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고래의 고향’에 가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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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17   |  발행일 2016-06-17 제33면   |  수정 201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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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간절곶. 프로방스풍의 풍차와 코발트빛 바다가 산업도시의 메카, 울산의 우중충한 이미지를 산뜻하게 날려준다. 간절곶의 해풍은 장생포고래, 정자항 가자미, 언양·봉계 불고기 맛을 더욱 깊게 숙성시켜준다.

울산에 간다. 울산은 꼭 울산(蔚山)과 울산(蔚産) 사이에 걸린 ‘구름’ 같다. 산(자연)과 산업(인공)으로 짠 ‘밧줄’이랄까.

울산석유화학단지(827만㎡)~현대자동차(500만㎡)~현대중공업(608㎡)~온산공단(17.3㎢). ‘장갑차’ 같은 이 넷은 산업도시 울산을 지탱하는 ‘사존불(四尊佛)’. 4인방의 아우라가 너무 강해 울산의 산 자를 ‘산(山)’ 대신 ‘산(産)’으로 고집하는 이도 있다.

그렇다면 울산(蔚産)? 대한민국 산업인프라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니 이 지명이 솔직히 더 실감난다. 1968년 울산은 천지개벽한다. 석유화학공업단지가 들어선 것. 그해 3월22일, 울산은 기원전(BC)에서 기원후(AD)로 돌변한다. 포항제철에 앞서 한국 첫 콤비나트가 장착된다.

석유 이전에 울산의 상징은 단연 ‘고래’. 울산 앞바다는 태평양 고래의 ‘사랑방’이었다. 포경학자들은 이 바다를 세계 유일의 귀신고래 회유해역으로 주목했다. 고래 호경기에는 장생포초등학교 교실에서도 고래 소리가 들렸단다. 오죽 고래가 많이 잡히고 흔했으면 장생포초등 정문까지 고래뼈로 치장했을까. 영화 ‘인디애나 존스’의 실제 주인공인 미국 탐험가 로이 앤드류스(1884~1960), 그는 1912년 울산에 머물며 귀신고래 관련 논문을 발표해 울산의 생태학적 가치를 세계에 알린다. 국보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 고래까지 울산이 고래도시란 걸 확인시켜준다. 하지만 86년 장생포는 충격에 휩싸인다. 협약에 의해 지구 상에서는 더 이상 고래를 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장생포의 포경선은 사형선고를 받는다. 포수들도 흩어졌다.

◆태화강은 블루스, 간절곶은 프로방스

2000년대로 접어들 즈음. 울산은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급선회한다. 그 1탄은 ‘태화강 살리기 운동’. 90년대 중반까지 태화강은 예전 대구의 신천처럼 5급수 ‘죽음의 강’이었다.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한다. 이를 본 시민들이 ‘상록수’처럼 궐기했다. 태화강에서 수영대회를 할 정도로 정화하자고 결의한다. 결국 2006년 전국 대도시 관통 하천 중 최고 수질을 갖게 된다. 태화강의 최고 전망대인 ‘태화루’에 올라본다. 갑자기 태화강 찬가를 대신 불러주고 싶다. 바로 ‘울산 그린투어리즘’의 시발점이 된 천하명품 ‘십리대숲’ 때문. 그 대숲은 옛 삼호교에서 용금소까지 4.3㎞ 구간을 누에처럼 기어가고 있다.

태화강 기적. 그 기운을 ‘간절곶(艮絶串)’이 품는다. 그동안 한국 일출 1번지는 ‘묻지마 포항 호미곶’. 그런데 2000년 간절곶으로 돌변한다. 국립천문대와 새천년준비위원회가 실측해 본 결과다. ‘2000년 1월1일 오전 7시31분26초’ 새천년의 해가 가장 먼저 떠오른 장소가 간절곶이라고 공표한다. 간절곶은 호미곶 특수를 앞지른다.

멀리서 보라. 태화강의 풍광이 ‘전원적’이라면 간절곶은 ‘이국적’이다. 태화강이 ‘양복바지’라면 간절곶은 ‘판탈롱바지’ 같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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