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쓸모없음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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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20 07:34  |  수정 2017-02-20 07:34  |  발행일 2017-02-20 제15면
[행복한 교육] 쓸모없음의 쓸모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대구학생문화센터에서 열린 연주회에 갔다. 아침부터 날 선 날씨에 머플러와 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핫팩도 준비해서 갔다. 칼바람 속에서 한참을 기다리다 공연 관계자들의 안내로 차곡차곡 객석에 앉았다. 나는 제일 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드디어 70여명이 넘는 관악단원들이 자리를 잡고 지휘자의 손끝으로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첫 곡은 주페(F. Suppe)의 ‘경기병 서곡(Light Cavalry Overture)’이다. 관악단의 장엄하고 웅장한 소리가 학생문화센터를 가득 메우자 수런거리던 관객석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연주자들의 손놀림과 미세한 다리 떨림, 여러 악기가 내품는 소리의 향연에 몸이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리듬을 따라 흔들린다.

저 무대 위에서 트럼펫, 플루트, 색소폰을 능숙하게 다루는 연주자들은 모두 대구공고 학생들이다. 저 학생 대다수가 고등학교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 번도 악기 연주를 해 본 적이 없다. 악보 보는 실력은커녕 클래식에 대한 상식조차 거의 없던 학생들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하나하나 음계를 배우고, 연주법과 호흡법을 배우고, 마디마디 한 음 한 음 익혔다. 악보를 제대로 볼 줄 모르는 학생은 아예 귀로 음을 외워버린다. 그렇게 일 년 내내 악기와 씨름을 했다. 방학 동안 밤늦도록 함께 호흡을 맞춘 학생들이 만들어내는 감동적인 연주에 나는 가슴이 저릿해왔다. 저 애들 좀 보라고, 저렇게 멋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그득그득해졌다.

“호흡이 중요한데요, 고르고 긴 소리를 내기 위해 얇은 종이를 입술 가까이 대고 일정하게 숨을 내쉬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악기 연주에는 젬병인 나에게 클라리넷 연주법을 시범보이며 한 학생이 설명을 한다. 클라리넷을 쥔 손이 큼지막하고 마디마다 두툼하다. “악기 연주를 하면요.” 학생은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말했다.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실습실에서는 밀링 기계를 돌리고, 파란 불빛으로 용접하던 큼지막한 손이 얇고 긴 악기 위에 다소곳하게 놓여 있다. 따스하고 힘 찬 손이었다.

관악부 학생 중 일부는 음악대학으로 진학하여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간다. 하지만 대부분은 취업을 한다. 졸업해서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고 건설 현장에서 거친 일을 해야 하는 공고생들의 악기 연주는 어찌 보면 참 ‘쓸데없는 짓거리’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공돌이가 그걸 배워 어디에 써 먹나’라는 말을 쉽게들 툭툭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70여명의 단원이 밀고 당기며 주고받는 차이콥스키의 ‘지나친 편곡(Extreme Make-over)’을 들으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 것의 대단함을 생각한다.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워 우수한 성적임에도 특성화고로 진학한 학생이 잔잔하게 길어 올리는 오보에 소리를 들으며 여백의 교육을 생각한다. 두툼하고 큰 손으로 감싼 금속 악기에서 퍼져 나오는 아름다운 화음을 들으며 아름다운 쓸모없음을 생각한다. 비어 있을 때라야만 무언가 담을 수 있다는 노자의 ‘빈 그릇’을 생각해 본다. 이금희 <대구공고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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