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책상사이] 오월이 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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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5-23 08:31  |  수정 2016-05-23 08:31  |  발행일 2016-05-23 제18면
[밥상과 책상사이] 오월이 가기 전에

오월의 잎들은 여리고 부드럽다. 윤기가 난다. 싱그러운 햇살이 축복처럼 산과 들에 내려앉고 훈훈한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면, 반짝반짝 빛나는 초록의 귀걸이들은 현란한 동작으로 계절을 찬양한다. 오월의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고, 환하고, 찬란하다. 그 하늘을 바라보면 우리의 가슴은 까닭도 없이 막연한 기대로 부풀어 오른다. 오월에는 눈을 감지 않고도 꿈을 꿀 수 있다. 이제야 알겠다. 우리 조상들이 보릿고개를 견디어 낼 수 있었던 이유를. 오월의 나무와 잎새들, 오월의 하늘과 태양은 어떤 어려움도 견디게 해주며,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준다.

도시 학생들의 정서불안과 폭력성은 학교 건물과도 관련이 있다는 연구 논문이 나온 적이 있다. 그 연구에 따르면 단층의 목조 건물이 가장 좋다. 바람 소리, 벌레 소리, 빗소리가 교실에 그대로 들어올 수 있어, 학생들의 정서 순화에 크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은 자연의 소리를 차단하여 풍경을 삭막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성정을 거칠게 만든다. 문제는 자연의 소리와 풍광이다.

오월의 풀밭을 걸어보자. 엄마의 품처럼 포근하고 편안한 잔디에 풀썩 주저앉아 티 없이 맑은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거나, 나비의 날갯짓을 무심히 바라보자. 그리고 눈길을 돌려 지천에 흐드러져 있는 토끼풀을 보자. 토기풀 꽃 향기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다. 아빠는 엄마에게, 오빠는 여동생에게 꽃반지를 만들어 주자. 반지가 시들면 소중히 여기는 시집 속에 끼워 두자. 한참 세월이 지나고 어느 날 우연히 바싹 마른 꽃반지를 보면 가슴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풀밭의 추억들이 우리를 한없이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오월의 강둑을 걸어보자. 몸을 낮추고 머리를 숙여 방죽을 따라 핀 들꽃들을 찬찬히 바라보자. 하늘에 닿아 있는 미루나무 사이로 새들이 날아가고 구름이 흘러간다. 강변 모래사장과 미루나무를 거쳐 온 상쾌한 바람은 겨울 맵찬 바람처럼 가시도 없고 모가 나지 않아 뼛속 깊이까지 포근하게 스며들어 우리의 지친 심신을 치유해 줄 것이다. 날 저물면 들길을 걸어보자. 타는 노을과 붉게 물든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고, 편안히 누워있는 먼 산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낙조의 풍경에 오래 잠겨보자.

감꽃이 한창이다. 늦은 봄날의 대기를 뚫고 뒷산에서 아득하게 울려 퍼지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감꽃을 주워 보자. 목걸이와 팔찌를 만들어보자. 어린 시절 목걸이를 목에 걸고 돌아다니다가 집에 오면 벽에 걸어두었다 밤에 배가 고프면 감꽃을 한 개씩 빼내어 씹어 먹곤 했다. 감꽃이 필 무렵 원인 모를 병을 앓다가 굶어 죽은 이웃집 누나가 있었다.

“별을 닮은 감꽃/ 감꽃 실에 꿰어// 가슴까지 길게/ 길게 목걸이 하면// 죽어 별이 된 누이야/ 누이야 누이야// 밤이나 낮이나 너는/ 너는 지지 않는 내 가슴 속의 별” 그 누나를 생각하며 쓴 ‘감꽃’이란 시다. 오월이 가기 전에 감꽃이 뚝뚝 떨어지는 시골 골목길 나들이를 해 보자.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 이사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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