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2017·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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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6-29   |  발행일 2018-06-29 제42면   |  수정 2018-06-29
가족이 함께 보면 더없이 좋은 영화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2017·미국)

빵집을 지나다 ‘공갈빵’을 봤다. 달콤하고 바삭바삭하지만 속이 텅 비어 있는 빵. 나는 자석에 끌리듯 들어가 공갈빵을 샀다. 먹어보니 기억만큼 달콤하지도 바삭하지도 않았지만 어쩐지 행복한 마음이 되었다. 어릴 때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면 아버지께서 사주시던 바로 그 빵이다. 아버지와 함께 본 영화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술영화를 봤던 것 같은데, 달콤하고 바삭바삭하던 공갈빵 맛만 또렷하다.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아주 무서운 영화도 봤던 것 같다. 어린 나는 너무 무서워서 ‘어른들은 저런 걸 대체 왜 보는 거지?’ 했다. 지금도 나는 공포영화를 잘 보지 못한다.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착한 영화가 좋다.

프랑스 영화 ‘코러스’를 볼 때였다. 합창단을 조직해서 말썽꾸러기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사랑으로 교육하는 선생님의 이야기, 착한 영화였다. 보고 나서 어땠느냐는 내 질문에 함께 본 이가 말했다. “영화는 좋지만, 세상은 이렇게 험한데…”라고. 세상과 동떨어진 영화, 한 편의 동화 같을 뿐이라는 거다. 하지만 나는 생각해본다. 세상이 거칠고 험하기에 착하고 좋은 영화를 보고, 잊고 있던 내면의 선함을 일깨우는 것, 그것이 영화의 중요한 기능이 아닐까 하고. 영화 ‘원더’는 그렇게 착하고 따뜻한 영화다. 우리 마음속에 담겨있는 선한 것들을 일깨운다. 보고 나면 낯선 이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를 더 건네고 싶어진다. 진심으로.

[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2017·미국)

‘원더’는 선천성 안면기형 장애를 앓고 있는 ‘어기’와 가족의 이야기다. 홈스쿨링을 하던 엄마는 어기가 10세가 되자 세상으로 내보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헬멧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기만의 소우주에 갇혀 살던 어기는 냉혹한 세상에 나가게 된다. 어기는 27번의 성형수술을 견뎌낸 용감한 아이지만, 모두가 기다리는 크리스마스보다 얼굴을 감출 수 있는 할로윈 데이를 더 좋아한다. 세상 밖 중학교에 들어간 어기를 향한 외부의 시선은 냉정하고 혹독하다. 하지만 밝고 긍정적인 어기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바깥 세상에 적응하고 성장해나간다. 용감하게 세상을 마주하는 어기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과 친구 등 여러 인물들이 각자의 스토리를 가진 주인공으로 표현되는 것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자신의 세상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가 주인공인 것이다. “외모는 바꿀 수 없어요. 우리의 시선을 바꿔야죠”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라”와 같은 깊이 있는 명대사들로 가득하다.

개봉관에서 보고 상영관이 몇 개 없었던 것이 몹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영화는 갈수록 가벼운 오락물에만 자리를 내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봤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함께 본 몇 분은 영화가 끝나자 박수를 쳤다. 영화를 보고 박수를 치는 것은 참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박수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영화에서 받은 감동, 그리고 진심어린 공감의 의미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영화를 보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낯선 이에게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타인에게 친절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우러나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데워줄 이 영화는 R. J. 팔라시오의 베스트셀러 소설 ‘원더’가 원작이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118주나 이름을 올린 것으로 유명한데,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아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고 한다. 실제로 어기와 같은 처지의 소녀를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만난 경험을 소재로 해서 글을 쓴 것이다. 영화 후반에 깜짝 출연한 그녀의 반가운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어기의 지혜로운 엄마로 출연한 중년의 줄리아 로버츠의 모습도 반갑다. 가족들과 함께 보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각자의 일로 바쁜 가족들을 불러 모아 함께 본다면 참으로 멋진 ‘저녁이 있는 삶’이 될 것인데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영화를 보고 서로 느낌을 이야기한다면 아이들에게 평생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공갈빵의 추억’처럼 아주 달콤하고 행복하게 말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이 많은 사람은 절대 인생을 함부로 살지 않는 법이다. 시인·심리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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