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0] 외로운 영혼 세상 사람이 두렵네요- 최치원과 두 소녀(下)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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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1   |  발행일 2016-12-01 제27면   |  수정 2016-12-01
밤비에 새잎나거든
삶과 죽음의 길 다르기에…하룻밤 꿈같은 사랑 뒤엔 애끓는 이별
20161201
중국 양저우 최치원기념관에 있는 최치원상.

쌍녀와 헤어진 후 귀국한 孤雲
풍월 읊조리며 유유자적한 삶
말년에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
경론 탐구하며 지내다 세상 떠


최치원이 화답하여 시를 지었다.

‘오백 년 만에 처음으로 어진 사람 만나서(五百年來始遇賢)/ 오늘 밤 그대들과 함께한 잠자리 즐거우니(且歡今夜得雙眠)/ 꽃다운 그대들 나와 친한 것을 괘념치 마오(芳心莫怪親狂客)/ 봄바람에 귀양 온 신선이라 여기시길(曾向春風占謫仙)’

잠시 후 달이 지고 닭이 울자, 두 여자가 모두 놀라며 최치원에게 말했다.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이별은 길고 만남은 짧지요. 이것은 인간세상에서 귀천을 떠나 모두 애달파하는 일인데, 하물며 삶과 죽음의 길이 달라 늘 대낮을 부끄러워하고 좋은 시절 헛되이 보낸 저희들이야! 다만 하룻밤의 즐거움을 누린 것으로 이제부터 천년의 길고 긴 한을 품게 되는군요. 처음에 동침의 행운을 기뻐했는데, 갑자기 기약 없는 이별을 맞게 되어 탄식할 뿐입니다.”

두 여인이 각각 시를 주었다.

‘북두칠성이 한 바퀴 돌고 물시계 물도 다해(星斗初回更漏)/ 하직 인사를 하려니 눈물이 흐르는구나(欲言離緖淚欄干)/ 이제 천년의 한을 맺었으니(從玆便結千年恨)/ 밤중의 그 기쁨을 찾을 기약 없구나(無計重尋五夜歡)’

‘지는 달빛 창에 비치자 붉은 뺨 차가워지고(斜月照窓紅瞼冷)/ 새벽바람에 옷깃 나부끼니 비취 눈썹 찌푸리네(曉風飄袖翠眉)/ 그대와 이별하는 걸음걸음 애간장 끊어지고(辭君步步偏腸斷)/ 비 뿌리고 구름 돌아가니 꿈속에 다시 들기 어려워라(雨散雲歸入夢難)’

최치원은 시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두 여인이 최치원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다른 날 이곳을 다시 지나가게 되신다면 황폐한 무덤을 다듬어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곧 바람같이 사라졌다.



◆꿈속 사랑 다음날 최치원이 남긴 시

다음 날 아침 최치원은 무덤가로 가서 쓸쓸히 거닐면서 읊조렸다. 깊이 탄식하고 긴 시를 지어 자신을 위로하였다.

‘풀 우거지고 먼지 덮인 캄캄한 두 여인의 무덤/ 옛날부터 이름난 유적인 줄 그 누가 들었으리/ 넓은 들판에 변함없이 떠있는 달빛만 애달프고/ 속절없이 무산(巫山)에 두어 조각 구름만 떠있네//

뛰어난 재주 지닌 내가 먼 지방의 관리 되어 한스럽더니/ 우연히 외로운 초현관에 왔다가 깊숙한 곳의 쌍녀분 찾았네/ 장난으로 시 구절을 석문(石門)에다 썼더니/ 감동한 선녀들 깊은 밤에 찾아왔네//

빨간 저고리의 여인과 자주색 치마의 여인/ 앉아 있으니 난초향기 사향향기 스며드네/ 비취 눈썹 붉은 뺨 모두 세속을 벗어났고/ 마시는 모습과 시 읊는 정취도 뛰어나네//

지고 남은 꽃 마주하여 향기로운 술잔 기울이고/ 짝 맞춰 추는 묘한 춤에 섬섬옥수 드러나네/ 미친 듯한 마음은 어지러워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꽃다운 뜻 허락할지 시험해 보았다네//

미인들은 얼굴을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반쯤은 웃는 듯 반쯤은 우는 듯/ 낯이 익자 자연히 마음은 불같이 타오르고/ 붉은 뺨은 진흙처럼 취한 듯하네//

