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홍기선 감독 유작 ‘1급기밀’과 배우 김주혁 유작 ‘흥부’

  • 인터넷뉴스팀
  • |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43면   |  수정 2018-02-23
감독도 배우도 우리 곁에 없지만…
‘흥부’ 촬영현장에서의 김주혁.
20180223
[장우석의 電影雜感 (전영잡감)] 홍기선 감독 유작 ‘1급기밀’과 배우 김주혁 유작 ‘흥부’
영화 ‘1급기밀’ 촬영현장에서의 故 홍기선 감독.
20180223

지난달 24일 개봉한 ‘1급기밀’은 국가라는 이름으로 봉인된 내부자들의 은밀한 거래를 폭로하는 범죄 실화극이다. 2002년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외압설과 2009년 방산비리를 폭로한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홍기선 감독은 2009년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직후 이 작품의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갔고 2010년 본격적으로 기획과 제작이 이루어졌다. 실제 다수의 방산비리와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명박 재임 당시 이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를 준비한 제작진이 겪었을 난관은 상상하기 어렵다. 민감한 소재 탓에 모태펀드 투자를 거부당하고 지역영상위원회와 개인투자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제작에 들어가 박근혜정부 시절에 촬영을 마치고 ‘적폐청산’을 공약으로 출범한 문재인정부에서 어렵게 후반작업을 거쳐 개봉한 것이다.

지난 14일에 개봉한 ‘흥부’는 오랫동안 구전되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는 고전소설 ‘흥부전’의 작가가 다름 아닌 바로 흥부라는 흥미로운 설정과 그 흥부가 주변과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에서 민초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쓰기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연산군과 장녹수 같은 실제 역사 속 인물이 광대 공길과 만났다는 역사적 기록에 상상력을 더한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나 조선 단종 때 일어난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에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이라는 상상 속 인물을 등장시킨 한재림 감독의 ‘관상’같은 팩션 사극이다. 특히 전반부는 코미디로, 후반부는 드라마로 구성한 것까지 하나의 패턴처럼 반복된다. 이 반복은 장르영화처럼 이런 팩션 사극의 인장처럼 여겨지나 관객 입장에선 이 패턴이 지루하기도 할 것이다.


‘1급기밀’
방산비리 내부자 폭로 범죄 실화극
후반작업 마무리 못하고 떠난 감독
완성도 문제…관객발길 잡기 어려움


‘흥부’
8년만에 사극 주인공 맡은 김주혁
재야의 숨은 지도자로 마지막 연기
완성도와 무관하게 기억하고 싶어

지난 칼럼에서 홍기선 감독(2016년 12월30일자)과 배우 김주혁(2017월 11월10일자)을 추모하는 글을 실은 바 있다. 홍 감독은 2016년 12월15일 심장마비로, 김주혁은 2017년 10월30일 교통사고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홍 감독은 사망 당시 ‘1급기밀’의 촬영을 마치고 특별한 지병 없이 숨지기 3일 전 쫑파티까지 마쳤다고 한다. 김주혁 역시 사망 당시 사고원인으로 추측됐던 약물의 부작용이나 심근경색, 차량 결함이나 오작동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부고는 그들의 부재를 예상치 못한 많은 이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그들이 남은 우리에게 남긴 선물 같은 영화가 ‘1급기밀’과 ‘흥부’였다.

20180223
영화 ‘1급기밀’ 촬영현장에서의 故 홍기선 감독.

‘1급기밀’은 홍 감독의 후배이자 명필름 공동대표이기도 한 이은 감독이 후반 작업을 맡아 완성해 개봉 직전인 2017년 제2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특별전 ‘현실을 넘어선 영화: 홍기선’에서 최초 공개되었다. ‘흥부’는 배우 김주혁이 2010년 ‘방자전’ 이후 8년 만에 사극으로 돌아와 백성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흥부전’의 실제 주인공인 ‘조혁’을 연기한다. 김주혁은 인간적이고 소탈한 매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배우여서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유작에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그들의 부재가 문제가 되었던 것일까. ‘1급기밀’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에두르지 않고 표현하려는 연출 스타일이 명암으로 작용한 경우, 그것이 주제의식을 강화시키긴 하지만 동시에 재연 프로그램 같은 분위기도 자아낸다. 악의 근원이 누구인가에 정확한 과녁을 꽂고 내달리는 탓에 배우들 연기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는 영화저널리스트 정시우의 지적은 뼈아프다. 실화를 거칠게 옮긴 영화의 완성도와 방법론에 문제가 드러나면서 관객들의 발길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홍 감독의 전작 ‘이태원 살인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를 이끌어냈던 것에 비해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데도 실패했다. 1998년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이후 연출보다 제작에 전념했던 이은 감독이 아닌 다른 감독이 후반 작업을 맡았다면, 아니 홍 감독이 살아서 후반작업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면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민초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를 노골적으로 강조한 ‘흥부’는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까지 받아야 했다. 영화저널리스트 김형석은 “대통령이 바뀔 줄 상상도 못한 시절에 기획된 이야기들이 정권교체 후 개봉하다 보니 공감대가 떨어진다”며 “관객을 강박적으로 가르치려 드는 대사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 역시 재능있는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영화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배우 천우희나 정진영, 정우 모두 관객의 호평을 이끌어냈던 자신들의 전작보다 인상적이지 못한 연기를 보였다. ‘26년’으로 데뷔 이후 아직까진 연출보다 미술감독(아트디렉터)으로 더 알려진 조근현 감독의 미덥지 못한 필모그래피도 한몫했을 것이다(‘장화, 홍련’ ‘형사 Duelist’ ‘음란서생’의 강렬하고도 매혹적인 프로덕션 디자인이 조 감독의 솜씨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김주혁이 그 특유의 따뜻한 웃음으로 “꿈꾸는 자들이 모이면 세상이 달라지지 않겠는가”라는 대사와 함께 연기한 재야의 숨은 지도자 ‘조혁’의 모습은 관객에게 애틋한 마음을 일으킨다.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 때문인지 확실히 다른 영화에선 만나지 못한 이상한 아우라가 있다. 유작의 완성도와 무관하게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내가 어렸을 때 어떤 영화들은 나에게 힘을 줬다. 의미 있는 것이란 곧 고단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역할은 우선 현실을 알리고 기록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라는 사회가 인간을 개인화시키고 경쟁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는 더욱 더 악화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할 것이며, 영화는 바로 그러한 희망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영화를 안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거나 만드는 감독이 되고 싶지는 않다.” 홍기선 감독이 생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사람은 가도 영화는 남는다. 그러니 어떤 영화를 남기고 어떤 영화를 버릴 것인가.

독립영화감독·물레책방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