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원스톱 감정서비스…꽁초 하나로 13년前 살인진범 검거

  • 양승진,손동욱
  • |
  • 입력 2018-04-21 07:36  |  수정 2018-04-21 07:36  |  발행일 2018-04-21 제5면
鑑定
국과수 대구연구소 ‘감정·감식의 세계’
세계 유일 원스톱 감정서비스…꽁초 하나로 13년前 살인진범 검거
대구과학수사연구소 4층 약독물실에서 우상희 보건연구관이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를 이용해 생체시료를 분석하고 있다. 액체 크로마토그래피 질량분석기는 물질을 분리해 분자량과 차이 등을 표기하는 장비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모든 사건·사고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장기 미제사건이라도 해결이 가능한 것은 채취한 시료의 과학적 분석을 통해 증거로 제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사고의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티끌’ 하나 놓칠 수 없는 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사명이자 숙명이다. 국과수는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력해 다양한 분석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개청 4년을 맞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대구과학수사연구소는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의 중심에서 증거 분석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 유일의 원스톱 감정(鑑定)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는 국과수 대구연구소를 찾아 감정·감식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단 하나의 억울한 사고·죽음도 없도록
부검·유전자검사 등 全부서 유기적 협력
DNA로 미제해결·단서 제공 ‘법의학과’
작년 부검 652건…개청 4년새 2배 증가
화학 사고 등 원인 규명 ‘법독성화학과’
약물 사용 성범죄·마약 사범 판별까지
시뮬레이션으로 진실을 찾는 ‘이공학과’
車·화재·폭발·안전사고 등 재구성·분석

◆법의학과 “DNA는 비밀을 알고 있다”

국과수가 일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건 2000년부터 15년간 방송된 미국드라마 ‘CSI 과학수사대’ 영향이 크다. 국내에서도 드라마 ‘싸인’과 영화 ‘공공의 적’ 등의 소재로 등장하면서 국과수는 ‘부검을 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이 깔리게 됐다. 국과수에서 이뤄지는 부검은 사인(死因) 규명을 위한 필수과정이다. 강력사건뿐 아니라 고독사·변사자 등의 주검에 대해서도 부검을 통한 정밀 감식이 이뤄진다. 망자의 장기, 피부, 혈액, 체액, 위(胃)내용물, 뼈 등을 분석한다. 지병이 있었는지, 어떠한 음식을 섭취했는지, 사망 당시 범죄에 노출된 상황은 아니었는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뤄진다.

하지만 단순히 부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검을 통해 채취한 생체 시료로 사망 직전의 상황을 재구성한다. 부검을 통해 채취한 모든 생체시료는 1차 부검 소견에서 나타나지 않는 사인을 가려내기 위해 유전자 분석, 약독물 반응, 화학 분석 등을 하게 된다. 단순 부검 경우에도 모든 부서가 유기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것. 김준모 법의학과장은 “생체 시료에 대해선 모든 검사를 진행한다”며 “두 명의 법의관이 하루 평균 2건 이상의 부검을 처리하는 열악한 상황이지만, 억울한 죽음은 없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사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국과수는 사건·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DNA 시료를 바탕으로 사건 해결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 DNA 분석은 미제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대구연구소는 현재 수만건에 달하는 DNA시료를 데이터베이스화했다. 강력사건 발생 때 이를 대조해 증거물로 제공한다. 지난해 12월 대구 중부경찰서가 13년 전 노래방살인 사건의 진범을 밝혀내 검거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현장에서 채취한 담배꽁초와 13년 전 살인사건이 일어났던 노래방에서 검출한 DNA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개청 첫해인 2014년 312건이던 대과수의 부검 실적은 지난해 652건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유전자분석실장 김남예 보건연구관은 “지난 1월엔 보이스피싱 수거책이 피운 담배꽁초에서 DNA를 채취해 5시간 만에 범인을 수배하는 데 기여했다”며 “DNA는 습기·곰팡이만 없으면 체액·혈흔 등 수십년 이상 검출이 가능하다. 한 명의 범인이라도 더 잡아야 한다는 심정으로 DNA 분석과 관리 등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법독성화학과 “원소 분석으로 실마리 찾는다”

2015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상주 메토밀 중독 사건.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발생한 이 ‘농약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데도 대구연구소가 큰 역할을 했다. 음료수 병, 피의자 의복, 지팡이, 전동차 등에서 농약 성분인 메토밀을 찾아낸 것. 경찰은 대구연구소가 검출한 농약성분을 토대로 수사를 진행한 끝에 A씨(여·85)가 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음을 밝혀낼 수 있었다.

법독성화학과는 생체시료에 대한 약독물반응 검사와 화학 검사 등을 진행한다. 생체시료에 잔존해 있는 극소량의 화학물질 등을 분석하거나 외형상 알 수 없는 음독·독극물 사인 등을 밝히는 게 주역할이다. 최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가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감식도 늘어나고 있다. 마약복용 여부를 검사하기 위한 생체시료 분석 등도 이뤄지는데, 주로 모발·체모 등을 채취해 마약 반응을 검사한다. 농촌에서 치료 목적으로 재배하는 양귀비에 대한 감정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약학박사로 약독물 관련 부서에서 대부분 근무해 온 이상기 소장은 “모발을 통해 마약복용 여부를 검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마약사범들이 머리를 염색하거나 삭발을 해 이를 은폐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분석화학실은 지난 1월 발생한 포스코 냉각탑 근로자 질식사고, 구미산단 폐산 유출사고, 칠곡 석적읍 케미칼공장 폭발사고 등 사고 현장에 출동해 미세 증거물을 채취해 이를 감정한다. 분석화학실에서 사용되는 기체질량분석기와 10만배 이상 확대가 가능한 전자현미경 등은 모두 3억원 이상 호가하는 장비다. 구미·포항 등 지역엔 공단이 많아 연구원의 책임감 또한 막중하다. 분석화학실장 박세연 공업연구관은 “대구·경북 지역은 공단이 많아 화학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화학물질이 누출됐으면 현장 채취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화공약품, 휘발성 물질, 유해가스 등 감정을 통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역할”이라고 했다.

◆이공학과 “사고를 재구성하라”

2015년 10월6일 오후 8시쯤 대구 북구 침산동 백사벌네거리. A씨(여·30대)가 몰던 스파크 차량이 갑자기 신호대기 중이던 자전거와 건물상가를 들이받고서 멈춰섰다. 당시 사고 원인을 두고 급발진이라는 의견이 많았으나, 대구연구소 분석결과 가속페달이 차량 매트에 걸려 이 같은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구연구소는 교통안전공단·경찰 등과 함께 사고 원인 규명을 분석하기 위해 수차례 시뮬레이션 등을 한 끝에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영내 이공학과장은 “이공학과는 주로 화재·폭발·안전사고 등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이를 재연, 분석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며 “다양한 분석 파트로부터 도움을 받아 시나리오를 구성해서 원인 등을 판단한다. 논리적으로 가장 높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최근엔 차량을 이용한 살인사건·보험사기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더 바빠졌다. 지난 1월 영천 한 저수지에서 경찰관이 부인을 살해한 뒤 저수지에서 빠져나온 사건도 이공학과가 피의자 진술을 토대로 신빙성을 검토한 뒤 시뮬레이션을 실시한 결과 피의자의 범행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과장은 “차량 사고는 모든 사고 상황을 재구성해 기계적·전자적 결함 여부, 피의자 진술의 신빙성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단 하나의 억울한 사고도 없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승진기자 promotion7@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양승진 기자

먼저 가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형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손동욱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