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하고 골치아픈 페미니즘? No!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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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14 08:17  |  수정 2017-12-14 09:35  |  발행일 2017-12-14 제24면
출판·웹툰·영화…‘페미니즘’ 열풍

대학생 강나현씨(19)는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여고를 나온 강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랑 여성권리에 대해 토론을 많이 하면서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강씨는 “남자들한테는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것을 ‘너는 여자라서 안된다’라고 하는 게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의 집 이야기이기도 했다”며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와 같은 책을 읽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이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바로잡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여성들이 책·웹툰과 같은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페미니즘을 알아가고 있다. 지난해부터 강남역 살인 사건, 단톡방 성희롱 사태, 배우 유아인을 둘러싼 페미니스트 논쟁 등 다양한 이슈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을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출판가에 쏟아진 페미니즘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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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가에서 페미니즘 관련 도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왼쪽)과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올 한 해 출판시장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페미니즘이다. 교보문고가 올해 1월1일부터 이달 3일까지 자사 도서 판매량을 분석해 발표한 ‘도서 판매로 본 2017년 한국사회’ 자료를 보면 페미니즘 도서의 인기를 알 수 있다. 페미니즘 관련 도서가 속한 여성학 분야의 책은 매년 평균 30종 정도가 출간되는데, 올해는 평년 대비 2배 넘는 78종의 책이 나온 것이다. 판매량도 부쩍 늘었다. 지난해는 전년 대비 3.1배, 올해는 2.1배 늘었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그 인기가 더욱 두드러진다. 예스24의 ‘2017년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판매 동향 발표’에 따르면 문학 작품을 포함한 페미니즘 관련 도서 판매는 전년 대비 751.1% 증가해 무려 8.5배 넘었다. 앞서 2015년에는 전년 대비 9.6%, 2016년은 전년 대비 269.4% 늘었다.


교보문고 ‘올 도서판매량’ 분석 결과
페미니즘 관련 평년보다 2배이상 늘어
인터넷 서점서도 무려 8.5배 넘게 판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웹툰 ‘며느라기’
결혼한 여성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로
20∼30대 여성에 공감대 얻으며 화제

페미니즘 다룬 영화도 잔잔한 인기
지역에선‘여성주의 영화보기’모임도


이 같은 페미니즘 도서 열풍에는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중심에 있다. 현대 여성들이 어렸을 때부터 결혼·취업·육아 등의 과정에서 겪는 성차별을 그려낸다. 일상에서 있을 법한 일을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담아냈다는 평가다. 지난해 발간된 책이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오히려 올해 주목받았다. 조남주 작가를 비롯한 30~40대 여성 작가들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를 지난달 내기도 했다.

‘페미니즘 입문서’라 할 수 있는 책도 눈에 띈다. 지난 3월 나온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은 미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벨 훅스가 쓴 책으로, 어려운 용어가 아닌 간결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설명한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를 풀고 남녀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TED 강연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쉽게 읽히고, 책 분량도 96쪽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여성의 일상을 그대로 들여다본 듯한 웹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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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며느라기’ <화면 캡처>

페미니즘 도서 열풍에 ‘82년생 김지영’이 있다면, 웹툰에는 ‘며느라기’가 있다. 이 웹툰은 포털이나 웹툰 사이트가 아닌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연재하고 있다. 소개글에는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결혼한 여성들이라면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감정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여성의 삶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렇다보니 많은 에피소드가 20~30대 여성의 공감대를 얻으며 온라인에서 숱한 화제를 낳았다. 시어머니가 남은 과일을 며느리인 주인공 민사린에게 주면서 “먹어 치우자”라고 하는 장면도 그중 하나다.

웹툰에서 다루는 페미니즘은 많은 독자들의 공감대를 얻어내고 있다. 글이 아닌 그림이 중심이 되고, 그 내용 또한 말그대로 ‘생활 밀착형’이기 때문이다.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혼자를 기르는 법’은 서울에 올라와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사는 20대 여성 시다의 이야기다. “오늘도 중장비보다 오래 일했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많은 또래의 여성들이 공감하고 있다.

다음 웹툰 ‘나는 엄마다’는 아이를 키우면서 바뀌어가는 한 여성의 일상을 그린다. 출산 전 록음악, 추리소설, 검정색을 좋아했던 작가는 아이를 키우며 어린이 애니메이션에 나도 모르게 빠지고, 즐겨보는 TV프로그램은 EBS ‘최고의 요리비결’이 된다. 웃기는 에피소드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정일선 대구여성가족재단 대표는 “웹툰에서 딱딱하고 골치아프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하는 것은 긍정적이다. 다만 이런 매체에서 소개하는 페미니즘이 이미지로만 소비되면 그 본질을 흐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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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든 피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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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 진 킹’ <네이버 영화 제공>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는 잔잔한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특성상 멀티플렉스 영화관보다는 독립영화전용관에서 관람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대구에서는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의 상영시간표에서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를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을 다루는 영화에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 주체가 된다. 지난 3월 개봉한 ‘히든 피겨스’는 NASA의 달 착륙에 큰 도움을 준 세 여자의 이야기다. 이들은 모두 흑인이면서 여성으로 유리천장의 한계에도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이다. 지난달 개봉한 ‘빌리 진 킹’도 마찬가지다. 남성 선수에 비해 낮은 여성 토너먼트 상금에 불만을 가진 여성 테니스 1위 빌리 진 킹이 기존 토너먼트를 보이콧하고 여성테니스협회를 설립해 여성 선수들만의 토너먼트를 이어간다는 이야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도 있다. 지난달 개봉한 홍콩 영화 ‘나의 서른에게’는 서른을 앞둔 두 여성의 이야기를 담는다. 당장 마주한 고민에 빠진 한 여성, 감정 표현에 솔직한 다른 여성, 상반된 성격의 두 여성을 중심으로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말한다.

페미니즘 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도 있다. 지역 여성단체인 대구여성회의 ‘여성주의 영화 보기 모임’이다. 이들은 매달 모임을 갖고 여성주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를 보고 토론을 벌인다. 지난 6월부터는‘보는 페미니즘’이라는 제목으로 한국가스공사 대구경북지역본부의 후원을 받아 모임 회원 외에도 다양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로 진행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영화는 보기 쉽고 이론이 필요없기 때문에 페미니즘을 접근하기가 쉽다.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여성 정치 참여와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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