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싱크대를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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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9   |  발행일 2017-02-09 제30면   |  수정 2017-02-09
20170209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男은 바깥일, 女는 집안일’
고정관념부터 일단 벗자
남성체형 맞는 싱크대 등
기술적 부분도 개선하면
남성 가사참여 늘어날 것


우리 재단에는 대구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일가정양립지원센터가 있다. 이 센터의 총괄실장을 맡고 있는 이는 남성이다. 그런데 직장 교육이나 가족친화인증을 위한 기업 컨설팅을 나갈 경우 남성이라는 특성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많은 직장 남성이 그의 말에 자기 얘기처럼 공감하며 마음의 문을 여는 듯하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그는 가정생활에서도 일가정양립을 잘 실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명절 때마다 여성들이 경험하는 명절증후군을 본인이 겪기도 한다. 강원도에 있는 본가까지 운전해서 다녀오고, 명절 음식 장만하고, 연휴 내 가족들과 함께할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하는 것들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물론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즐기면서 한다. 지난해 추석 연휴를 마치고 왔을 때에는 어찌나 노력봉사를 했던지 입술이 심하게 부풀고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평소에도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SNS에 올리곤 해 많은 여성들로부터는 칭찬이, 남성들로부터는 원성이 자자한 그다.

최근 먹방, 쿡방이 인기를 끌고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이니 하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위 사례처럼 직접 요리를 하거나 요리를 배우는 남성이 많아졌다. 원로 남자 교수님 한분은 남성들이 요리를 못하는 것은 장애나 다름없으며 남자들도 자신이 생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리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다소 쎈(?) 주장을 펼치곤 한다.

만약 이렇게만 된다면 곰국 끓이는 아내가 가장 무섭다고 하는 유머는 더 이상 우스개가 되지 않을 터이다. 지금까지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멀리 여행 간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왔다. 남편은 곰국에 밥 말아먹으며 아내 올 때만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가사활동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개선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사무실에 수도와 직접 연결된 정수기가 많이 보급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생수통을 꽂아 넣는 생수통(20ℓ) 정수기가 많았다. 여자 혼자서는 들어올리기 힘든 무게라 남자 직원이 없는 사무실은 물이 떨어지면 생수통 가는 일이 큰일이었다. 이를 해결한 것이 11ℓ짜리 절반 무게 생수통의 등장이다. 남녀 누구라도 어려움 없이 생수통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남성의 가사참여도 이런 기술적 개선을 통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보통 가정마다 설치되어 있는 싱크대 높이는 대부분 한국 여성 평균 키에 맞춰져 있다. 따라서 키가 큰 남성들이 사용할 경우 허리를 앞으로 많이 숙여야 해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주방 일을 자주 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싱크대가 낮아 허리와 등이 너무 아프다는 고충을 많이 토로한다. 요즘에는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싱크대가 나와 있긴 하지만 고가여서 대중화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상적인 싱크대 높이는 자기 키의 절반 높이에다 5㎝를 더한 수치라고 한다(키높이X0.5+5㎝). 2014년 현재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키가 174.9㎝, 여성의 평균 키가 162.3㎝이니 이상적인 싱크대 높이는 남녀 각각 92.4㎝, 86.1㎝이다. 남녀 간에 6㎝ 정도의 간극이 생기는 셈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싱크대 높이를 4~5㎝ 정도 높이고 대신 여성의 키높이를 감안한 이동식 발판을 깔아 여성이 싱크대를 사용할 때는 발판을 활용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녀가 같이 가사 및 육아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받고 이를 개선하는 일을 시작해보자. 이때 한 가지 명심할 것은 기술적 개선에 앞서 전제되어야 할 것이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성별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연애시절 펑크 난 타이어 교체도 뚝딱 해내던 친구 남편이 결혼 후 버튼 몇 개만 누르면 작동되는 세탁기가 무섭고 어렵다며 빨래를 못하겠다고 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가사를 피하려는 비겁한 핑계는 아닌지.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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