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세계유산 등재 의미] 기념사업회 5년간의 노력 결실…대구시민 구국정신 인정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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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수경기자 황인무기자
  • 2017-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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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 전국 확산 최초 시민운동

中 등 외채상환운동 효시 인정

日 방해공작 막으려 동분서주

시민보고회 등 이달 중 개최키로

31일 오후 권영진 대구시장(가운데)과 신동학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상임대표(왼쪽), 김영호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위원장(전 산자부장관)이 대구시청 기자실에서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확정을 축하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황인무기자 him7942@yeongnam.com
대구 국채보상운동(1907~1910년)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전세계가 일제의 경제적 침탈에 맞서 나라 빚(1천300만원)을 대신 갚고자 분연히 일어선 대구시민의 구국정신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대구 시민들은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게 됐다. 앞으로 대구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이 시민정신을 승화시켜 세계에 제대로 알려야 하는 책무를 안게 됐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의미

국채보상운동의 역사적 의미는 남다르다. 무엇보다 대구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된 최초의 시민운동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받는다. 국내 최초의 기부문화운동이자 여성·학생·언론이 참여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1907년 2월21일 김광제 등을 중심으로 대구민의소(단연회)를 창립하면서 500원을 모금한 게 출발점이다. 남성은 금연운동을, 부녀자들은 금지옥엽 간직해온 가락지·비녀 등 패물을 쾌척했다. 아이들은 세뱃돈·심부름 값을 군말없이 건넸다. 최하류층인 대구의 기생 ‘앵무’는 100원을 내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여성계에선 국채보상운동을 최초의 조직적 근대여성운동으로 평가한다. 결과적으로 모금액은 20만원에 그쳐 목표치엔 크게 미달됐지만 그 정신은 훗날 1919년 3·1운동의 디딤돌이 됐다.

김영호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추진공동위원장은 “서문시장 상인을 비롯해 심지어 도둑·거지들도 나라 빚을 갚는데 나섰다”고 했다. 이어 “국채보상운동 당시 전체 인구가 2천만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400만명(추정치)이 참가한 것은 가히 기록적인 일”이라며 “외환위기 때 350만∼400만명이 참가한 금 모으기 운동 땐 금을 갖다주면 돈이라도 받지만 국채보상운동은 그런 게 일절 없었던 순수 기부운동이었다”고 부연했다. 이 운동은 당시 제국주의 침략을 받았던 중국·멕시코·베트남 외채상환운동의 효시가 됐다. 세계 근대사를 바꾼 단초가 된 셈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를 엄습했을 땐 그리스·스페인 등 유럽에서 경제회복 모델로 주목받았다.

◆등재 위한 눈물겨운 여정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까진 5년간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2013년 2월21일 정기이사회에서 등재추진을 결의했다. 2015년 3월 등재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그해 5월 추진위 시민보고회·발대식과 함께 전개한 범시민 서명운동엔 총 40만여명이 동참했다. 국회 토론회뿐만 아니라 서울·부산·광주·제주지역에는 전국 순회 전시회가 수차례 열렸다. 지난해 12월엔 국채보상운동 의미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국제학술세미나를 열었다. 올해 2월엔 국채보상운동 정신 계승 차원에서 대구시민주간(2월21~28일)을 처음으로 선포·운영했다.

유네스코 최종 심사와 유네스코 사무총장 최종 승인을 앞두곤 행여 일본의 방해공작이 있을 지 몰라 마음을 잔뜩 조리기도 했다. 실제 심사 막판에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등재 추진과 연계돼 일본측의 이상 조짐이 감지됐다고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전했다. 대구시 내부에서도 불똥이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등재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추진위가 유네스코 업무에 관여한 옛 자문위원, 일본 학계·시민단체를 사전에 일일이 찾아다니며 “두 가지 사안은 전혀 별개”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했다. 김영호 등재추진공동위원장은 “등재신청 서류에도 일본과의 대립관계가 부각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이번에 안되면 재수, 삼수도 생각했는데 다행히 단 한번 만에 성사됐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

대구시와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오매불망 기다려온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성사됐지만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채보상운동 정신이 대구를 넘어 전 세계인에게도 큰 울림으로 작용되도록 힘써야 하는 과제가 던져졌기 때문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 여정을 시민과 함께 되새기고,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시민보고회 및 비전발표회’를 이달 중 개최하겠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이번 등재 성사로 문재인 대통령 대선공약인 ‘국채보상운동의 세계화사업’ 일환으로 추진 중인 ‘국립 아카이브(기록보관소)’건립 사업이 한층 탄력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지하 1층~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질 전망이다. 사업 성패의 가장 큰 관건인 자료확보 문제는 한시름 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북한을 포함한 국내외 자료수집이 한결 용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건립지는 현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이 있는 중앙도서관(이전 예정) 부지가 유력한 상황이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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