아름다운 노래 부르며 기쁨 함께 누리니/ 이 아름다운 밤 좋은 만남은 전생이 미리 정한 것인가/ 잠시 사녀(謝女)가 청담을 나누는 것 듣고/ 또한 반희(班姬)가 고운 노래 읊는 것 보았도다//

정은 깊어지고 뜻이 가까워져 친하길 바랐으니/ 정녕 복사꽃 자두꽃 피는 시절이라/ 밝은 달빛은 금침(衾枕)의 정 배로 더하고/ 향기로운 바람은 비단 같은 몸에 불어오네//

비단 같은 몸 금침 속의 간절한 생각이여/ 그윽한 즐거움 다하기도 전에 이별의 슬픔에 이르렀네/ 몇 가락 노래는 외로운 혼 끊어 놓을 듯하고/ 가물거리는 등잔불 두 줄기 눈물 비추는구나//

새벽하늘 난새와 학(鸞鶴)은 각각 동서로 흩어지고/ 홀로 앉아 생각하니 꿈속인 듯하여라/ 곰곰이 생각하니 꿈인 듯하나 꿈 아니라/ 시름 속 푸른 하늘 흘러가는 아침 구름 쳐다보네//

말은 길게 울며 가야 할 길 바라보는데/ 얼빠진 이 사람은 오히려 다시 버려진 무덤 찾았네/ 비단버선발로 꽃 먼지 밟고 오는 것 보지 못하고/ 다만 꽃나무 가지에 맺혀있는 눈물 같은 아침이슬만 보았네//

애간장 끊어질 듯해 머리 돌려 바라보나/ 적막한 무덤을 누가 열어주랴/ 고삐 놓고 바라보니 끝없이 눈물만 흐르고/ 채찍 드리우고 시 읊던 곳 슬픔만 남았어라//

따스한 봄바람 부는 늦은 봄날에/ 버들꽃만 어지러이 바람에 흩날리네/ 늘 나그네 시름으로 화창한 봄날 원망하는데/ 하물며 이별의 정으로 꽃다운 그대를 그리워함에야//

인간 세상의 일 중 수심은 사람 잡는 것/ 멋진 길 들어섰나 싶었는데 또다시 미로를 만나네/ 풀 더미에 묻힌 동대(銅臺) 천년의 한이요/ 꽃 피던 금곡(金谷)은 하루아침의 짧은 봄이로다//

완조(阮肇)와 유신(劉晨)은 그저 보통 인물이고/ 진황제(秦皇帝)와 한무제(漢武帝)도 신선이 아니었지/ 그때 아름다운 만남 아득하여 쫓지 못하고/ 후대에 남긴 이름 다만 슬퍼할 뿐//

아득히 왔다가 홀연히 가버리니/ 비바람은 언제나 덧없음을 알겠네/ 내가 여기서 두 여인 만난 것은/ 옛날 양왕(襄王)이 무산(巫山)의 선녀를 꿈꾼 것과 같구나//

대장부여 대장부여!/ 씩씩한 기운으로 아녀자의 한 풀어준 것뿐이니/ 요사스러운 여우의 일 연연해하지 마세.’

나중에 최치원은 과거에 급제하고 고국으로 돌아오다 길에서 시를 읊었다.

‘뜬구름 같은 세상의 영화는 꿈속의 꿈이니(浮世榮華夢中夢)/ 흰 구름 깊은 곳에서 이 한 몸 편히 쉬고 싶어라(白雲深處好安身)’

곧 물러나서 아예 속세를 떠나 산과 강에 묻힌 스님을 찾아가 작은 서재를 짓고 석대(石臺)를 쌓아 옛글을 탐독하고 풍월을 읊조리며 그 사이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았다. 남산(南山)의 청량사(淸凉寺), 합포현(合浦縣)의 월영대(月影臺), 지리산의 쌍계사(雙溪寺), 석남사(石南寺), 묵천석대(墨泉石臺)에 모란을 심은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니, 모두 그가 떠돌아다닌 흔적이다. 최후에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여 그 형인 현준(賢俊) 스님 및 스승 정현(定玄) 스님과 함께 경론을 탐구하며, 마음은 맑고 아득한 데 노닐다가 세상을 마쳤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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