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의 역습 ‘알바 추노’

  • 서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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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7-26   |  발행일 2016-07-26 제8면   |  수정 2016-07-26
일부업주 갑질에 반발 심리로
근무시간 앞두고 갑자기 관둬
알바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
대학생 채용기피 되레 역효과

대구시 동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모씨(51)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새벽에 일을 하기로 한 아르바이트생이 출근 시간을 1시간가량 앞두고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온 것. 당황한 정씨는 수차례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더 이상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른 알바생에게 추가 근무를 시킬 수 없었던 정씨는 어쩔 수 없이 본인이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정씨는 “일이 힘들면 업주와 상의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데도 요즘 젊은이들은 조건이나 일이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그만둔다”며 “업주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잠적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걸로 안다”고 토로했다.

최근 ‘을(乙)의 복수’라 일컫는 ‘알바 추노(推奴)’ 현상이 인터넷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원래 ‘추노’는 조선시대에 달아난 종을 찾아오는 것을 뜻하지만 알바생 사이에선 근무 시간에 갑자기 나타나지 않거나 말없이 사라질 때 쓰인다. 알바 추노는 2012년 국립국어원에도 신조어로 등록됐다.

특히 최근에는 업주(甲)에 대한 보복성 행위로 변질되고 있어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실제로 한 인터넷 카페에는 알바 추노에 대한 무용담(?)과 ‘알바 추노 하는 법’ ‘업주 골탕 먹이는 법’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선 ‘방학을 하고 편의점 알바를 구하려고 하니 3개월 이상 근무 조건이 있어 알바를 구할 수 없다’라는 글에 ‘길게 한다고 말하고 개학할 때쯤 추노하라’는 답글이 당연하다는 듯 달렸다.

남구에서 만난 이모씨(여·26)는 “지난해 계명대 부근에 위치한 술집에서 알바를 했는데 갑자기 야간 근무와 다른 일을 시켰다”며 “이건 아니다 싶어 바로 그만뒀다”고 말했다.

알바추노가 유행처럼 번지는 데는 그간 일부 업주들의 횡포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갑자기 해고를 통보하거나 부당한 일을 시키는 일이 그만큼 비일비재했다는 것.

하지만 추노 현상 때문에 애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고 있어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추노족으로 인해 편의점 업주 등이 대학생 고용을 꺼리거나 기존 알바생의 근무시간이 두 배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소방공무원 준비생인 이모씨(26·달서구)는 “학교를 휴학한 상태에서 편의점 알바를 구하려 했지만 업주들이 대학생이란 이유로 채용을 하지 않았다”며 “일부 몰지각한 추노족 때문에 선량한 알바생들이 피해를 본다”고 했다.

대학생 곽모씨(여·25)는 2013년 동성로 빵집에서 알바를 했는데 새롭게 일하기로 한 학생이 갑자기 전화도 안 받고 나오지 않아 2주간 주말, 오전, 오후 근무를 혼자 했다”며 “그들도 본인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바노조 대구지부 김재훈 사무국장은 “알바생들의 추노 현상은 그간 일부 업주들에게 받은 부당행위에 대한 부작용으로 해석된다”며 “하지만 이런 방법을 SNS에 공유하고 자랑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바 추노(推奴)= 편의점 등의 아르바이트생이 근무시간인데도 갑자기 나타나지 않거나 말없이 그만두는 것을 뜻한다. 2012년 국립국어원에 신조어로 등록됐다. 알바 일이 생각보다 힘들거나 업주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 보복성 차원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서정혁기자 seo1900@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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