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고, 옻칠하고…나무를 보석처럼 다듬는 父女의 작업실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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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41면   |  수정 2018-01-09
[김수영기자의 ‘脈을 잇는 사람들’] 목공예가 정복상과 딸 정병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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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옻칠스튜디오 밀’의 상설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한 딸 정병밀씨(왼쪽)와 아버지 정복상 경일대 교수.

목재는 금속이나 돌에 비해 다루기가 쉬운 덕에 이를 이용한 공예도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크게는 건축에서부터 작게는 가구·목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형태로 우리의 생활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지난해 경일대(산업공예과)를 퇴임한 정복상 작가(66)는 40여년 간 목공예를 고집해왔던 지역의 대표적인 목공예가다. 중앙대 공예과를 나온 그는 나무의 촉감과 문양이 좋아서 오로지 나무와 함께하는 작품인생을 살아왔다. 이런 삶이 너무나 좋았을까. 그의 딸도 공예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줘 이제는 ‘옻칠스튜디오 밀’(경산시 압량면)이라는 작업실을 함께 쓰며 작업하고 있다. “이제 딸아이의 작업실에서 더부살이하고 있다. 나는 지는 해, 딸은 뜨는 해”라는 농담을 던지는 정 작가는 “목공예를 하는 것도 행복하지만 딸과 함께 작업해서 더 좋다.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였다. 같은 공예의 길을 가면서도 목공예와 옻칠공예라는 조금은 다른 방향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 부녀는 동지이자 사제지간으로서 행복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오로지 나무의 촉감·문양이 좋아서…”
40여년 목공예가의 삶을 산 父 정복상
“아버지를 돕다 옻칠 공예 매력에 빠져”
도예 전공서 진로 바꿔 日 유학 딸 병밀
귀국후 부친이 만들어준 작업실서 함께

작업실에 전시된 아버지와 딸의 작품
서로 다른 스타일 작품세계 묘한 조화
조만간 딸의 개인전 후 父女展도 계획


▶따님도 예술의 길을 걷지만 집안 전체에 예술가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정복상)“8남매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는데 제가 처음 대학에서 미술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 아버지가 많이 말렸습니다. 대구교육대 교수인 교육자인데도 자식이 예술가가 되는 것은 그리 반갑지 않으셨나 봅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응용미술과라도 가게 해 달라고 하니 겨우 허락을 해주셨지요. 결국 중앙대 공예과에 입학했습니다. 제가 마중물 역할을 했습니다. 다섯째는 서양화(정덕자 전 부산대 교수), 여섯째는 금속공예(정이상 전 대구공업대 교수), 일곱째는 조각(정진상, 전업작가), 여덟째는 도시디자인(정규상, 전 협성대 교수)을 하게 됐지요. 이런 집안 분위기에서 자랐으니 딸도 자연스럽게 예술계에 몸담길 바랐고 딸이 제 바람을 잘 따라주었습니다.”

▶같은 공예지만 따님은 목공예가 아닌 옻칠공예를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는데 옻칠공예로 방향을 바꾼 이유가 있는지요.

(정병밀)“대학(국립 한국전통문화대학 전통미술공예학과)에 들어간 후 아버지의 일을 돕다 보니 자연스럽게 옻칠도 하게 되었습니다. 도예도 재미있었는데 옻칠을 해보니 그 재미가 더 컸고 저의 적성과도 잘 맞는 듯해서 201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옻칠을 좀 더 깊이 있게 배웠습니다. 교토시립예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옻칠공예전공)과 박사과정(산업공예디자인전공)을 졸업하고 작년 귀국했는데 아버지가 저를 위해 지난해 3월 작업실까지 만들어주셨습니다.”

▶옻칠공예의 매력을 설명한다면.

