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여행 속에서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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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3 08:07  |  수정 2017-01-23 08:07  |  발행일 2017-01-23 제13면
[행복한 교육] 여행 속에서 놀기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오늘 뜨는 해가 어제의 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보는 해는 어제와 다른 이름의 해임은 분명하다. 새해는 이름으로 새로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새해가 되면 새 다짐을 하고, 새로운 키워드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새해 같은 느낌이 적다. 작년에 시작된 정치적 사건이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새로운 비전도 제대로 제시되지 않아 묵은해는 아니지만 아직 새해는 아닌 그런 느낌이다. 마치 해는 바뀌었지만 설을 쇠지 않아 여전히 묵은해로 느껴지는 1월의 애매모호함 같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도 작년은 참 바쁘고 정신없었다. 바쁘다고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종종 바쁨의 중심이 허허롭다는 느낌을 가졌다. 그러다 김광석 전시회를 구경하며 약간 충격을 받았다. 아주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 앞에서 아무런 감성도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방학이 되면 무얼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선생님이 “저는 이미 놀 계획으로 꽉 차 있어요. 같이 놀자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네요”라며 자랑을 한다. 그때 나는 조금 우울한 목소리로 “나는 놀자고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분이 어깨를 치며 웃는다. “샘은 왠지 같이 놀 사람이라기보다는 같이 일할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 말은 제법 자극적이었다.

나는 일하는 것을 노는 것처럼 즐기는 사람이다. 아니,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에서 더 재미를 느낀다. 살아온 패턴일 뿐이다. 그런데 문득 ‘잘 일하는’ 부류에서 ‘잘 노는’ 부류로 옮겨타고 싶은 마음이 확 일어났다. 아니, 예전부터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꾸준히 안달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일들은 여행을 해야 하는 핑계가 충분히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여행을 한다.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을 찾고 싶고, 답답함을 벗어나고 싶고, 잘 노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여행을 한다. 낯선 도시에서 마치 삶에 낯선 사람처럼 약간 머뭇거리며 두리번거리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낮게 환호하고, 두 다리에 옮겨오는 퍽퍽한 피로를 즐기고 있다. 무겁게 지고 다닐 염치와 분수가 없는 사람처럼 하루에 한 번은 안 해본 것을 시도한다. 바쁘고 힘들어서 놀지 못할 인생이 어디 있으리. ‘잘 못 노는’ 삶도 사실은 내가 고르고 고른 길이었고, 또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만큼의 능력과 체력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있어서라는 이유를 찾아가며, 무엇 하나 꼬집어 흉을 볼 것이 없는 나를 자칫 위로도 해 가며 여행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남들이 자는 새벽의 어스름에 혼자 서성거리고 있다. 오늘 뜨는 해는 그냥 해가 아니라 로마의 해다. 로마의 해가 대구의 해와 다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로마의 해는 새 이름으로 만나는 새것이다. 신정과 설날의 중간쯤에 서서, 묵은 것과 새것의 경계에 서서,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주는 설렘과 긴장을 즐기며,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도 잘 놀고 다녀야지. 여행을 해야 하는 핑계를 삶에서 찾은 것처럼 아마 나는 삶의 핑계를 이번 여행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어떠리. 나는 여행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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