌이 좋다고 하셨다. 아무튼 이제껏 누구도 표현한 적이 없는 나만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정말 날 것의 느낌으로 임했다.”

▶캐릭터 접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일단 종교와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람들이 종교를 선택하고 신을 믿게 된 건 두려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포심일 수도 있고. 대부분 그러한 공포심과 두려움의 근원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예전의 토속신앙과 샤머니즘에선 악을 숭배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런 모호함을 중심에 놓고 접근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캐릭터의 선함과 악함을 보여주는 건 배제하고 관객들이 무명의 정체성을 궁금해하고 헷갈리게 만들고 싶었다. 물론 녹록지 않은 작업이긴 했다.”

▶나홍진 감독에 대해 ‘징글징글하다’고도 말했는데 그와의 작업은 어땠나.

“그건 존경의 의미로 말한 거다.(웃음) 일에 관한 한 감독님은 정말 타협이 없다.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를 뽑아내기 위해 열정을 다하는 모습이 좋다. 덕분에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간의 연기 갈증도 마음껏 풀었는데 특히 배우와 감독의 교감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진짜 시골 처녀 같은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촬영이 그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촬영하는 동안 미장원은 물론 피부과도 가지 않고 6개월 넘게 자연을 벗하며 지냈다. 그러다 보니 별다른 분장을 하지 않아도 그곳에 살고 있는 느낌이 났다. 보면 얼굴도 되게 푸석푸석하다. 분장팀에서 걱정을 했을 정도인데 오히려 자연스러움이 묻어나서 좋았다.”

▶실제로는 밝은데 불행하거나 사랑받지 못하는 역할을 주로 해왔다. 그런 데 대한 부대낌은 없었나.

“어느 순간부터 주변사람들이 나를 측은하고 안쓰럽게 보는 것 같았다. 땅끝으로 들어갈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웃음) 그렇게 다들 걱정을 한다. 하지만 나는 연기와 일상을 철저히 분리한다. 캐릭터의 감정에서 쉽게 빠져 나오는 편인데 그래야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물론 밝은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한편으론 내가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연기를 계속하는 한 앞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는 많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한다.”

▶연기관이 남다를 것 같다.

“연기관이 매번 조금씩 바뀌긴 하는데 일단 개인적인 연기스타일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이 영화가 지금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를 찾는 편이다. 그게 상업적인 즐거움이든, 위로를 주는 것이든 분명 전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배우 입장에서도 진지해질 수 있다.”

▶‘곡성’은 어떤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하나.

“대혼돈의 메시지이다.(웃음) 평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 ‘왜 이런 일이 나에게 벌어지지, 신이라는 존재가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생각한다. ‘곡성’이 그런 의문점에서 출발했다는 감독님의 얘기가 와닿았다. 영화를 보고 받아들이는 느낌은 각자 다르겠지만 한 번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연기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뭔가.

“정말 단순하다. 고등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했는데 해보니 정말 재밌었다. 연극제에 나가서 상도 타고 하니까 내가 연기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대학도 연극과를 선택했다. 그러다가 봉준호 감독님의 ‘마더’(2009)에 단역으로 출연하게 됐는데 대학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연기의 맛을 그때 처음 느꼈다.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이 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흘리는 땀과 열정을 보면서 연기를 그저 단순한 재미로 여겼던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신기한 건 평소 다른 일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데 연기를 할 때만큼은 신나고 숨통이 트인다. 내가 상상한 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정말 즐겁다. 더 잘 하고 싶은데 못하면 엄청 괴로워 하면서도 말이다.”

▶천생 배우다.

“나도 내가 배우를 안 했으면 뭘하고 있을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이 너무도 행복하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윤용섭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연예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