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의 사필귀정] 소년범 처벌 강화 논의에 부쳐

  • 윤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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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8   |  발행일 2018-07-18 제30면   |  수정 2018-10-01
20180718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최근 잔혹한 청소년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형사처벌 연령을 하향 조정하고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지난 3월 대구에서 여자 중학생이 여러 남자 청소년에 의해 강제로 술을 마시고 집단으로 성폭행 당한 뒤 2차 피해까지 입었으나 가해자들이 제대로 사과조차 하지 않은 채 엄중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 여중생의 부모가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가해 청소년들을 강력하게 처벌해 달라는 국민청원을 내기에 이르렀다. 6월에는 서울에서 여자 고등학생이 또래 청소년 10여명에게 끌려가 밤새도록 참혹하게 폭행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작금의 국민 여론은 청소년 범죄자의 처벌 강화 정책을 찬성하는 쪽으로 크게 경도되어 있다. 앞서 피해 여중생의 부모가 올린 국민청원에 많은 국민이 호응하고 있다. 가해 청소년 가운데 일부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데 이어 14세 미만인 일부 가해자가 형사미성년자에 해당하여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을 받게 된 것이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것이다.

이에 정부는 교육부총리 주재로 청소년 폭력 예방대책 추진상황 점검을 위한 관계 장관 긴급회의를 열어 청소년 폭력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12일 열린 긴급회의에서 법무부 장관은 형사미성년자와 촉법소년의 연령을 현행 14세 미만에서 13세 미만으로 하향하는 내용의 형법·소년법 개정이 올해내 이뤄질 수 있도록 국회와 적극 협력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법무부 장관이 공언한 대로 법률이 개정된다면 2008년 소년법 개정에 이어서 청소년 범죄에 대한 정부의 형사정책의 기조가 청소년의 미성숙한 특성을 중시하는 보호 이념이 약화되고 처벌 위주의 강성 정책으로 변화하게 된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이 강성으로 선회하는 것은 청소년 범죄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질적으로 흉포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종래에 비해 어린 나이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이 늘어나고 있다는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발간하는 공식통계는 물론이고 관련 연구기관의 조사결과를 보면 지난 10년 사이 청소년 범죄가 증가 추세를 지속하거나 흉포화, 저연령화되고 있다는 일반의 믿음에 대한 명확한 통계적 근거는 선뜻 찾을 수 없다.

필자의 소견으로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강성 정책은 실증적 논거에 기반을 둔 과학적 정책이 아니라 비등하는 국민적 여론에 대응하는 정치적 결정에 불과하다. 강성 정책을 요구하는 국민 여론은 충격적인 일련의 사건에 반응하여 단기간에 고조되는 특징이 있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는 국민적 공분을 만들어 내면서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검토와 합리적 판단을 어렵게 한다. 처벌 대상을 확대하고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강성 범죄 정책이 범죄를 억제하는 정책 효과를 산출하는지는 이론적·실증적으로 명확하게 입증된 바 없다.

청소년 범죄에 대응하여 필요하다면 강성 정책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형사처벌 연령을 하향 조정하기에 앞서 2008년 개정 소년법이 청소년 범죄 추세에 긍정적 정책 효과를 가져왔는지 검토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울러 청소년 범죄에 대한 강성 정책이 미성숙한 청소년이 일시적으로 저지른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사회로부터 배제함으로써 범죄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우려는 없는지 깊은 성찰과 공론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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