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안동 최옥자 천연염색 쪽 명장

  • 이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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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9 07:23  |  수정 2017-04-29 07:24  |  발행일 2017-04-29 제8면
옛 방법 사용해 모든 색 뽑는 ‘세계 유일 천연염색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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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자 명장이 쪽으로 염색한 안동포의 염색상태를 꼼꼼하게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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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700리 초입인 안동댐에서 부산까지 맑은 물을 내려보내고 싶은 염원으로 천연염색을 탐구하게 됐고, 그것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습니다.”

지난 20일 안동댐 월영교 인근 안동전통천연염색전시관에서 만난 천연염색 쪽 명장 최옥자씨(70)는 천연염색을 자신의 삶과 동일시하고 있었다. 2011년 대한민국 최초로 ‘천연염색 쪽 명장’으로 선정된 후 국내는 물론 해외 각국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최 명장은 자신이 평생을 천연염색에 빠져 살게 된 사연을 하나하나 들려줬다.

그는 “1982년 부산에서 일본의 다도(茶道) 문중(門中)과 교류회를 열었다. 이때 일본 다도회원이 입은 기모노 안감이 모두 빨간색 명주직물인 것을 보고 염색에 강한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력에 빠진 만큼 금방 결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최 명장은 “붉은색 장미꽃잎이 붉은 염색재료가 되는 줄 알고 장미꽃을 염료로 사용했다. 그런데 붉은색이 아닌 갈색이 나왔다. 상당 기간은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옛일을 떠올렸다.

천연염색에 인생을 바친 그에게 염색공단은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최 명장은 “일제시대 양잿물(가성소다)을 사용하는 염색이 화학염색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무방비로 합성염료를 사용하는 염색공단이 이곳저곳에 들어섰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2011년 국내 최초 염색명장 선정
美·英 등서 20여회 개인전 개최
천연염색 전문지도 중요성 강조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20여회에 걸쳐 전시회를 가진 최 명장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2003년 뉴욕 맨해튼 한국문화원갤러리에서 한달 동안 연 개인전과 2007년 영국 런던 아트스페이스갤러리에서 열흘 동안 마련한 개인전이다. 당시 박물관 큐레이터들은 최 명장의 작품에 감격했다고 한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에는 천연염색 기술자가 없었기에 최 명장의 천연염색은 그들에게 신세계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일본에는 천연염색을 하는 곳이 몇 곳 있지만 재배·염료·매염제·발효염색·작품 등 세부적으로 기술자가 나눠져 있고 분야마다 장인이 따로 있다. 화학적 방법을 전혀 쓰지 않고 천연염료인 홍화와 쪽을 옛 방법 그대로 사용해 직물에 모든 색(무지개 색)을 염착시킬 수 있는 기능인이 지구상에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최 명장은 큰 자부심을 가졌다.

20여년 전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일제시대 사용하던 화학매염제의 혼합염색이 자치단체마다 여성교육 프로그램으로 우후죽순 개설됐다. 강은 무방비로 오염되고 토양은 파괴됐다. 화학염료가 가정집 싱크대에서 버려지고, 일부에서는 ‘자연염색’으로 둔갑한 상품이 시장 곳곳을 휩쓸면서 소비자를 현혹했다.

최 명장은 “그때 나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국가가 인정하는 라이선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그래서 최 명장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명장 신청을 했다. 하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이 분야를 전혀 몰랐던 것. 최 명장의 안타까움은 계속됐다. “전문성이 부족한 행정가나 기관에서는 아예 전통 천연염색 문화나 기술에 접근하기를 꺼려한다. 전통의 기술까지도 학연·지연에 사활을 걸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신라·고려·조선에서는 염색을 담당하는 기관이 있었고 전문가를 그 분야에 고용하도록 했는데 지금의 행정은 그림자만 있을 뿐 실체는 없다고 했다. 최 명장은 “천연염색은 전통의 기능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또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관계 당국의 세심한 배려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2004년부터 6년간 경북바이오연구원에 입주해 이 분야를 집중 연구했다. 그 결과 ‘쪽빛의 진실’ ‘홍화 해오름의 빛’ ‘초록빛의 신비’ ‘천상의 색 보라’ 그리고 전통으로 탄생되는 천연색과 한지에 염색하는 ‘감지의 진실’ 등을 출판했다. 또 3개 외국어 번역본 1권도 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2011년 마침내 명장으로 선정됐다.

최 명장은 “‘옥시 사건’이 났을 때 ‘올 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도 생활 곳곳에는 옥시문화가 도사리고 있다. 화학염색은 물·토양을 곧바로 오염시킨다. 우리 피부나 몸도 오염시킨다”면서 “1856년 화학염료가 나오기 이전의 염색기술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세상은 화학산업에 지쳐있다. 의·식·주 모든 일상의 삶이 천연을 갈구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연염색으로 돌아가기 위해 전문가를 키우는 일이 시급하고 행정기관이 이를 도와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천연색을 만드는 일은 고달프고 힘들다. 씨앗으로 재배하고 채취해 염료를 만들고 발효·숙성시켜 염색하고 산화·환원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 명장은 지난 31년 동안 다도를 가르치며 천연염색기술을 익히고 전파해 온 유일한 대한민국 명장이다. 그 과정에 절망감도 있었지만 성취감이 더욱 높았기에 시련을 견딜 수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는 천연염색을 선호하는 세계의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며 “천연염색은 세계의 상류층이 가장 선호하는 상품이다. 세계인이 천연 쪽빛 안동포와 화학물감의 파란색 안동포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안동 이두영기자 victory@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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