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사회적 약자의 자기결정권이 확보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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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3   |  발행일 2018-03-23 제22면   |  수정 2018-03-23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도
산업과 문화·스포츠에도
약자·변방의 자기결정권
존중되고 해방되어야
새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경제와 세상] 사회적 약자의 자기결정권이 확보돼야 한다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미투’ 열풍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가운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을 겪어야 했는지, 생각하면 참담하고 죄송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아직 표현할 수도 없는 처지에 있는 분도 많을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존감을 무참히 파괴하는 일들이 다시는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

중세로부터 근대사회로 들어오면서 유럽에서 시작된 기본 사상으로 자유(주의)가 있다. 신(神)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세계관으로 옮겨지면서 경건주의, 엄숙주의로부터 인간 개개인의 욕망, 행복 추구가 존중받아야 하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이 당시의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의 자유를 말한다. 나의 행복과 즐거움이 남의 행복과 즐거움을 침해하면서 얻어질 때는 단호히 억압되어야 한다. 서구에서는 근대로 이행 과정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문제, 민족문제, 계급문제 등과 같은 거대담론들이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어느 정도 해소됐다. 또 1960년대 말 민권운동을 통해 작은 억압, 소수자의 권익 침해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많은 부분 해소되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거대담론들이 전혀 답을 찾지 못한 가운데, 작지만 심각한 억압은 전혀 거론조차 못하고 시간이 흘러왔다. 근대의 가장 기본적 개념인 자유란 강자의 자유로 오해되고 약자의 자유와 권익은 억압되어 왔다. 성적 차별과 억압의 문제 외에도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 사적소유가 절대화되면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슬픈 우스개처럼 거주를 위한 세입자의 고충뿐만 아니라 쇠락한 지역의 상권을 예술인들이 살려놓으면 건물주의 임대료 인상 횡포에 쫓겨나는 일이 흔하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책, 임대료 인상에 제한은 이루어지지 않고,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넣는 제안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란 비난을 받는다. 상권을 살린 세입자의 권리, 자기결정권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지역균형발전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중앙 및 수도권에 밀리고 억압받아 왔다. 최근 지방분권에 관한 논의가 무성하지만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에 가보면 입법과 재정 등의 분권을 했을 때에 지역이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할 수 있을지, 남용하지 않을지 걱정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재정분권을 했을 때에 부유한 지역과 가난한 지역 간 재정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교부세 방식과 공유세 방식을 둘러싼 논의가 쳇바퀴 돌 듯 되풀이된다. 또 지방분권을 했을 때에 중앙부처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관한 걱정도 가득하다. 문제의 핵심은 지역의 자기결정권을 지역에 돌려주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 향후 우리의 살길이라지만 중소기업의 혁신 노력은 대기업의 기술탈취, 인력탈취, 즉흥적이고 자의적인 하도급 주문 때문에 유린되어 왔다. 반대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문제며 낮은 임금수준 때문인 것 같아서 국가가 임금 보조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임금의 문제 못지않게 비체계적 작업 관행, 자의적 근무 환경을 문제 삼는다.

식민지 억압과 분단에 따른 전쟁, 공업화를 겪는 가운데 국가에 여력이 없어서 고등교육의 대부분을 민간이 맡게 되어 사립대학이 번창해왔다. 그래서 사학의 자율성이 법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그 사학의 자율성은 곧 설립자의 자율성이 되고 그들의 사유재산으로 간주되어 그들과 그들 가족의 사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도 제도적인 대책을 세울 수 없다.

얼마 전 동계올림픽을 통해 평창에서 세계로 울려퍼진 “영미! 영미!” 외침을 잊을 수 없다. 바로 우리 지역에서 공교육의 일부인 방과후 학습을 통해 입문하고 연마한 컬링 선수들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역사는 변방에서 새롭게 써진다. 변방의 자기결정권을 해방할 때 우리 역사는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세계의 모범국가가 되어 세계인의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약자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받는 공존과 상생은 이렇게나 소중하고 강력하다. 김재훈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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