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광양 옥룡사지 천년 숲길 트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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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20   |  발행일 2018-04-20 제37면   |  수정 2018-04-20
천년의 동백꽃 세상에서 약사불을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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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숲길에서 내려다본 동백꽃과 연무 속의 황동약사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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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감이 도는 천년 숲길과 데크 위의 동백꽃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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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숲길에서 내려다본 경이로운 옥룡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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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스님들이 수도한 토굴과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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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한 운암사.

빛이 내리는 양지바른 땅, 광양(光陽)에 있는 운암사는 신도와 옥룡사지를 찾아오는 관광객이 드나드는 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황동약사여래불이 운암사의 아이콘이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이 약사불은 아름다운 봄날, 벚꽃 살갑게 핀 산야를 지나면 돌연 등장한다. 절 초입에 해우소가 있다. 몸을 비워야 근심을 비울 수 있다. 안에 있는 ‘버림으로서 얻는 기쁨’이란 글이 어안을 벙벙하게 한다. 버리고 또 버리면 큰 기쁨이 있다. 욕심, 분노, 어리석음도 저 분뇨같이 흔쾌히 버리면 온통 불국토가 될 것인데.

마당으로 나간다. 법당으로 사용하는 10m의 좌대 위에 30m의 황동약사여래불이 서 있다. 단연 걸작이다.

약사여래는 중생을 병의 고통에서 구하고, 모든 아픔을 치유하는 부처님이다. 의왕(醫王)이시고 약왕(藥王)이시다. 관람하고 돌계단을 올라가 대웅전에 세 번 절한다. 부처님의 말씀은 어렵다. 알아듣는 사람도 있지만, 거개가 말뜻을 못 알아듣는다. 부처님 말씀을 쉽게 풀이하면 ‘이 우주(宇宙)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항상 변(變)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늙어 가는 몸을 늙지 않게 중단시킬 수 없다. 병드는 몸을 병들지 않게 할 수 없다. 죽어 가는 것을 죽지 않게 할 수 없다. 이 세 가지가, 그 외에도 많이 있지만, 우리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불교다. 마음 한번만 뒤집어 버리면 그렇게 된다는데, 그게 지독히 어려운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한번 알아보자. 불법을 알려면 먼저 사람으로 태어나야 하는데,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멀고 먼 하늘에서 바늘을 떨어뜨려 땅위의 겨자씨를 맞추는 것과 같다. 부처님 말씀을 만나야 되는데, 그것이 밤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다. 거기다가 부처님 올바른 말씀을 만나야 되는데, 그게 또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것과 같다. 부처님 말씀을 얻어 바로 깨우치기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된다. 쉬지 않고 마음을 갈고닦으면, 허공에 있는 부처님의 밥풀때기를 받아먹을 수 있다.

국내 최대높이 운암사 황동약사여래불
병의 고통·모든 아픔 치유하는 부처님

동백꽃 뚝뚝 떨어지는 동백숲 걷다보면
나무에도 땅에도 내 마음속에도 한가득

금빛 봄 햇살 쏟아지는 그윽한 옥룡사지
호흡 멎을 듯한 아늑함 도선국사 사리탑
국사가 수도한 토굴앞 통째 떨어진 동백
그가 토한 선혈의 설법 붉게 흩어져 누워

노무현 前대통령이 마셨다는 소망의 샘
눈 밝이 샘 만나 잠시 머물다 다시 걷기



◆천연기념물 제489호인 동백 숲과 옥룡사지

산신각 뒤로 오른다. 온통 동백나무다. 나무에 핀 동백꽃, 땅위에 떨어진 동백꽃, 향기가 낭자하다. 어느덧 내 마음에도 동백꽃이 핀다. 어디서 동백꽃 뚝뚝 떨어진다. 연지 곤지 찍고 애절하게 화장을 한 후 뎅컹 뎅컹 통째로 지는 동백꽃. 늘 상 피멍으로 살아온 어머니 할머니, 마침내는 울컥 피를 토하며 동백 숲에서 걸어 나오신다.

보기에도 섬뜩한 동백꽃 떨어지고, 차라리 내가 동백꽃처럼 타오를지라도, 어머니 할머니 이제 당신의 계절이 왔습니다. 저승에 가셔서도 자식을 위해 밥 지으시는 어머니 할머니, 당신이 공양 받을 시대가 왔습니다. 이제는 여성성의 원리가 지배합니다. 당신을 위한 헌시를 낭송합니다.

“어둠이 빛을 감싸고, 한겨울 밤 얼음 딛고 맨발로 걸어오신 할머니, 끌고 온 어둠으로 화로 불을 감싸시네. 옛날 옛적 갓 날 갓 적 이야기가 나오고, 피를 머금은 듯, 토한 듯, 전설은 할머니 입술 떠나 담 너머 동백꽃 되었네. 날이 새면 동이에 우물을 길러 동백나무 속에서 밥 지으시는 어머니.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 여인의 길은 잔인하고 아름답다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고 점령하였듯이, 사랑은 피 흘리지 않고 영혼을 점령하는 것, 오늘도 동백 숲을 일곱 번 돌면서 기다리고 용서하는 어머니, 할머니. 여인의 꽃 동백 꽃.” 조금 더 오르자. 선각국사 도선과 수제자 통진 대사 사리탑이 있다. 얼마나 고즈넉하고 아늑한지 호흡마저 멎을 것 같다.

