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아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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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15   |  발행일 2016-12-15 제34면   |  수정 2016-12-15
20161215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현실의 벽에 막힌 젊은이든
하고싶은 일 이룬 노년이든
내년에는 모든 여성들이
지금보다는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 누릴 수 있기를


다사다난했던 2016년이 가고 있다. 연말이면 상투적으로 ‘다사다난’이란 단어를 쓰게 되지만 올해는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격동의 한 해였다. 돌이켜보면 올해도 다양한 현장에서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장면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해 보고자 한다.

# 1. 뿌리염색은 이제 그만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가진 세대라지만 ‘N포세대’로도 불리는 청년들.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결국은 무언가를 하나씩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젠더적 관점에서 본 최저임금 토론회’에 나왔던 청년여성 대표는 현재 6천30원인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된다면 삶이 어떻게 바뀔지를 청년들에게 물어보니 “뿌리염색이 아니라 전체염색을 하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 등의 소박한 바람이 대부분이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런 소소한 희망도 있지만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빚부터 갚겠다는 것이 1순위였다는 결과도 들려준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학자금 대출로 빚을 안고 시작하는 많은 청년들에게 아르바이트는 생계형일 수밖에 없고, 매년 조정되는 최저임금이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 2. 하늘에서 똑 떨어져뿌라

‘이주여성 안전망구축 세미나’에서 만난 캄보디아 출신 결혼이주여성. 2007년 결혼해서 대구에 왔고 지금은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통역을 담당하며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오기 전에는 한국 드라마에서 처럼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한국은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지 않는 나라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한국에 오니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는 인식이 너무 심했고 여성을 동등한 배우자로 대접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기 아이를 낳아주는 사람, 집안일을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녀의 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남자가 하늘이라면 그냥 하늘에서 혼자 살든지, 아님 하늘에서 똑 떨어져뿌라”였다. 대구사투리가 배어있는 그녀의 말에 청중 모두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결혼이주여성으로서 그녀의 희망사항은 가족 유지를 위한 상담에만 그치지 말고 이주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도 기울여 달라는 당부였다.

# 3. 하니까 되더라고요

중구 근대골목에는 대구사람이면 알 만한 오랜 역사를 지닌 다방이 있다. 대구여성가족재단에서 운영하는 ‘사람도서관- 사람책’이라는 인연으로 다방 주인장을 만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대구로 나왔다가 처음 취직한 곳이 다방에서 카운터 보는 일이었고, 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40년 넘게 다방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돈은 벌었지만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고등학생 3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대리만족만 해오다 환갑이 되던 해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면서 단 한 번의 결석도 하지 않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고 한다. 그녀가 들려준 비결은 “하니까 되더라고요”였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의 고수들을 만난다. 그들이 경험한 세상은 그들이 처한 위치와 세대에 따라 각기 다르지만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한 해 열두 달을 표현하는 인디언 달력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이라고 부르고 있다. 짐작컨대 한 해를 매듭짓는 마지막 달이지만 마음은 이미 새로운 기대를 품고 다음 해로 넘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년에는 여성들이 지금보다 좀 더 편안하고 자유롭게 삶을 누릴 수 있길 기원하며 새해를 맞아볼 일이다. 아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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