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김복희 소백인삼사 대표

  • 김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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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7 07:15  |  수정 2017-06-17 07:15  |  발행일 2017-06-17 제8면
그녀의 시조에선 인삼향기가 난다
<이 사람이 사는 세계>
20170617
김복희 시조시인이 가게에서 시조집 ‘풍기인삼’을 들어보이고 있다.

“시조를 쓰면서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뭔가 쓰고 싶은데, 그걸 표현할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행복이에요. 인삼장사를 하면서 가장 큰 위안을 얻는 순간은 바로 작품을 쓰는 시간이거든요.” 2005년 월간 문예사조와 예술세계에서 동시 등단한 시조시인 김복희씨(59)는 오늘도 인삼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인삼 파는 아줌마’가 시인이 되기까지 그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문예사조’‘예술세계’ 등단
시조집 출간…인삼연작 애착
희귀병 앓다가 기적적 완치
“제2 인생 이웃과 함께할 것”


◆인삼과 함께 한평생

영주시 안정면 신전2리에서 가난한 집안의 3남5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난 김씨. 여고를 졸업한 후 집안을 먹여살리기 위해 직물공장에 들어가야 했던 그는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인 강성찬씨(62·소백코리아 대표)를 만났다.

“결혼 뒤 풍기역 앞에서 인삼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이야 인삼 파는 가게가 풍기지역에만 수백 군데에 달하지만 당시만 해도 서른 군데에 불과해 장사가 꽤 잘 됐습니다.”

김씨는 인삼장사가 잘되자 남편과 의논해 직접 인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김씨 부부에게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97년. 홍삼제품 생산에 대한 정부 규제가 풀린 것이다. 부부는 소백인삼영농조합을 설립하고 풍기읍 산법리에 공장을 건립했다. 직접 홍삼제품 생산에 나섰고, 자체 브랜드인 ‘소백코리아’도 갖게 됐다. 그 뒤 남편은 인삼분야 경북농업명장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슬하의 세 자녀 역시 모두 소백코리아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씨는 33년째 가게에서 인삼을 팔고 있다. 그의 컴퓨터에 내장된 고객 명단에는 무려 3만여명의 이름이 빼곡하다. 이처럼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기까지 그가 기울인 노력과 정성은 가히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녀의 손을 거쳐 고객에게 건너간 인삼만 수만 채에 달한다. 그는 어느날 인삼이 우리 삶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인삼농사도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많이 들을수록 잘되는 법이라고 했다.

“어릴 적에 너무 가난하게 살다보니 그동안 돈 버는 데만 신경쓰면서 살았죠. 어느날 문득 제 삶을 돌아보니 너무나 삭막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시조를 쓰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제게 있어서 시조는 한마디로 삶의 탈출구라고 봐야죠.”

김씨가 지금까지 쓴 시조는 수백여편. 지난달 월간 문학세계 5월호에 발표한 ‘통영바다에서’ 등 5편이 가장 최근 작품이다. 그녀는 시조집 ‘풍기인삼’(청솔시인선 101)에 실린 인삼연작시가 가장 애착이 간다고 한다. 인삼연작시를 보면 한평생 풍기인삼과 함께 살아온 김씨의 애환이 곳곳에 묻어나 있다. ‘인삼 2’에서 그녀는 독백한다.

‘그래도 풍기에 살면서/ 인삼돈 만져보려면/ 제 소유 삼포밭의/ 작황 정도는 알아야지/ 무심히/ 떠가는 구름/ 비 묻었는지 알아야지’

◆희귀병과의 싸움

한동안 행복했던 그녀에게 불행이 닥친 것은 2010년. 너무 가난한 살림에서 시작하다보니 남보다 먼저 가게 문을 열고 남보다 늦게 닫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수면 부족으로 과로가 누적되고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였다. 희귀병인 변이형협심증이 찾아왔다.

온몸이 붓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겪었다.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여러 차례. 하루에도 10여 알의 약을 먹지 않고는 견뎌내지 못하는 삶이 계속됐다. 힘든 투병 생활 중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가지 사고가 이어졌다. 소백코리아 공장에서는 화재가 발생하고, 독실한 기독교인(권사)인 그가 부지를 제공한 개척교회는 시작도 전에 목회자의 불미스러운 일로 신도들이 모두 흩어졌다. 그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는 변이형협심증이 중증으로 변하는데 한몫했다. 공장을 다시 세우고, 개척교회도 우여곡절 끝에 설립됐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기만 하단다.

그 같은 상황에서 항생제와 진통제로 버티길 6년째. 변이형협심증은 급기야 몸속에 물이 차오르는 급성심낭염으로 발전해 지난해 8월에는 다시 병원으로 실려가야 했다. 병원에서는 개복수술은 힘드니 일단 3~4주 동안 입원해서 약물치료를 계속하자고 했다. 그때 김씨는 더 이상 약을 복용하는 것은 부작용만 일으킬 거라고 판단했다. 의사에게 “나는 기도로 내 병을 고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의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고 권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김씨는 날마다 기도했다. 기적은 소리없이 찾아온다고 했던가. 항생제와 진통제를 더 이상 복용하지 않고 기도로만 버티길 3일째. 몸 안에 차 있던 물이 소변으로 2천ℓ나 빠져 나왔다. 병원에서도 그저 기적이라고만 했다. 얼마 후 그는 완치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제2의 인생이고 덤의 삶이잖아요. 인삼 파는 아줌마의 애환을 담은 인삼시조도 열심히 쓰면서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김씨의 얼굴에는 영원한 문학소녀 같은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글·사진=영주 김제덕기자 jedeo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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