도선 국사(道詵國師, 827~898)는 신라 말 선승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풍수사상을 세웠다. 속성은 김(金)이고, 영암 사람이다. 15세에 출가, 화엄사에서 수도하였다. 846년(문성왕 8) 곡성 동리산의 혜철을 찾아가 무설설(無說說, 말 없는 말) 무법법(無法法, 법 없는 법)의 법문을 듣고 크게 깨달았다.

도선은 불교의 선종과 더불어 자생풍수지리, 즉 도참설을 널리 퍼뜨렸다. 즉 산세와 수세, 땅의 기운을 판단하여 인물이 나고 죽는 것을 예고하였다. 도선은 고려태조 왕건의 출현을 예언하여 고려 건국과 더불어 나라에서 신격화(神格化)되었다. 도참설에 의하면, 인체에 병이 들면 혈맥을 찾아 뜸을 뜨고 침(針)을 놓아 치료하듯이, 국토의 병도 지맥을 찾아 사찰과 탑 등 비보를 함으로써 치유할 수 있다고 하였다. 신라 헌강왕은 도선을 궁궐로 모셔 법문을 들었다. 그렇게 명망이 높았다. 37세 되던 863년 전남 광양시 백계산 옥룡사에서 산문을 나가지 않고 35년간 머물렀고, 898년(효공왕 2) 세수 72세 나이로 입적하자 효공왕은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을 세웠다. 바로 여기에 있는 증성혜등탑(證聖蕙燈塔)이다.

그의 수제자인 통진대사(洞眞大師) 보운탑(寶雲塔)도 관람한다. 천년숲길인 동백 길 오르막을 오른다. 이내 능선에 닿고, 금방 올라온 운암사 길, 요 밑에 빤히 보이는 옥룡사지길, 주차장 가는 선의 길, 백계산 정상가는 길이 열십자를 그린다. 당장 보기에도 옥룡사지는 그윽하고 아름답다. 동백꽃 핀 길 따라 내려간다. 저렇게 동백꽃 모두 다 져버리면 어쩌지, 저 떨어지는 동백꽃 손잡고 봄이 가버리면 어떡하지.

◆옥룡사지와 천년 숲길 트레킹

옥룡사지는 더 없이 아늑하다. 봄 햇살 금빛으로 쏟아지고, 주위의 동백 숲은 사랑으로 선명하다. 토굴에 가본다. 예외 없이 통째로 떨어진 동백꽃이 즐비하다. 저 동굴 속에서 하나의 적정으로 영원히 살아있는 도선 국사, 그가 토한 선혈의 설법이 저렇게 붉게 흩어져 누웠네. 공기도 맑고, 경치도 수려하고, 봄기운이 몸을 감싼다. 마치 발이 허공을 딛는 것 같이 가뿐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시기도 했다는 소망의 샘에서 물 한잔을 마신다. 물맛이 기똥차다. 아, 이렇게 달디 단 물맛을 얼마 만에 느껴보는가. 이렇게 맑은 물이 나의 정서로 흘러간다면, 나도 물처럼 살아갈 텐데.

옥룡사지를 걷는다. 작은 연못을 지나고 측면 동백 숲 데크 길을 걷는다. 검푸르게 보이는 동백 잎이, 할머니가 호두를 쥐어 주시던 두 손 마디 같은 동백나무둥치가, 시방 날 까마득히 후리는구나. 돌아 나온다. 다시 옥룡사지를 거쳐 아까 지나온 열십자 길을 지나 백계산으로 오른다. 진달래도 피었고, 소나무 숲이 나를 가둔다. 벌써 땀이 후줄근하다. 정상으로 가지 않고 우측 오솔길로 간다. 눈 밝이 샘을 만난다. 마시면 눈이 밝아진다는 샘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걷는다. 몇 십분 더 가서 도선 국사가 어머님을 모셨다는 세우암자 터도 들른다. 이 터는 예부터 세우혈지(細雨穴地)가 있어 세우암골로 전해 왔다. 여기 덩그렇게 놓인 맷돌만 본다. 여기서 우측으로 걸어 선(禪)의 길로 하산한다. 다시 동백 숲을 지나는데, 누가 쉼 데크 위에 떨어진 동백꽃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놓았다.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 이만큼 붉어지면 사랑도 터지고 말 걸. 봄빛 듬뿍 물고 동백 숲에 풍덩 빠져 시작도 끝도 없었던 천년 숲길 트레킹.

글= 김찬일 시인 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 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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