(정병밀)“옻칠공예는 옻칠하고 연마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합니다. 이런 반복과정이 자칫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는데 저는 그것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옻칠을 한 뒤 자개·금박 등으로 장식을 해나가는 과정도 매력적입니다. 상당히 섬세하고 창의력도 요구되는 작업인데 이것도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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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상 목공예가의 작품

▶과거 기능성이 강한 옻칠공예와는 많이 다른 듯합니다. 조형작품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정병밀)“옻칠은 항균·방습 등의 효과가 있어 식기 등 기능적인 공예품으로 많이 개발되고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동안의 옻칠공예가 ‘사용하면서 즐기는 공예’였다면 저는 조형적이고 장식적인 것을 강화해 ‘보면서 즐기는 공예’를 하려 했습니다. 박사논문도 ‘옻칠을 이용한 공공미술- 일본과 한국의 현지조사를 중심으로’였습니다. 조형성 있는 옻칠공예를 연구해 옻칠이 가진 가치와 그 가능성을 확대해 나가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대형작품을 많이 제작했는데 앞으로는 가정에서 실내를 꾸밀 수 있는 소품도 선보이려 합니다. 이를 통해 조형적인 옻칠공예의 저변 확대에 일조하고 싶습니다.”

▶아버님은 대학 졸업 후 줄곧 목공예만 해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요.

(정복상)“딸의 말처럼 무엇이든 그것을 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야 하고 이를 즐겨야 합니다. 저에게는 나무가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무는 보기에 아름답고 촉감도 좋습니다. 돌·금속에 비하면 따뜻한 온기를 준다고나 할까요. 나무 문양 자체도 아름답지만 작가가 어떻게 파고 자르느냐에 따라 그 문양이 원래와는 또 다르게 변합니다. 그게 바로 목공예가 주는 매력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문양이 튀어나올 때의 그 좋은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공예품이 가진 매력도 있습니다. 공예품은 작가가 만들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절반은 작가가 만들고 나머지 절반은 사용자가 만들어갑니다. 사용자의 손때가 묻어나야 진정한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결국 공예품은 아름다움을 주는 꾸밈새와 실용적인 쓰임새가 조화를 이룰 때 최고의 빛을 발한다 할 수 있습니다.”

▶정복상 스타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복상)“제 작품은 크게 3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나무에 염색을 하거나 특유의 질감을 없애는 등의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줄여 나무 그 자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는 겁니다. 또 전통방식을 그대로 이어가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의 짜임으로 작품을 연결시킵니다. 모든 작품의 마감을 옻칠로 하는 것도 좀 다른 점이지요. 이렇다 보니 저의 작품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제자들이 저와 비슷한 작업을 많이 해서 제자들의 작품만 봐도 스승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입니다. 1978년 계명문화대에서 시작해 90년 경일대로 옮겨 40년 가까이 후진을 양성해왔는데도 스승으로서의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제자들이 그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도록 이끌어주는 게 스승인데…. 그것이 퇴직 후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습니다.”

▶40여년간 목공예와 함께했으면 한국 목공예에 대해 할 말이 있을 듯합니다.

“2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목공예의 인기가 많고 그 수준도 상당히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침체기를 걸었습니다. 여러 요인 중 대학의 책임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됩니다. 2000년대부터 대학들이 취업률·입학률 등 경제적 논리를 들이대서 전국 대학에서 공예과가 점점 사라졌습니다. 아마 한창때와 비교해 60~70%는 줄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결국 목공예의 위축을 가져왔습니다. 또 목공예가 취업과 거리가 멀고 중노동이라 기피하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2010년대에 접어들어 핸드메이드 붐이 일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목공예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경제적 여유를 가진 이들이 서서히 목공예품을 다시 사기 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있습니다. 목공예가 특정층의 향유물로 남아서는 안됩니다. 일반인들도 목공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같이 작업실을 사용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있을 듯합니다.

(정병밀)“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작업을 하다가 의문이 들 경우 아버지에게 바로 물어볼 수 있어 좋습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가장 좋은 스승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각자의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의견충돌을 일으킬 때도 있습니다.”

(정복상)“배운 방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방향이 같을 수 없으니 당연히 이견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서로 발전하기 때문에 같이 작업실을 쓰는 것에 만족합니다.”

▶이렇게 작업실까지 같이 쓰면 두 분이 함께 작품을 선보이는 부녀전을 한번 열어도 좋을 듯합니다.

(정복상)“딸이 일본에서만 개인전을 세 번 열고 한국에서는 한번도 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려 합니다. 이 전시를 마친 뒤 저와 딸이 함께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저와 딸은 같은 공예를 하지만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색다른 전시가 될 것입니다.”

(정병밀)“지금 작업실에는 아버지와 저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상설전시실이 있습니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지만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 묘한 조화로움이 느껴집니다. 옻칠공예라는 멋진 길을 걷게 해준 아버지께 늘 감사하며 부녀전 때 좋은 작품을 보여주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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