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7-03-09   |  발행일 2017-03-09 제30면   |  수정 2017-03-09
20170309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흑인 여성 노예 소저너는
160여 년 전 여성 운동이
인간 자유에 대한 것이고
모든 차별 받는 사람들의
권리회복 운동임을 웅변


1851년 미국 오하이오주 애크런에서 열린 여성인권대회장. 큰 키에 마른 체격을 지닌 흑인 여성 한 명이 하얀 터번을 두른 머리를 곧게 세운 채 통로를 걸어 들어와 연단에 올랐다.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지닌 그의 연설은 폭도와 같이 흥분한 군중의 비웃음과 조소를 곧 존중과 감탄으로 바꾸어 놓게 된다. 여성운동을 넘어 인권운동사에 길이 남을 그날 명연설의 내용을 들어보자.

“저기 저 남자분이 말하는군요. 여성은 탈 것으로 모셔드려야 하고, 도랑은 안아서 건너드려야 하고, 어디에서나 제일 좋은 자리를 드려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내게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나는 탈것으로 모셔진 적도, 흙구덩이를 지날 때 도움을 받은 적도, 어떤 좋은 자리를 권유받아본 적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나를 보십시오! 내 팔을 보십시오! 나는 땅을 갈고, 곡식을 심고, 수확을 해왔습니다. 어떤 남자도 나를 앞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나는 남자만큼 일할 수 있었고 먹을 수 있을 땐 남자만큼 먹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만큼이나 채찍질을 견뎌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닙니까? 저는 아이 열세 명을 낳았고 그 아이들 모두 노예로 팔리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제가 어미의 슬픔으로 울부짖을 때 그리스도 말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니란 말입니까?(중략) 저기 검은 옷을 입은 키 작은 남자분이 말하는군요. 여자는 남자만큼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여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랍니다. 당신들의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습니까? 어디서 왔느냐고 묻습니다. 신과 여자로부터 오지 않았습니까? 남자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신이 만든 최초의 여자 혼자서,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만큼 강했다면 이 여성들이 함께 세상을 다시 올바른 방향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성들은 그렇게 할 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남성들은 우리 여성들이 그렇게 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내 말을 들으십시오. 이제 이 늙은 소저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소저너 트루스(Sojourner Truth). 1797년경 뉴욕 근방에서 노예로 태어나 네 번이나 팔려 다녔고, 1826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주겠다는 주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갓난쟁이 딸을 안고 스스로 탈출하게 된다. 그리고 20년 후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소저너 트루스라는 이름으로 대중 앞에 나타나 여성인권과 노예해방 그리고 인간의 자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다. 1850년대 말 노예해방에 반대하는 청중이 그녀를 향해 남자일 거라고 야유를 보내자 즉석에서 자신의 윗옷을 풀고 검은 젖가슴을 열어젖히며 “댁들도 내 젖을 먹고 싶으시오?”라고 내뱉어 반대론자들의 입을 명쾌하게 막아버렸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었던 노예였고, 흑인이고, 여성인 소저너는 비록 읽고 쓰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신념을 감동적인 연설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자 애썼다. 특히 초기 여성운동이 교육받은 백인 중산층 여성들의 부르주아 운동에 머물러 있을 때, 여성운동이 백인이라는 특정계층의 여성과 남성 간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자유에 관한 문제이고 인간에 대한 모든 차별에 저항하는 일이라는 점을 명확히 부각시킨 것이다.

어제는 109주년 ‘3·8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같은 대한민국 안에서도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신계급론이 회자되고 있고, 같은 여성노동자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는 하늘과 땅만큼의 간극을 지닌 것이 현실이다. 160여 년 전 소저너 트루스의 일갈은 오늘날 페미니즘 운동이 여성만의 권리운동이 아니라 같은 여성 안에서도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 그리고 나아가 모든 차별받는 사람들의 권리 회복운동이어야 한다는 것에 영감을 불어넣어준다. 세계 여성의 날을 보내면서 소저너 트루스의 연설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볼 일이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