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이렇게 다를수가” 관공서 주변 식당 ‘썰물’…젊은 직원들은 편의점서 도시락·라면으로 점심 해결

  • 사회부,장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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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9 07:13  |  수정 2016-09-29 07:13  |  발행일 2016-09-29 제3면
■ 대구·경북 김영란법 첫날 표정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대구·경북지역 공공기관 주변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하루 전날만 해도 관공서 주변 식당엔 손님들로 북적였지만, 법 시행 이후 손님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공공기관의 구내식당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김영란법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를 살펴봤다.

▨ 대구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점심시간을 앞두고 대구 북구 산격동 대구시청 별관(옛 경북도청) 내 구내식당이 북적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식당에 마련된 자리(288석)는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가득찼다. 대기줄이 길게 이어지자 먼저 식사를 시작한 이들은 눈치를 보며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구내식당 뒤편 산책로에서도 진풍경이 연출됐다. 삼삼오오 모인 직원들 대부분이 김영란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대화의 주요 내용은 법의 시행 이유 및 취지와 ‘3·5·10’ 규정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대부분 “아직 판례나 가이드라인이 정확하지 않으니,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하지 말아야 한다”였다.

시청 별관 이전으로 상권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감에 한껏 부푼 주변 식당 상인들은 울상이다. 별관 인근에서 중국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여·51)는 “이 정도로 (매출이) 차이 날 줄은 몰랐다. 어제만 해도 이렇게 적지 않았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약까지 줄어 음식점 긴한숨
지자체선 축제 만찬 취소하기도
“의심 살만한 행동은 하지말자”
공직자들 법 취지 등 놓고 대화



같은 시각 대구 달서구 대곡동 정부대구청사도 상황은 비슷했다. 대구청사엔 대구지방보훈청 등 10개 국가 행정기관 소속 국가직 공무원 800여명이 근무 중이다. 이날 점심시간 때 구내식당을 찾은 인원은 300여명으로 평소 인원을 웃돌았다. 식당은 부랴부랴 추가 반찬까지 준비해야 했다.

11개 공공기관 3천여명의 직원이 상주하는 대구 동구 신서동 혁신도시 일대 식당가도 직격탄을 맞았다. 이날 한국정보화진흥원 주변 주상복합 상가에 입주한 음식점엔 낮 12시가 넘어서 손님이 하나둘씩 모습을 나타냈다. 구내식당이 이미 꽉 차 기다리다 지친 직원들이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청사 밖으로 나온 것. 음식값은 대부분 ‘더치페이(n분의 1)’로 지불했다. 일부는 식사를 마친 후 1명이 카드로 결제한 뒤 그 자리에서 현금을 결제자에게 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혁신도시 주변 한 편의점에는 즉석 도시락이나 라면 등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았다. 대부분 20~30대 젊은 층이었다. 이들은 각자 도시락이나 컵라면 등을 구매한 후 편의점 내·외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해결했다.

▨ 경북

“‘김영란법’이오, 식당 문 닫으라는 법인 것 같습니다.”

경북도청 인근 안동과 예천지역 식당가도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었다. 매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과 직장인의 발길이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이날 점심시간에 찾아간 예천읍 중심가는 한산한 모습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주차전쟁을 방불케 했던 현상과는 사뭇 대조적이었다. 한 음식점 주인은 “김영란법이 이렇게까지 영업에 지장을 주는 법인지 몰랐다. 평소보다 예약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음식점 업주는 “일부 부서의 공무원은 법 시행 며칠 전 방문해 문제의 소지를 없앤다며 거래장부의 외상값을 결제하고 갔다”면서 “김영란법은 부서의 회식문화도 변화시키는 것 같다”고 소개했다.

풍산지역 한우식당의 상황은 좀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고깃집 주인은 “명절 특수에 이어 송이가 나오는 요즘이 수요가 많은 시기인데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문을 닫든가 아니면 ‘김영란 메뉴’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예약자 명단을 보여주며 “평소 같으면 어느 정도 예약이 차 있었을텐데 오늘은 아예 없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도청을 비롯한 구내식당을 갖춘 기관들은 평소보다 늘어난 직원들로 북적였다. 경북도의 한 공무원은 “예전에는 동료직원과 식사자리를 종종 가졌는데 오늘부터 서로 자제하자고 얘기했다”면서 “공직자로서 당분간은 아예 의심 살 만한 자리는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법 시행 초기인 데다 어떤 것이 잘못된 행동인지에 대한 개념이 모호한 점이 있다 보니 조금이라도 의심을 살 만한 일은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덧붙였다.

가을축제를 준비 중인 지자체들도 고민에 빠졌다. 봉화군은 송이축제 환영 만찬을 계획했다 돌연 취소했으며, 안동시는 탈춤축제페스티벌 축하연을 1인당 3만원 이하로 낮춰 잡았다.

사회부·장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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