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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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3 07:51  |  수정 2017-06-13 07:51  |  발행일 2017-06-13 제25면
[문화산책] 작업실
김한규<시인>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당장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아마도 작업하는 공간, 즉 ‘작업실’이 아닐까.

그럴듯한,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서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바란다. 창작열에 불타지만 가난한 예술가들의 경우 그렇다. 나도 아직 온전한 작업실이 없어서 줄기차게 꿈으로만 그릴 뿐이다. 작품도 인정받고 경제적인 여건도 좋아서 작업실 하나쯤은 마련할 수 있는 경우는 물론 예외다.

책을 갖추어 두고 글을 읽거나 쓰는 방을 ‘서재’라고 한다. 나는 서재가 따로 없다. 그래서 한 포털사이트에서 소개하는 지식인들의 서재를 보면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언제쯤 저런 서재를 가질 수 있을까.

헌책과 새 책이 풍기는 냄새들, 분야별로 분류해서 꽂아놓은 책들, 그리고 자료들, 그 안에 들어가면 오로지 책과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그런 곳은 여전히 먼 꿈이다.

지방의 A문학관에서 하는 ‘집필실 레지던스’ 입주 작가에 선정됐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사실 고마울 따름이다. 6월부터 여섯 달 동안 입주하게 된다. 개인적인 서재는 아니지만 작업실이 제공된 것이다. 공간을 사용하는 데 거의 방해를 받지 않으므로 기간 동안에는 완전한 작업실이다. 좋은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하고 나름 작심을 한다. 작심(作心)의 작(作)이 ‘지을 작’이다.

문학관이니까 입주 작가들은 모두 글 쓰는 분들이다. 여러 장르가 모였다. 그래서 이른바 ‘문단’의 선후배 서열이 있고 중견과 신인이 있다.

어쨌든 모두 나름의 계획과 작심으로 입주했다. 그러니까 오로지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 보니 또 세상의 관계라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여기는 당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라는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 공동의 공간이 가진 성격이다.

그래도 작업실이 주어진다는 것이 어디인가. 당연히 이런 공공의 성격은 많이 제공될수록 좋다. 하지만 나라 안의 상황을 보면 썩 나아 보이지는 않는다.

‘당신이 정말 창작의 계획이 분명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충실하겠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제공하겠다’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아주 필요하지 않은데도 예산을 들여 지은 공공시설이 폐허가 되다시피 하는 곳이 많다. 그런 곳을 가난한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는 시골이고 적막하다. 월세나 사글세 방을 구하려고 전주에 붙어있는 광고지를 훑으며 다니던 때가 생각난다. ‘서재’는 아직 꿈이지만 작업은 실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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